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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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례-세례(Baptizm)洗禮

       

      I. 세례의 정의

       

      오늘날 여러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세례를 보면 여러 가지가지가 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그릇에 물을 길러 와 세례 받기를 원하는 자의 머리 위에 물을 뿌려서 세례를 베푸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물속에 들어가 몸이 잠기도록 하여 세례를 베푸는 교회가 있다.

       

      헬라어 사전에 보면, 세례를 말하는 바프티조는 {물속에 잠기다, 물에 가라 앉히다, 물속에 묻어지게 하다}의 뜻을 갖고있다.

       

      The Analytical Greek Lexicon (New York,Harper and Brothers) P.65

      Walter Bauer, William F. Arndt, and F. Wilber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P.131

       

      로마서에서는 이 세례를 {예수의 죽으심 과 함께 우리의 죄 된 삶을 물속에 장사지 내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로마서 6: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 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 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칼빈은 세례를 교회라는 공동체에로의 입문이며 개인이 그리스도와 새로운 교제로 들어가는 입교식이라고 했으나 이는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John Calvin,김문제 , 기독교강요,4,p.488,512

       

      고로 세례란 지난날의 모든 죄를 물속에 장사지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것을 세례라 한다.

      바프티조는 [물을 뿌린다]거나 [물을 붓는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지 않다. 물을 뿌린다거나 물을 붓는다는 말은 따로 있다. 물을 뿌린다는 말은 란티조 (Rhantizo)이고, 물을 붓는다는 말은 체오(Cheo)이다. 성경에서 세례를 표현했을 때는 바프티스마 (바프티조)를 사용했지 이 두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II. 세례의 유형

       

      성경은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가 여러 類型이 있는 게 아니고 하나라고 했다.

      에베소 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 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그러면 예수님이 명한 세례는 어떤 세례일까?

       

      A. 신약에서의 고찰

       

      신약성경에 보면, 밥티조가 80번 나오고, 밥티스마가 22번 나온다.

      1. 마태 3:5,6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 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2. 마가 1:9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3. 요한 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4.사도행전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 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5. 고전 10:1,2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내며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6. 골로새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된바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위에 인용한 聖句들을 통해 어떤 세례가 베풀어 졌는지 살펴보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보면, 여기서 베풀었던 세례는 침례 외에 다른 말로 표현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세례를 베푼 장소가 요단강 이다}. 강까지 와서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성경에서 제시되지도 않은{물 뿌리는 세례}를 베풀었다고 보는가?

       

      요한복음에도 보니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거기 물이 많음이라 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물이 많은 곳을 아가 세례를 주었다}는 얘기다.

       

      사도행전의 말씀은 세례를 베푸실 때 나타난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세례를 주고 물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침례였음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영어 성경에 보면 더욱더 잘 표현해 주고 있다

      Then both Philip and the eunuch went down into the water and Philip baptized him, When they came up out of the water.... (NIV)

       

      고린도 전서에 있는 말씀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널 때에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속에서 세례를 받았다 고 얘기하고 있다.

       

      비록 구약시대 사람들에겐 세례가 구원의 요소는 아니었지만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을 신약시대의 구원의 도리에 비추어 구름과 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노아의 8식구가 물(홍수심판)가운데서 구원받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널 때에 물에서 구원받은 것을 상기시킨 말씀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을 곧 구원의 표라고 말씀했던 것이다(벧전 3:21). 골로새서의 말씀은 세례의 모형을 죽음과 부활의 형태로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어떤 경우도 결코 물을 뿌린다거나 붓는다는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B. 헬라 교부들의 증언

       

      예루살렘의 감독 시릴(Cyril)

      A.D 315년경 예루살렘 근교에서 출생, A.D 350년에 감독이 됨. 그의 저서 세례의 지침 / Instruction of Baptism에서 예수께서 인간들을 의롭게 하시려고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신 후에 무덤 속에 매장된 것처럼, 그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물속에 매장 지낸 후에 새 生命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세례라고 했다. 여기서 보면, 시릴은 세례를 로마서 6:5과 골로새서 2:12에서 말하는 대로 그대로 가르치고 있음을 볼수 있다.

      가이사라의 대 주교 바실 (Basil the Great)그는 그의 저서 성령에 관하여 / On the Holy Sprit 에서 세례로 물속에 잠긴 몸은, 사실 그 자체가 물속에 장사 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물속에 잠기는 세례는 예수가 무덤 속에 장사 된 것처럼, 죽음을 모방한 것이다. 바실은 A.D 328년 팔레스타인 영내 가이사라에서 출생하여, A.D 37911일에 죽었다. 그는 수사학 교사였으나 이를 그만두고 세례를 받고 수도자가 되었다. A.D 364년에 사제가 되고 A.D 370년에 가이사라의 주교가 되어 유세비어스를 계승했다. 그는 아리우스 파를 대항하여 그들의 오류를 논박하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교리적인 면에서는 로마 주교의 권위를 인정했으나, 그를 교회의 최고 심판관으로 인정하기를 거절했던 사람이다. 그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제정 할때 그 영역에 사용된 문구를 확정시킨 최초의 인물로(本質:Substance / Ousia; (Persons / Hypostaseis), 헬라교부 중 가장 학식이 많은 사람이다.

      H. Dermat McDonald, 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166

       

      콘스탄티노플의 대 주교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그는 그의 저서 고린도전서 주석,Discourse, XL"에서 물에 잠기다. 물속에 묻어지게 하다, 물에 가라 앉히다 하는 말과 물에서 솟아오른다(to immerge)는 말은; wldhr으로 내려갔다가 거기서 다시 올라오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례를 장사 지내는 것 이라고 했다. 우리가 세례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하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A.D 347년 안디옥에서 출생했다. 18세에 세례를 받고 줄곳 금욕 활을 했다. A.D 386년에 사제가 되었고 A.D 398년에는 (그가 원치 않는) 콘스탄 티노불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주교로 일하는 동안 도덕적인 풍토를 개선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그의 행동이 너무 엄격하고 지나치다고 하여 많은 저항을 받았다. 황제 유독시아 (Eudoxia)와 지방 성직자들도 그를 성토했다. 그래서 크리소스톰은 A.D 403년에 열린 오크 종교회의(Oak)" 에서 폐위되고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 지방의 그리스도인 들이 크리소스톰을 열열히 지지하자 이에 당황한 황제는 그다음 날 크리소스톰을 다시 불렀다. 그래도 크리소스톰이 자중하지 않고 더욱 더 그들의 부도덕을 지적하자 마침내 황제는 그에게 모든 직책을 사임하고 자중할 것을 명했으나 그러나 그는 황제의 명령에 불복했다. 그뿐 아니라 세례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려 하자 황제는 군대를 풀어 그를 교회 밖으로 몰아냈다. 이 소동으로 인해 세례 장이 피바다가 되는 참극을 빗기도 했다. 결국 그는 A.D 404년에 다시 추방 당한 후 A.D 407년에 귀양지에서 죽고 말았다.

                       Everett Ferguson, 송광택 , 교회사핸드북, P.191

       

      C. 세례에 대한 저명한 학자들의 증언

       

      마틴 루터(Martin Luther / 16세기 종교개혁자,루터교 창시자)

      세례의 의식 / On the Sacrament of Baptism" 에서 세례(baptism)란 말은 헬라어다. 그것은 라틴어로 [물에 잠기다]는 뜻인데 우리가 어떤 것을 물속에 넣을 때 물에 덮어지는 것처럼, 세례란 물속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세례를 받을 때는 완전히 물속에 잠겼다가 즉시 물에서 올라 왔다. 이는 세례란 말의 語源이 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은 널리 알려졌다. (다만 어린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는 완전히 물속에 잠그지 않고 적은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었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00

      T.W.Brents, The Gospel Plan of Salvation, P.280

       

      존 칼빈(John Calvin / 장로교 창시자)

      칼빈도 헬라어 밥티죠라는 말은 그 말 자체가 물속에 잠기는 것이라고 했다.또 한 초대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침수세례를 베풀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그는 세례를 베풀 때 침례로 할 것인가 물을 부어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교회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어느편을 택하든지 간에 그 목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말했다.

      John Calvin, 김문제, 기독교강요, P.488,512

      A.Lindt, 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381

      T.W.Brents, The Gospel Plan of Salvation, P.280-281

       

      존 웨슬레(John Wesley / 감리교 창시자)

      그와 함께 장사 되었다-는 말은 초대교회에서 행해진 세례가 침수 세례였음을 의미한다.

      T.W.Brents, The Gospel Plan of Salvation, P.334

       

      모세임(Dr.John Laurence Von Mosheim)

      1세기경에 있었던 세례의식에 관하여 말하면서, 그때는 어떤 공식적인 집회에 서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고 어느 때나 편리한 장소에서 세례 받기를 원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되 완전히 물속에 잠기는 세례를 주었다.

      그는 또한 2세기경에 있었던 세례의식에 대해 1년에 두 번(부활절과 오순절)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때는 감독이나 장로들이 직접 세례를 베풀거나, 이 일을 위임받은 자가 세례를 베풀었다. 그때 세례 지망자들은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세례를 받았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01 Eccl. History, Vol.I, P.87 (Murdock's Ed.)

       

      부렌너(Brener)

      부렌너는 로마 캐토릭 교회의 유명한 학자다. 그는 말하기를 1300년 동안은 일반적 으로 전신을 물에 담그는 세례를 받았다. 다만 특수한 경우에 물을 뿌리거나 물을 붓는 세례가 행해졌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은 더욱 많은 논쟁을 일으켰으나 그렇다 고 결코 금지되지는 않았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01

      Historical Exhibition of the Administration of Baptism from Christ to our own times, P.308

       

      코니베어와 후손(Conybeare &Houson)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속에 잠기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재론 할 여지가 없다. 개종자는 죄 된 생애에 대한 죽음의 표시로 물속에 잠겼고, 의로운 삶에 대한 부활의 표시로 물(순간적인 죽음) 에서 올라왔다. 우리가 사는 북부지역에서 이러한 세례의 원형을 계속 따르지 않은 것은 저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이런 중요한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데 있다. 초대교회에서 행한 {물에 잠기는 세례}를 받아 심령이 새롭게 태어나지 않은 자는 로마서 6:4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01

       

      필립 샤프(Dr.Philip Schaff)

      필립 샤프는 장로교인으로 반 침례파이다. 그는 세례에 대해 강론 하면서 요단강에서 베풀어 졌던 요한의 세례나, 홍해 바다를 건널 때 있었던 기적적인 일들, 노아 홍수 때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일, 정결케 하고 깨끗하게 하는 제도라든가, 죽음과 부활등을, 사도들의 가르친 신선한 신조와 비교해 보고, 또 근동 (The East)에서 오늘날까지 지켜 내려오고 있는 고대 교회의 풍속에서 볼때, 물속에 잠기는 침수세례는 본래 의미가 헬라어 바프티제인과 바프티스 모스에서 유래된 것임이 틀림없다고 하여 초대교회 당시엔 침례세례를 베풀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교회사 /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에서 일명, 사도들의 교훈이라고 일컫는 디다케(Didache)를 인용, 디다케란 책 속에 물 뿌리는 세례를 허용하고 있다고 하여 약식세례를 주장한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02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I, P.123

      Henry M.Morris,III, Baptism, P.15,18

       

      이븐 얼 카인스(Even Earle Cairns)

      Wheaton College의 역사학과 과장(The head of The History Dept.)으로 약식세례를 주장하는 학자이다. 그는 그의 저서 수 세기를 통해 본 그리스도교 신앙 /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에서 1세기에는 침수세례가 널리 행해 진 것이 사실이다. 고 말한 후, {디다케 /Didache}를 인용하여, 디다케에 물을 붓거나 물을 뿌리는 것도 세례라 했으므로 약식세례도 합당하다고 했다.

      Henry M. Morris,III, Baptism, P.16

       

      디다케(Didache)는 어떤 책인가?

      디다케(Didache)는 일명 사도들의 교훈으로 전해진다.

      구전형식으로 전해 내려오던 7권으로 된 사도 헌장(Apostolic Constitutions)을 기록한 책인데, 저자가 미상일 뿐 아니라 기록 연대도 A.D 130년에서 4세기까지로 보고 있다. 처음 6권은 3세기 말에 시리아에서 기록 되었는데 동방교회에서 감독교회 신정(Episcopal Theocracy) 으로 집필된 것 같다. 이 책 속엔 생명과 사망에 관한 두길 / Two Way과 세례에 관한 교훈 및 주의 만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근래에 발굴되어 브라이니오스(Bryennios)에 의해 1883년에 출판되었다. 필립.샤프에 의하면, 이 책은 A.D 692년 트루란 종교회의(The Trullan Council) 에서 이단들이 써 넣은 글이라 해서 사도들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한다.

      Ralph P.Mart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Lion Co.,) P.126

      Henry M.Morris,III, Baptism, p.18

       

      역사적으로 볼 때 디다케 7(A.D 130-160)에 기록된 것이 약식세례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간주되고 있다. 7장엔 주로 세례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카인스가 인용 한 디다케를 보면 세례를 줄 때 흐르는 물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만약 흐르는 물이 없을 땐 다른 물에서 세례를 주라. 찬물에서 세례를 베풀 수 없으면 따뜻한 물에서 하라. 그러나 찬물도 따뜻한 물도 없을 때는 머리 위에 물을 세 번 부으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상에서 이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세례가 침례였음을 확증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물을 뿌리거나 물을 붓는 약식세례로 침수세례를 대체했다. 스스로 저들의 가르침을 성서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성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한다. 이율배반적인 얘기가 아닌가?

       

      약식세례

       

      누가 약식세례를 누가 처음 받았는가?

      노바티안은 기록상으로 볼때 약식세례를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이다. 노바티안 은 당시 중병으로 사경을 헤맸다. 그래서 그는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례받기를 원하여 세례문답을 받았다. 그래서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데 당시의 전례대로 환자를 세 번이나 물속에 잠기게 할 수도 없고 초음도 지체할 수 없어 그를 침대 위에 뉘인 채 그의 몸이 거의 잠기도록 많은 물을 부어서 세례를 주었다. 다행히 노바티안은 그 후로 건강이 회복됐지만, 당대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이 같은 세례를 정식 세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신부로 안수받을 때 터틀리안 과 아프리카 감독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기도 했다.

      Henry M.Morris,III, Baptism, P.19,20

      J.W.C.Wand, 이장식, 교회사(초대편), P.159

      Eusebius, Ecclesiastic History, P.266

      Dr.Wall, Infant Baptism, Vol.II, P.385,386

       

      노바티안(Novatian)

      노바티안은 3세기 중엽에 활동한 반 캐토릭 종파로서 희랍어 보다는 라틴어를 사용한 가장 유명한 로마의 신학자다.데시어스 황제(Decius; 150-251)의 박해시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순교를 당했는데, 박해를 피해 배반한 자들이 박해가 끝나자 교회로 복귀하려고 하자 변절자들에 대한 세례문제가 대두되었다 노바티안(Novatian)은 단호한 입장을 취했는데 비해 시프리안(Cyprian)은 세례는 모든 죄를 씻는 것이기 때문에 변절자들은 세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다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해도 그들이 정통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아니했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노바티안이 자기 곁을 떠나 정통교회로 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세례를 주자 자연 주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이때 로마의 새 교황 스테반(Stephen)은 자기주장을 따르지 않고 노바티안을 따르는 자들을 모두 출교해 버렸다. 이에 동방교회와 아프리카 교회가 크게 반발하여 A.D 256년에 87명의 감독이 모임을 갖고 변절자들에게 새로 세례를 베풀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A.D 257)에 스테반이 죽자 스테반의 주장이 노바티안의 주장보다 더 자비롭다고 생각하여 스테반의 의견을 따랐다

       

      또한 교황 파비안(Fabian)이 순교하자 A.D 251년에 교황선출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지도능력이 탁월했던 노바티안을 배제하고 무능한 코넬리우스(Cornelius; 251-253)를 교황으로 선출하자 노바티안을 추종하던 자들이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히폴리터스(Hipollitus)의 뒤를 이어 노바티안을 로마교회의 적수인 라이벌 교황(Rival-Pope / The Second Anti-pope)으로 선출했다. 그러자 로마교회 감독 들은 이 문제에 대해 숙의한 결과 노바티안을 파문키로 결의했다.

      그때 노바티안이 파문(정죄)당한 이유는,

      1. 교회 질서를 문란케 하여 교회를 분열시켰고,

      2. 변절자에 대한 태도와 죄에 대한 용서가 관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례 에 범한 중죄에 대해 어떤 참회의 가능성도 부인했다.

       

      노바티안은 우상숭배자와 살인, 간음, 음란 및 재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바틴안은 극단주의 자들의 정책을 옹호했다. 노바티안 파의 교리는 몬타나스 파와 터툴리안 파와 같이 정통적인 교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단자 혹은 분리주의자라 불렀던 것은 당시 시대 상황 탓이라고 한다. 이 파는 콘스탄틴 시대에 이르기 까지 이단으로 취급 받다가, 7세기경에 자취를 감쳤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다룬 것이다.

      J.W.C.Wand, 이장식, 교회사(초대편), P.157-160

      Lexicon Publication, New Age Encyclopedia, Vol.13, P.294

      Michael A.Smith, 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78

      몬타누스파

      몬타누스파는 그리스도인에게 금욕주의를 강조했다. 순결을 위해서는 부부관계도 포기하고 금식을 많이 했다. 이 파는 A.D 172년 서부 소아시아 지역인 브루기아 에서 몬타누스(Montanus)가 예언자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다른 두 예언자 브리스가(Prisca)와 맥시밀라(Maximilla)가 합세 하므로 더욱 위세를 떨쳤다. 카르타고의 터툴리안도 이 파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보혜사에 의해 주어진 예언들이 교회의 권징을 완성한다고 믿었다. 세례 후에 범한 중한 죄를 용서하지 않았고 재혼하거나 박해를 피해 은둔한 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파는 아프리카에서는 5세기까지 존속했었고 브루기아 에서는 조금 더 오래 존속했다.

      David F.Wright,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74

       

      유세비어스의 교회사 / Ecclesiastic History"를 보면, 노바티안이 받은 세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당시 노바티안의 감독에게 노바티안이 받은 세례에 대해 질의한 바가 있는데 이에 대한 회답을 보면,{노바티안처럼 난치병이 들어 죽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에서 물 뿌리는 세례를 받은 것은 합당하다. 여기서도 보면 언제나 약식세례를 허용한 게 아니고, 난치병과 같은 중병으로 인해 사경을 헤맬때에 한해서 약식세례를 허용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유세비어스(Eusebius)

      세례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유세비어스의 대한 얘기를 뺄수가 없다. 유세비어스는 노바티안 사건 후 거의 100년을 산 교회사의 산 증인이다.

      유세비어스(A.D 263?-339)는 팔레스타인에서 출생했다. 그는 한때 박해를 피해 잠적해 버린적도 있다. 그는 A.D 313년에 가아사라의 감독(A.D 313-314)이 되었고 콘스탄틴과 가까운 관계를 가졌다. 그는 또한 오리겐의 열열한 추종자다. 그의 많은 저서를 기록했는데 그 중에 특히 연대기(Chronicles)와 교회사(ChurchHistory)는 교회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책으로 높게 평가 받고 있다. 그의 교회사는 주로 사도 시대로부터 감독과 교사들의 계승에 관한 기록과, 유대인들의 고난과 그리스도인 들의 박해, 순교 및 이단, 정경 형성과정에 관한 것들을 소상히 담고 있다. 그가 비록 최초의 교회사가는 아니지만 그는 이미 다 잃어버린 다른 사람들의 글을 그의 책 속에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책이 교회사 연구에 귀한 재료로 취급되는 것이다.

      Michael A. Smith, 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17

       

      도윰멀 시프리안(Cyprian)

      시프리안(Cyprian)은 데시어스(Decius)황제의 박해 기간, 서방에서는 가장 위대한 종교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중년이 되기까지 개종하지 않다가 A.D246년에 세례를 받고 개종했다.그 후 신부가 되고 또 카르타고 감독으로 피택 된 유능한 교회정치가다. 그는 침수세례에 반하여 약식세례를 변론한 사람이다. 당시 카르타고의 시프리안에게 당면한 문제는 우선 그가 데시우스 황제의 박해기간에 지하로 잠적한 적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평판이 땅에 떨어져 있었고 당시 절대권자들인 고백자들이 그를 멸시하므로 당장 그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스테반(Stephen ; 254-256)

      어디서 받았던지 불문하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해진 물세례는 유효하다. 그러므로 배교했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안수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이와 같이 로마교회와 카르타고교회에서 배교자에 대한 세례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늘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스테반은 시프리안을 적그리스도라고 몰아세웠는가 하면, 시프리안은 자기가 베드로의 자리를 계승했으니 자기야 말로 감독중의 감독이라고 했다. 이 양자간의 논쟁은 A.D 256년 스테반이 죽고, A.D 258914일 시프리안이 발레리안의 박해 하에 순교함으로 일단락되었다.

      Henry Chadwick, 서영일, 초대교회사, P.144-146

      J.W.C.Wand, 이장식, 교회사(초대편), P.154-160

      David Wright,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83

      시프리안은 그의 저서 A Short Story of the Baptist"에서

       

      물 뿌리는 세례도 물속에 잠기는 세례와 동등하다. 또한 그 세례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세례를 주는 사람과 세례를 받는 사람의 믿음이 좋고 견고하면 참된 믿음과 우리 주의 자애로 인해 온전해지고 완전해진다. 아울러 그는 자녀들이 출생하면 8일째 되는 날 유아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아세례는 감독이나 감독으로부터 위임 받은 평신도가 수시로 베풀되 부활절 직전에 출생한 자녀들은 부활절에 합동세례를 베풀도록 하라고 권장했다.

      J.W.C.Wand, 이장식, 교회사(초대편), P.142

       

      이로 보건대, 당시 로마교회에서는 약식세례가 다소 행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세례를 {Clinic Baptism}이라 하여 합당한 세례로 여기지 않았다.

      노바티안 이후 이 같은 Clinic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한동안 성직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라고 볼 수 있다.

      Henry M. Morris, III, Baptism, P.20

       

      라오디기아(Laodicea)의 종교회의(A.D 360)

      세례 희망자는 마음을 다해 신조(Creed)를 배우고, 또한 그것을 암송하라

      콘스탄틴노플(Constantinople)의 대 종교회의(A.D 368)

      세례 희망자는 영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세례받기 전에 오랜 기간 배교자로로 남아 있어야 한다.

       

      카르타고(Carthago)의 종교회의(A.D 398)

      세례 희망자는 미리 자기 이름을 집례자에게 통보하고 세례받기 위한 준비 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네오가이사라(Neocaisaria)의 종교회의(A.D 425)

      15개 조항으로 된 이 종교회의의 제 12항을 보면 병상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그의 근면성과 믿음을 증명해 주 지 못하거나 그 직무가 요구하는 일을 만족시켜 주지 못할 때는 결코 성직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필요에 의해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Dr.Wall, 역사적 주석, Vol.II, P.386,387

       

      니뮤러스의 종교회의(A.D 1284)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물 뿌리는 세례를 베풀 수 있다

      Schaff &Herzog, 백과사전, P.201

       

      라벤나의 종교회의(A.D 1311)

      침수세례와 물 뿌리는 세례는 동일하다

      그러나 스코트랜드 에서는 종교개혁이후 (16세기 중엽)까지 약식세례를 베풀지 않았다. 이 나라에 약식세례가 침투한 것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기간이였다. 허지만 같은 세례는 기성 교회로부터 세례로 인정 받지 못했다.

      Edin Burgh, 백과사전, Baptism, P.

       

      이토록 세례가 원래의 의미를 퇴색하다 보니 어떤 영어사전에는 세례에 대한 원어는 세례 후보자에게 물을 뿌리거나 물을 붓거나 물속에 잠기게 하는 하나의 행위를 세례라고 했다.

      William Allen Neilson, Webster's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P.216

       

       

      III.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A.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가 16:15,16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B. 구원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세례를 받음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된다

      2: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悔改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22:16 이제는 왜 躊躇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

      10:47,48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異邦人)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6:23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세례를 받음으로 중생을 하게 된다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 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 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 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 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 (니고데모)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 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 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가는 것이라 세례를 받음으로 성령이 내재한다.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IV.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 복음을 들은 자

      10:13-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자기를 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지난 날의 죄를 회개한 자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 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자

      16:13-16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데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 세례를 받는가 아니면,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이 순종하는 자세로 세례를 받는가?

       

      언듯듣기에는 똑 같은 얘기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래에 제시한 성경을 통해 어느 것이 선행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6:;15,16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1.믿음이 있고, 2.세례를 받고, 3.죄사함 받았다. 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1.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2.회개하고, 3.세례를 받고, 4.죄 사함을 받았다.

      사울이 아나니아로부터 안수를 받고 눈도 밝아지고 성령도 받았으나, 아직 물세례를 받지 않았을 때 아나니아가 사울을 향해;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1.아나이아의 말씀을 듣고, 2.세례를 받고, 3.죄 사함을 받았다. 어디를 봐도 죄 사함받고 구원받기 위해 세례를 받았지, 이미 구원받은 자가 순종하는 의미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곳은 볼 수 없다.

       

       

      V. 언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교회 혹은 교파들 간에 다소 다른 견해를 볼 수 있다. 어떤 교회에서 는 세례 받기를 원하는 자에게 곧 바로 세례를 베푸는가 하면, 어떤 교회에서는 아 무리 세례 받기를 원한다 해도 바로 세례를 베풀어 주는 게 아니고 먼저 그의 교회 생활을 통해 그의 신앙을 시험하고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고 인정되면 학습세례(학습 문답)를 하고 또한 그로부터 6개월 내지 1년쯤 경과 되었을 때 최후로 세례를 베푼다.

       

      마치 2,3세기 교회들이 세례받기 원하는 세례 지망자에게 2-3년의 교육기간을 필요로 했듯이.. 이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참 좋은 제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를 성서에 비추어 보면 경우에 따라 큰 과오를 범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경은 세례를 구원의 요소로 가르치고 있다. 일 예를 들어 세례지망 자가 세례 받기를 원해 이런 과정을 거치는 중에 불의의 사고로, 혹은 중병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하자 이 경우 세례받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는가? 세례 지망자? 아니면, 세례를 미룬 집례자?.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2:38). 교회가 존재하고 각교회마다 교역자를 모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교리를 내 세우기에 앞서 성서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줄 안다. 특히 구원에 관한 문제는. 교리가 아무리 중하다 해도 성서와 대치되는 점이 있다면 성서를 따름이 마땅한 자세가 아닐까?

       

      이제 성경에서 세례 베푸는데 소요된 기간을 살펴보자.

      성경엔 누구든지 세례받기를 원하면 즉시 세례를 베풀어 주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3천명이 바로 그날에 세례를 받았고(2:37-41), 빌립이 내시를 세례 준 것(행전 8:26-40)도 내시가 빌립을 만났을 때까지 그는 그가 읽고 있던 성경을 알지 못했다. 빌립의 전도를 듣고서 이 말씀을 깨닫고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세례받기를 원해 둘이 卽時 물에 내려가 세례를 베풀었다. 고넬료가 받은 세례도 그렇고(10:45-48), 루디아가 받은 세례가 그렇다(16:13-15). 또한 옥중의 간수가 받은 세례(16:19-34) 도 그렇다. 이 간수도 그 밤에 나가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경 어디를 봐도 세례 받기를 원하는 자에게 6개월이고 1년을 미루어 두었다가 세례를 베푼 적은 없다. 교리에 앞서 영혼 구원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줄 안다.

       

      초기교회 당시에 베풀어 졌던 세례의 관습

      초대교회 당시에는 세례식이 거행될 때 수세원 자는 교리문답을 맡은 자에게 가서 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이때 종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결혼한 자는 신실해야 하고, 미혼 남자는 결백해야 하고, 정신 이상자는 병이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한 수세원 자는 보통 2-3년 동안 도덕적인 것과 교리적인 교육을 받았다. 도덕적인 것은 12사도의 교훈안에 있는 두 길 (Two Way)을 배웠고, 교리적인 것은 4세기 전까지는 완전한 표본이 없었으나 그 후에 신앙의 규칙(The Rule of Faith)을 만들어 이를 공부하도록 했다. 이것을 요약한게 사도신경인데, 사도신경은 본래 서방교회에서 세례문답을 위해 만든 신조의 모형이다.

       

      일단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다고 인정되면 2차 시험을 치른다. 이땐 이들의 도덕을 입증할 수 있는 증인들이 그들의 도덕성을 증언해 주어야 한다. 현재하고 있는 일이 합당한 일인지, 부정한 방법으로 당를 획득하지 않았는지를 입증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순절 내내 참회의 시간을 갖고 수난절의 수요일에는 감독 앞에 나가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목요일은 목욕을 하고, 금요일은 금식하고 토요일엔 제마식을 한다. 이때 로마에서는 기름으로, 아프리카에서는 후보자 머리에 손을 얹어서 숨을 불고 십자가를 그린다. 일요일엔 철야를 하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세례장으로 가서 옷을 벗고 악마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고백한 후 다시 제마식을 거행한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하고 물속에 잠기거나, 물을 붓거나 물의 분출구 아래 앉아서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나면 교회 안에서 자기의 자리를 배정받고 주의 만찬에도 참여하는 영광을 갖게 된다.

       

      힙폴리투스와 터툴리안이 전해주는 바에 의하면 A.D 3세기경엔 세례를 받을 때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 각각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세례 지망자는 예, 믿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매 번 대답을 할 때마다 세레 지망자를 물속에 잠구었다 한다. 세례를 베푼 장소는 원칙적으로 강이나 호수였으나 1세기 말경 머리에 물을 세 번 붓는 것으로 세례를 받는 관습이 생기자 주택이나 교회에 세례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세례 통은 8각형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가 주님께서 제8일에 부활 하셨음으로 이를 상징했다는 이도 있고,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노아의 방주 속에 8식구가 구원받은 것을 상징하여 8각형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J.W.C.Wand, 이장식, 교회사(초대편), P.142-144,324-326

      Michael A.Smith,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10

       

      그들은 세례를 입교하는 최후의 단계로 여겼고, 모든 죄를 사함 받는 표시로 받아 드렸다. 이때의 사람들은 세례를 만년에 가서 받는 관습이 있었다. 아마도 토틀리안과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믿는다. 콘스탄틴 대제도 임종시(A.D 337) 까지 세례를 연기해 왔다. 또한 A.D 400년 까지 기독교인들 중에 관직에 있는 자가 그의 임무중 고문을 행하거나 죄인을 처형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죽기 직전까지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세례 받은후에 지은 죄는 교회라 해도 그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병든 자가 침대 위에서 받은 세례에 대해 그같은 세례(Sick-bed baptism)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고 세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한다.

      Henry Chadwick,서영일, 초대교회사, P.155,156

      Elgin S.Moyer, 곽안전, 인물중심의 교회사, P.43

      Richard A.Todd,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9, 130

       

       

      1. 십자가상의 강도의 구원 문제(누가 23:39-43)

       

      첫째로 이 강도가 구원 받은 것은 특별한 경우로 생각된다. 우선 이 강도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했으므로 그가 낙원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도 있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세도 있으므로 예수님께서 이 강도의 죄를 용서 하시려면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강도를 용서 하셨다.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강도는 시대적으로 보아 율법시대에 속한 사람이다.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이 강도는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중간기에 속한 사람이다. 율법에 속한 사람은 율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세례를 받아야 할 의무는 없다. 세례는 예수님이 오신 후에 제정되었다. 은혜시대에 속한 사람만이 세례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예수님이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한 말씀은 예수님의 생존 시에 하신 말씀이다. 율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 하셨을 때 완성되었다(히브리서 9:17, 로마서 7:1-6). 그러므로 이 강도는 율법 아래서 이 같은 구원을 받은 것이다. 고로 이 강도는 세례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다.

       

      2. 하루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을까?

       

      베드로가 설교(행전 2:14-41) 를 제3(오늘날 9) 에 시작했으므로 3시간 정도 설교를 했다고 가정할 때 제6(오늘날 12) 쯤 엔 설교가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오부터 6시까지 6시간 동안은 세례를 베풀 수 있었을 것이다.집례자가 한곳에 있고 군중들이 줄을 지어 들어 온다면 한 사람에게 세례 베푸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분 정도면 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6시간에 360명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다. 여기에 12사도가 함께 세례를 베풀었다고 생각할 때 4320명이 세례를 받았단 결론이 나온다. 사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무리들의 갈급 했던 심정에 비한다면 한 사람이 세례 받는데 그 절반인 30초면 족했을 것이다.

       

      3. 예루살렘 近處3000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 실로암 못

      성전 울타리의 바로 남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못이다.

      길이 50 feet, 넓이 16 feet, 그 주위에 돌담이 18 feet 로 쌓여 있다. 북쪽 끝에 있는 마리아의 연못으로부터 지하 도랑을 통해 물을 유지 하는데 그 반대 쪽에 두 개의 구멍이 있다. 하나는 바닥에 있고(막혀 있음), 하나는 3-4 feet 위쪽에 있는데 이 정도 수심이라면 세례받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 위쪽 기혼

      욥바 문에서 반마일 서쪽에 있다. 길이 316 feet, 넓이 218 Feet, 깊이 20 feet정도다. 이 못은 지면 배수로 채워졌는데 지금은 물이 차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오순절 당시 물이 적당히 채워졌었다면 세례받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아래쪽 기혼(설탄의 못)

      시온 산 서쪽 언덕아래 있는 골짜기를 가로 질러 인공적으로 만든 못이다. 골짜기 위쪽에 592 feet나 되는 높은 벽이 있다. 수심이 깊으나 두께가 2-3 feet 되고 넓이가 8-10 feet쯤 되는 돌이 여러 곳에 돌출되어 있어 12사도가 함께 세례를 주어도 서로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세례를 줄 수 있는 장소가 여러 개 있다. 이 못 역시 지금은 황폐해 있다.

      맥가비, 김신행, 사도행전 새 주석, P.19,20

       

      요한의 세(John Baptist)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요한에게 임했다(누가 3:1,2)는 말씀은 약 300년간 하나님과 단절된 삶에서 방종하게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긴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의 입을 통해 다시 유대 땅에 들린 것을 의미한다. 그 소리가 장차 임할 진노를 피하기 위해 회개를 촉구하는 외침 이었다(마태 3:7, 누가 3:7). 그는 주님의 오심을 경고했고 심판이 임했음을 선포했다.

      회개의 세례는 죄 사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구원이 약속되어 지지 않았다. 요한의 세례는 한시적 이었다. 요한의 임무 자체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그에게 세례를 받은 후로는 요한의 세례는 점점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은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우선 사도행전 19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그들이 대화한 내용을 살펴보면

      바울: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제자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하였노라

      바울: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제자들: 요한의 세례로다

      여기에 보면, 바울은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라고 가르친 후, 이제부터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하여 처음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했던 그들이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성경은 세례받을 때 성령을 선물로 준다고 가르친다(행전 2:38)

       

      그런데 칼빈은 요한의 세례를 사도들이 베푼 세례와 동일하게 보았다. 그리고 사도 행전 19:1-7에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았다고 한 말을 이는 물세례를 의미하는게 아니고 성령의 세례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눈에 보이는 은사가 안수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John,Calvin,김문제,기독교강요,4, P.495, 496

       

      칼빈의 주장은 그릇된 주장이다. 그는 이 문장 중에서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한 이 부분을 생략해 버렸다. 그리고 그 뒷부분에 있는 안수 하니 성령 받았다는 것만 강조했다. 성경은 세례도 받았다고 했고, 안수를 하니 성령이 임했다고 했다.

      이 말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저들이 비록 세례를 받았다 하드래도 성서적인 세례(물에 잠기는 세례) 를 받지 않았다면 성서적인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함을 가르켜 주는 교훈이라고 하겠다.

       

      물세례를 부인하는 교도들,

      초기 소시누스 교도들(Socinius)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 전서 117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해서 물세례가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이들은 이 성구를 인용하여 바울에게 세례받은 사람은 오직 그리스보와 가이오 뿐이다. 바울이 많은 사람에게 전도하였지만 세례는 단 두 명에게만 주었고, 이들에게만 세례를 준 것을 또한 감사한다고 했다. 이로 보건대 세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세례는 사도들에 의해 교회를 유대인들과 이교도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시행된 하나의 잠정적인 예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물세례를 경히 여기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내에 발생한 파당을 책망한 얘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고전 1:17의 말씀의 진의는 교회 내에 자리 잡은 파당들의 그릇된 사고를 깨우치고자 해서 한 말이다. 이들은 바울에게 세례받았으면 바울파로 인식했다. 바울은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세례 주려 다닌게 아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고 말한다. 복음이 전해진 곳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저들은 또한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퀘이커 교도들(The Quakers)

      이들도 이와 유사한 이유로 물세례를 부인한다.

       

      구세군

      물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구세군기로 대체한다. 그들은 구세군기 앞에 선서하는 것으로 세례를 대체한다.

       

      유아세례

      일반적으로 고전 7:14, 골로새서 3:20, 에베소서 6:1 에서 유아세례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 같다. 이들 성경은 하나 같이 [성인이 된 후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도행전 16:15에 보면 루디아가 개종한 것을 소개할 때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다 했는데 그도 자녀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여기에 유아세례의 가능성을 둔 것 같다.

      John Calvin, 김문제,기독교강요,4, P.529

       

      그러나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Paedobaptist)들도 상당수가 유아세례가 사도들과 초대교회에서 베풀어 지지 아니했음을 시인한다.

      Henry M. Morris,III, Baptism, P.40

       

      Dr.아우구스터스 네안더(Dr.Augustus Neander)는 말하기를 세례는 믿음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세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초대교회에서는 침수 세례만 베풀어졌다. Augustus Neander, history of Christ, Religion and Church, Vol. I, P.311그러면서도 그는 이레네우스의 글을 인용하여 유아세례를 지지했다. 이레네우스는 유아세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속하려 오셨다. 유아, 어린아이, 소년, 청년, 노년 할 것 없이..., 유아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유아가 되셨고, 어린아이를 성화시키기 위하여 어린아이가 되셨으며, 또한 저들에게 모든 경건과 선행 및 순종의 본을 보여 주었다. 청년을 성화시키기 위하여 청년이 되셨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이룩해 놓은 구원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tion, P.260 그리스도교 대사전 P.826

       

      이레네우스(Irenaeus / A.D 140-203)

      그의 어린 시절은 별로 알려 진 게 없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의 제자로써 서마나 회가 남부 까울(지금의 프랑스)에 선교사업을 시작할 때 그곳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이 기간 동안 얼마간 장로로 시무 했으나 마커스 오렐리어스의 박해로 리용의 감독 포티너스(Pothinus)가 살해되자 그의 뒤를 이어 A.D 178년에 리용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사도시대의 신앙을 후 사도시대에 계승한 자로 후 사도시대의 제 1인자다. 그는 목회 외에도 문서활동 및 선교활동을 통해 그의 생애를 보냈고 이단퇴치(특히 Gnostic학파) 에 심혈을 기우렸다. 그의 저서로는 5권으로 된 이단 논박(Against Heresies)과 사도적 설교의 증명 등이 있다

      E.S.Moyer,곽안전 ,인물중심의 교회사, P.59

       

      네안더 박사는 이 같은 이레네우스의 주장에 同調하여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이교도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구분짖고, 기독교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은 그들에게 비기독교적이 정신이 침투되기 전에, 저들이 자아의식을 갖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영적생활의 원리를 주입시켜야 한다. 이러한 가시적인 표현이 세례인데 이 같은 세례를 유아 때부터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261

      John Calvin,김문제, 기독교강요, 4, P.552,553

       

      이에 반해, 카르타고 그리스도교의 신학자 터툴리안은 A.D 185년에 그의 저서 세례론에서 유아세례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들이 자라고 배워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알고 그들이 무지한 시대에 지은 죄를 용서함을 서두를 때까지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가르쳐 그들이 세례받기를 요구할 때 세례를 주어야 한다. 만일 유아세례가 사도들의 가르침이였다면 어떻게 터둘리안이 이렇게 강하게 반발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사도의 가르침이 아님을 입증해 주는 얘기가 아닐까?

       

      터툴리안 (Turtullian)

      터툴리안(A.D 160?-230?)이 남긴 수많은 저서 가운데 북 아프리카의 교회에 관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논쟁들을 보여주고 있다.

      A.D 197년 변증서 / Apology"란 책을 저술하여 당시 만연했던 철학적인 논리로 교회를 비방하던 자들에 대해 교회를 옹호하고, 다신론적 사회(Polytheistic Society)의 부패와 정치적 비리를 호전적으로 공박했다. 그는 또한 이교도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대응해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었는데 우상숭배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대중적인 오락을 즐기다 죄에 휘말리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군에 입대하지도 말고 관청이나 교육기관에도 종사하지 말라고 했다.

       

      터툴리안은 어떤 성직자가 세례 후에 범죄한 죄들, 간음이나 배도자들까지도 교회가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칙령을 내리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세례 후에 지은 죄(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죄)와 배교 행위는 교회라 할찌라도 그들의 죄를 사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한동안 그는 몬타니스 파를 옹호했으나 교회가 영적이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몬타니스 파가 주장하는 새로운 계시와 존재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자 교회를 떠나 교회 밖에서 생애를 마쳤으나 교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제롬(Jerome) 에 의하면 시프리안은 그를 사부라 부르고 날마다 그의 저서를 통해 공부했다고 한다. 또한 터툴리안이 프라케아스(프라크세스)를 대적하여 저술한 소 책자에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잘 정립했다고 한다. 또한 터툴리안이 사용한 용어는 후일 서방교회가 삼위일체 및 기독론을 만들 때수 없이 인용했으며, 교황레오(Leo The Great)의 교리집(Tome)에도 많이 인용되었다.

       

      터툴리안 당시 카르타고에는 많은 박해가 있었다. A.D 180년엔 12명의 시킬리움(Scillium)출신 그리스도인 들이 순교를 당했고, A.D 202년엔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가 카르타고에 추방령을 내려 카르타고의 원형 경기장에서 퍼페투아(perpetua)와 펠리기타스(Felicitas)가 순교했다.

      Henry Chadwick,서영일, 초대교회사, P.108,109

      Everett Ferguson, 교회사핸드북, P.111

      Turtullian, 변증서, P.21

       

      카르타고의 종교회의(A.D 253)

      이런 변질된 세례에 호의를 품은 자는 카르타고의 감독 시프리안(Cyprian)이었다.

      A.D 253년에 소집한 이 종교회의엔 64명의 감독들이 모여 터툴리안의 문의에 의해지연 되어온 세례(유아세례)를 논했는데 이때 진지하게 논의 된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느냐, 베풀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다룬게 아니고, 아이들이 출생하면 생후 둘째 날이나 세째 날에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 는 것이었다. 거기서 난 結論은 부모나 신부의 요구가 있을 때 유아들에게 빨리 세례를 베푼다. 그렇다고 그 후로 곧 유아세례가 베풀어지지는 않았다.

      Henry M. Morris, Baptism, P.41-43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11

       

      터툴리안과 시프리안은 둘 다 세례를 통해 중생됨을 강하게 믿었던 사람이다. 참고: 시프리안에 대한 얘기는 p.11 을 참조하라.이제, 세례가 변질되어 간 과정을 살펴보자

       

      멜라의 종교회의 (A.D 416)

      .크리스찬(John T.Christian)에 의하면 어거스틴에 의해 주관된 이 회의는 15명이 모였는데 누구든지 어머니로 부터 갓 태어난 어린이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거부하거나,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세례를 받는 것은 감독의 재량에 두지만,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원죄까지 세례(중생의 찾음) 로 속죄 된다 하는 자는 고소한다.

      Henry M. Morris, III, Baptism, P.43

       

      어거스틴은 비록 유아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유아세례를 강력히 주장한 사람이다. 밀리건에 의하면, 3세기 중엽에는 북 아프리카에 유아세례가 보편화 되었고,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 제기된 문제는 유아세례를 출생 직후 베푸느냐, 할례처럼 생후 8일 만에 행하느냐 하는 것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12

      Augustus Neander, History of the Christ, Religion and Church, Vol.1, P.311-313

       

      힙포의 감독 어거스틴 (A.D 353-430)

      힙포의 감독 오렐리어스 어거스틴 (Aurelius Augustine)A.D 354년 북 아프리카의 누미디아 (Numidia; 오늘날의 알제리아)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베르베르(Berber)가문의 파트리시어스 (Patricius;시의원)와 모니카 (Monic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모니카로 부터 기독교 신앙을 배웠다. 어린시절에는 공부하는데 실증을 느껴 방황하다가 나이가 들어 버질(Vergil)과 그 밖의 위대한 문필가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수사학자나 법정에서 변론하는 공인 교사가 되기를 원했다. 17세 때 카르타고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의 먼 친척 되는 로마니아너스(Romanianus)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한때 어머니의 그 간곡한 기도도 아랑곳없이 육욕에 못 이겨 한 여자와 13년 동안 동거하여 아들을 가졌다.

      A.D 373년 키게로(Cicero)의 호덴시어스(Hortensius)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성서를 공부하는 것을 그만두고 키게로의 책을 즐겨 읽었으나 이도 시원치 않아, 9년 동안이나 마니교(Manichaeism) 추종자가 되었다. 마니교는 이원론적 사상, 범신론, 노스틱 주의, 금욕주의등 여러 가지 자연 철학과 합친 것으로 예배형식이 캐토릭을 많이 닮았다. 여기서도 그는 환멸을 느끼고 로마로 가서 철학자들과 사귀는 기회를 가졌다. 카르타고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A.D 384년 밀라노에서 제국의 수사학자가 되었고 암부로스주교(Ambrose)의 영향과 신 푸라톤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로마서 13:13-14을 읽다가 그의 정신적인 방황을 멈추게 하였다. 그는 A.D 387년에 세례를 받고, 모니카가 죽은 후 A.D 388년에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타가스테(Tagaste)에 연구와 명상을 위한 수도원 같은 공동체를 조직했다.

       

      A.D 391년 힙포에서 사제직을 강요받았고 396년에 카토릭 주교가 되었다. 여생을 보내는 동안 목회와 성례전의 집례자, 재판관, 저술가로 일해 왔다. 또한 어거스틴은 도나터스파의 재 세례를 철저히 반박했다. 또한 켈레스티우스가 유아 세례에 도전하자 그들을 공격했다. 그는 힙포(A.D 393), 카르타고 (A.D 397)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성서의 정경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캐토릭 교회의 同文通達(回勅)을 집필했다. 동문통달이란 캐토릭 교회 본부에서 여러 종교 회의를 통해 각 교회에 보내는 사무적인 서신을 말한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컸다. 어거스틴 당시 세 개의 적이 있었는데, 마니주의, 도나티즘및 펠리가안주교가 그것이다.

       

      도나터스의 주장은;

      1. 진정한 교회는 오직 충성 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다 (교인의 순결 강조).

      2. 세례로 중생 됨을 믿는다.

      3. 박해 시 성서를 부인한 자들이나 의심 스런 교역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재 세례주장).

      4.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5.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속인의 간섭 배제).

      이들은 관용정책을 쓰는 감독을 폐위하고 A.D 316년에 도나터스를 감독으로 세웠다. 그 후로 카르타고에는 두 명의 감독이 있었다. 이들은 몬타나스파와 노바티안파가 가지고 있던 퓨리탄적인 경향을 띄고 있었다. 콘스탄틴 대제에게 후원을 청했다가 오히려 이단으로 정죄 받아 어려움을 당했으나, 후에 콘스탄틴이 그의 정책을 바꿔 A.D 321년에는 이 에 대해 신앙의 자유를 주는 새 법령을 선포했다. 그래서 A.D 330년에는 270명이나 되는 감독들이 이 를 따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7세기에 마호멧교도 들에게 항복하고 종적을 감쳤다.

       

      펠라기우스(Pelagius; A.D 370-440)의 주장은;

      1. 원죄는 없다.

      2. 유아세례는 필요치 않다.

      3.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므로 죄를 짖지 않고 살수도 있고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카르타고의 종교회의 (A.D 418)

      아프리카 전역에 있는 200여명이 넘는 감독들이 어거스틴의 사상으로 인식되는 8개의 법규를 제정했다. 이 종교회의를 연 첫 번째 이유는 영국의 수도사 펠라기우스 (Pelagius)[세례 받지 아니한 어린이도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 것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누구든지 유아세례를 거절하거나, 죄 사함을 얻는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어린아이의 원죄가 없어진다고 주장하면 파문하기 위한 모임이다. 또 이 회의에서는 세례에 先行하는 어린아이의 구원의 개념에 대해 얘기했는데 누구든지 세례받지 아니한 어린아이들이 죽었을 경우 그들이 행복하게 살 천국, 혹은 어떤 다른 중간지점이 있다고 말하는 자와, 세례 받지 않고서도 천국에 갈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파문 시킨다

      4 세기말과 5 세기사이에 빈번히 있었던 종교회의 이후 로마 캐토릭 교회의 제도는 더욱 경직되어 갔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후원을 입고 아프리카, 스페인, 영국 및 중동에서 권세를 떨쳤다. 그러나 로마 캐토릭 교회의 동문통달이나 교리를 거부하는 교회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종교을 반대하고, 대도시 감독들의 비성서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유아세례를 반대했기 때문에 큰 교회들처럼 종교회의에 참여 하거나 정치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가 보편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고 이때까지 기독교 신앙의 본성과 성례에 違背되는 세례는 강조되지 않았다. 샤프(Schaff)에 의하면,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세례에 대해 혼란을 느껴 {한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세례를 받은 후에 다시 죄를 저지를 경우, 속죄하는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해 세례 받기를 임종 시 까지 미루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Henry M. Morris,III, Baptism, P.44

       

      아래의 바질에 대한 얘기는 종교회의와는 관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도 세례가 바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통탄한 기사가 있기에 소개한다. 귀하는 세례에 대해 항변하는가, 외면하는가, 회피하는가?, 귀하는 세례문답을 할 때 진리를 알고서 세례문답을 하는가? 전 생애를 탐구자로 지낼 참인가 늙을 때까지 제고만 할 것인가? 지난해까지 살았다고 해서 올해도 살줄로 아는가, 내년까지도 살아 갈 줄 생각하는가? 정신 차려라

       

      대 바질(Basil, the Great)

      . 크리스찬에 의하면 바질은 A.D 370년에 가아사랴와 가바토기아 지역의 감독이 되었는데, 세례를 통한 중생을 믿었고, 유아세례를 강력히 주장했으나 감독이 된지 10년쯤 되었을 때 세례가 건전히 시행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위와 같은 호된 책망을 했다 한다.

       

      제런다(Gerunda)의 스패니쉬 종교회의(A.D 517)

      유럽에서 처음 실시된 이 회의는 7명의 감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의 치하에 교회가 지켜야 할 10가지 규례를 정했다. 규례(Article) V 에 보면, 유아세례에 대한 교리가 있는데 근래에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비록 그들이 갓 태어나 유약하고, 어머니 젖도 잘빨지 못하는 어린아이 일지라도 이들 부모가 그들 자녀에게 세례 주기를 원하면 세례를 주라. 그러나 이때까지 유아세례가 공공연히 베풀어 졌던 것은 아니고 유아가 세례를 받도록 계몽하는데 그쳤다. 이와 같이 서방교회에서도 어린아이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언제부터 어린아이들에게 물 뿌리는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6세기 말 까지는 유아에게도 침수세례를 베풀었다.

       

      교황 스테반 II(Pope Stephen II, A.D 752-757)

      교황 직위 4일 만에 죽은 스테반 2세를 포함하면 스테반 3세가 된다. 교황 스테반 2세가 A.D 753년에 롬보드 왕 이돌포스에 의해 로마에서 쫓겨난 후 프랑스로 도망갔다. 거기서 프랑스 (751-768)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때에 브리타니에 있는 크레시 수도원(Monky of Cresy)에서 유아세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필요한 경우에만 어린아이에게 머리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는 것이 합법적이다. 고 했다.

      John Rowe, 감화원 운동의 역사 P.456

       

       

      베트 (영국.리치몬드의 웨슬레신학교 조직신학교수)

      유아세례가 사도시대에 행해졌단 기록은 신약성서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서슴치 말고 인정해야 한다

       

      알버트 브렛드(감리교)

      유아세례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마땅히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신앙의 한 요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성서를 살펴봐도 유아세례를 권장하는 말씀은 한말씀도찾 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종교의식을 사도나 그리스도가 말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논리적 변사에 의하여 정당화 시킨다.

       

      하인리히 아구스트(독일.루터교회)

      신약성서 어디에도 유아세례가 언급된 것이 없다. 또한 사도들이 유아세례를 베풀었단 기록도 없다. 그러나 유아세례는 후기 사도시대에 와서 교회가 복잡해 짐에 따라서 생겨난 성체 중의 하나로 생겨났다. 시프리안이 유아세례를 주장하기는 했으나, 터틀리안 이전에는 유아세례가 베풀어진 흔적은 없다. 어거스틴 이후에 와서 유아세례가 보편화 되었다.

      --사도행전 주석 P.312--

       

      아우구스터스 레안더(루터교 역사가,교회사의 권위자)

      세례가 처음에는 성인들에게만 베풀어 졌다. 왜냐하면 신앙과 세례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Robert Milligan, Scheme of Redemption, P.409

      Augustus Neander, History of Christ, Religion and Christ, Vol.I, P.311

      존 칼빈(장로교 창시자)

      칼빈의 유아세례에 관한 주장은 좀 더 지면을 할애코저 한다. 그의 주장은 신학적이요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례를 구원 얻기 위한 필수요건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그는 세례를 기독교의 입문정도로 본다. 세례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종교를 증거하는 하나의 깃발이다.

      John Calvin,김문제 , 기독교강요, 4, p.521

       

      또한 그는 세례를 할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그는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세례와 할례의 차이는 외형적이 의식만 다를 뿐 동일하다. 외형적인 의식은 극히 적다. 약속의 말씀과 거기에 나타나 있는 성질 자체가 큰 것이기 때문에, 할례에 대해 말씀 하신 것은 곧, 세례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확정해도 좋다. 할례가 세례의 위치를 계승하고 우리에게 동일한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John Calvin,김문제, 기독교강요, 4, P.523,524

       

      칼빈은 유아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나면서 부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에베소 2:3), 죄 가운데 잉태했기 때문에 (시편 51:5) 하나님의 나라가 열려 지기 전에 이 상태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유아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는 또한 고린도전서 12:13에 있는 말씀 세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에 접 붙임을 받았다 한 말을 들어 어린 아이들도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세례를 주어야 한다며 유아세례를 강조했다.

      John Calvin, 김문제, 기독교강요, 4, P.550

       

      또 온 집이 세례를 받았다(루디아의 경우) 했을 때에 온 집이란 말 속에는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음으로 그 집에 아이들이 있었을 경우 그 아이들도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John Calvin,김문제, 기독교강요, 4, P.529

       

      가능한 추리라 본다. 그러나 그 집에 자녀들이 있었을 경우로 상상 할때, 나는 그 아이들이 최소한 신앙이 무엇인지!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하는 정도는 알았을 것으로 본다. 이 문제는 기여코 의의를 제기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찬은 주의 몸과 피를 분별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주의 죽으심과 사심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연령적인 구별을 두었지만 세례는 아무런 연령에 구별을 두지 않았다고 했는데, 글쎄 만찬은 그렇다 하더라도, 세례에 연령의 구별을 두지 않겠다는 얘기는 억측이다. 우선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세례 받는데 연령의 제한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John Calvin, 김문제 , 기독교강요, 4, P.561

       

      또 그의 저서 가운데 요한복음 3:5절을 풀이하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한 말씀에서 물과 성령을 어떻게 물과 같으신 성령으로 풀이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성령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을 신자의 영혼에 물 대신 성령을 부어서 깨끗하게 하고 윤택하게 한다는 식으로 풀이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John Calvin, 김문제 , 기독교강요, 4, P.554

       

      성경은 분명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아무리 성경을 잃어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지, 칼빈의 주장처럼 물과 같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는 필경 유아세례를 주장하기 위해 이같이 풀이 했으리라 생각된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세례를 받는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아야 할 대상은 죄인이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죄인이라 하셨던가? 오히려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19:14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제자들이 서로 큰 자가 되려고 논쟁 할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던가?

      18:3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다윗도 죽은 아들을 애도하며

      삼하 12:23 (아이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 하리라 했다. 다윗의 관념에도 그가 죽으면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을 믿고 있었다.

      성경은 어디에도 어린 아이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웨슬레는 그의 세례에 관한 논문에서,

      만일 어린이들이 원죄가 있다면, 그들은 세례를 받아야 합당하다. 이로 보건대 정통적인 방법에 따르면, 세례로 저들의 죄를 사함받기 전에는 구원 받을 수 없다

      Introducing The Church of Christ, P.116 / Doctrinal Tracts, P.252

       

      유아는 복음을 깨닫지 못한다. 또한 믿음을 가질 수도 없다. 회개할 만한 죄를 짖지도 않았다. 그들 입술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지도 못한다.그런데 어떻게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루디아 집 식구들이 세례 받은것(행전 16:15), 간수장의 집 식구들(행전 16:31-33), 스테바나의 집 식구들(고 전 1:16)을 들어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나 성경 어디에도 이를 입증해 주지 않는다. 성경은 어디를 봐도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믿 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기에 충분한 나이에 속한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

      언제 부터 유아세례가 교회 안에서 베풀어 졌는가?

       

      위에서도 잠시 고찰해 보았지만, 이를 정확히 알아맞추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로마교회와 비로마 교회간의 대화의 결핍 때문에 어느 한 편 만을 기준해서 시행연대를 말하기 대단히 어렵고, 둘째 로마 캐토릭 교회 제도를 기독교와 동일하게 받아 드리느냐 받아 드리지 않느냐에 따라 그 연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캐롤( J.M.Carroll)은 그의 저서 {The Trial of Blood} 에서 5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5-6세기 사이에 로마 캐토릭 교회 성직정치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필경 그 사람들 중 엔 로마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들의 제도와 교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해서 죽은 성도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만일 로마 캐토릭 교회에서 행한 것을 기독교에서 행한 것과 동일한 시각에서 본다면 6세기까지는 이토록 캐토릭 교회의 교리에 반대하는 교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대부분의 교회들이 7세기 중간 혹은 8세기부터 유아세례를 베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무리는 아닐것 같다.이제 결론으로, 2세기까지는 물 뿌리는 세례가 시행되지 않았고 북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6-7세기 까지 침례를 행했던 것을 볼수 있다. 5세기 이후에는 성인의 세례는 점점 사라지고 유아세례가 일반적으로 시행되었다.

      Lion,송광택, 교회사핸드북,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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