"1도 없었는데" | 홍시환 | 2024-0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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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없었는데"
내 인생에 1도 없었던 선교사로서의 여정이 어느덧 20여년을 앞두고 있다. 신학교(그리스도신대)를 졸업한 후 김명수장로님이 사재로 세운 '교회성장연구소'에서 잠시 총무로 일했다. 그리고 기독교언론사에 들어가 기자생활로 시작하여 편집국장, 그리고 신문사(새누리신문)를 운영하기까지 거의 30여년을 보냈다. 그래서 글쓰는 것과 기독언론이 내가 함께 갈 평생의 동반자인줄 알았다. 그러나 내나이 55세 되던 해, 내 인생에 1도 없었던 선교사의 길로 접어 들게 된 것이다. 2006년 가을 선교사 파송식을 하고 캄보디아땅을 밟은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선교단체로부터 파송을 받았지만, 2014년 재파송 때는 교단(교역자협의회 당시 회장 최제봉목사)으로부터 파송을 받았다.
그런데 처음 파송받은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전혀 뜻밖에 캄보디아 총리로부터 훈장을 받게 되었다. 훈장 역시 내 인생에 1도 없었는데, 그것도 외국(캄보디아)에서 받게 되었다. 당시 선배 선교사들도 많았지만 훈장을 받은 선교사는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새내기 선교사가 훈장을 받았으니. 마침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훈장 소식이 국민일보와 교계신문에 게재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선교사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머물 곳(게스트룸)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한 곳에 오래 머물 수도 없다. 게스트룸이 적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국에 들어가면 날짜가 맞는 게스트룸을 전전하면서 지내곤 했다. 그런데 언제라도 한국에 가면 머물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교사역을 마치면 남은 생을 보낼수 있는 하우스가 생겼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는다. 이 역시 내 생애 1도 생각지 않은 생활터로, 강원도 횡성에 소재한 작은 수양관 겸 전원주택이다. 신명기6장11장에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신다"는 말씀 그대로 나와 아내는 주님이 준비해 주신 그 풍성한 땅에서 누리며 살게 되었다. 한 원로선교사께서 "캄보디아 오지마을에서 두 분이 수고한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겠느냐"며 격려해 주셨다. 여름에는 작은 교회들의 수련장소로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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