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목회(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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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목회(은퇴)
은혜에서 은혜로 참빛-김부열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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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로서 섬기게 되리라는 것은 나의 계획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형을 따라서 여섯 살 때부터 효창 그리스도의 교회를 다녔으며, 그곳에서 자라,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에서 32년간 사역하다가 지난 1월에 은퇴 예배를 강서대학교에서 드렸다. 돌이켜 보면, 내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문을 여시는 대로 순종하며 섬기다 보니, 결실도 보며, 보람과 감사로 살아가게 하셨다. 그 감사를 몇 가지로 적어본다.

점차 요단강 중심에 서게 하셨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내디디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도록 요단강의 가운데 섰듯이. 한국 전쟁 후에 태어나, 선교사들이 세운 효창동 그리스도의 교회에 나가게 되고, 그 문화 속에서 배우며 성장하다가, 복음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니, 이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리스도신학대학에서 공부하며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회에서 섬기게 되었고, 군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공병의 의무와 군종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리스도신학대학 학생주임으로 근무하면서 학생활동과 예배 순서를 담당하게 하였다. 싱가포르에서는 한인교회 주일학교 인도, 설교 통역, 건설 현장 교회, 심방, 그리고 주일 낮과 밤 예배, 수요예배, 철야 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리고 방문하는 선교사를 섬겼고, 마침내 싱가포르한인교회 1호 선교사로 후원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반둥의 선교사 훈련학교에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싱가포르에서 가까운 인도네시아의 바탐섬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한인들이 배 수리와 공항건설을 하기 위해 와 있었고 그들을 위하여 현지 예배당을 빌려 한인교회를 시작하였다. 또한 현지인을 위한 유치원, 초등학교를 빈민촌에 세웠다. 한인교회 예배를 위해 예배당을 빌려주었던 인도네시아 개신교회와 협력하며 인근 섬에 교회들을 도왔다. 그 기간에 한국 교회에서는 선교 열풍이 일어나 단기 선교팀들이 자주 방문하였고, 그들과 협력하였다.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복음신학교를 열게 되어, 신학생들과 함께 어린이 사역, 교사강습회, 복음 캠프를 했다. 2003년 4월 초에 바탐섬 빈민촌에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동역해 오던 실리똥아 목사가 전화했다. “메단시에 65명의 목회자가 모여 내일부터 세미나를 시작하려고 하니, 빠른 비행기를 타고 와서 강의하라”라는 것이었다. 항공료도 내준다고 하였다.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수마트라섬에서 갑부인 죠니빠데데에게 말씀을 전했더니, 그가 은혜를 받아, 매달 초에 목회자세미나와 부흥 집회 사역을 하는데 함께 동역하며, 재정도 담당해 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사역이 코로나 기간에만 온라인으로 진행한 것을 제외하고 오늘날까지 여러 지역으로 확장해 나가며 계속되고 있다. 집회 사역은 매년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상호 방문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한국과 인도네시아 교회가 연합해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얀마, 미국, 브라질 등에서 집회를 했다. 2022년 10월 초에는 1100명의 국내외 목회자와 2000여 명의 평신도가 모여 인도네시아 메단에서 2차 세계 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다가오는 10월에는 광림기도원에서 3차 세계 선교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선교사역은 디아스포라 한인들, 현지 어린이들, 빈민촌, 오지 섬에서 시작되었다. 주님은 복음을 사모하는 주님의 종들을 만나게 하여 집회를 하게 하셨다. 그 집회는 지역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또 세계로 지경을 넓히는 선교사역이 되었다. 예배당, 학교 건축 등의 하드웨어에서 출발한 선교가 강의, 프로그램, 세미나 등의 소프트웨어로 전환되게 하셨다. 육적인 봉사에서 교육적, 정신적, 영적인 것으로, 더 깊은 사역을 감당하게 해 주신 것이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의 중심에 선 것처럼.


 

대신 다른 어린이들에게 갚으며 살겠습니다

고등학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텍사스 브로드 스크릿 그리스도의 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장학금을 보내 주었다. 담당하시는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께 감사하는 편지를 썼다. “앞으로 내가 여러분들께는 갚으며 살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다른 어린이들에게 갚으며 살겠습니다.”

바탐섬을 싱가포르처럼 개발하려고,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면세 지역으로 개방하였다. 싱가포르와 타이완은 이 지역에 투자하였고, 그로 인하여 산업지대가 형성되었다. 이는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글을 밀어내고, 주거지를 형성해서 살다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낳다 보니 교육 시설들이 필요했다. 교인들과 함께 판자로 예배당도 짓고, 필요에 따라 유치원을 시작하였다. 25명의 어린이, 한 명의 교사와 함께 뚜나스 바루(새싹) 유치원을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졸업하여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들의 성장에 따라 학교도 확장되었다. 그들에게 복음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인형극, 연극, 찬양 및 율동, 캠프, 교사 세미나 등을 하는 은혜 선교회를 시작하였고, 영어, 컴퓨터, 제자훈련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을 미래의 지도자로 키우는 렘센타도 개설하였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었고, 스텝으로 봉사하게 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와 지도자로 살아간다.

30여 년을 섬기다 보니, 3개의 캠퍼스에 2500명의 학생, 150여 명의 교사로 늘어났다. 수천 명의 학생이 졸업하여 흩어져 나간다. 다른 아이들에게 갚으며 살겠다는 조그마한 마음으로 빈민촌의 25명의 유치원 아이들을 섬기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그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주님께 감사한다. 그중에 2명은 한동대학교에 유학 와서 박사과정에서 소형 원자로를 연구하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전기가 부족한 인도네시아에 소형 원자로를 설치할 날을 기대한다.


모든 것이 은혜였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몇 달이 안 되어 안성에서 태어난 후 서울로 올라와 효창공원 주변에서 살다가 결혼하여 방화동에서 살았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서 40년을 살다 보니, 이제 70세가 되었다. 올해 초에 은퇴하고, 처제와 처남 가족이 사는 아름다운 수원에서 살게 되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선교적인 삶은 끝나지 않았다. 제2의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동안 선교지에서 충분히 하지 못했던 기도를 매일 아침에 아내와 함께한다. 그동안 섬겼던 선교지, 바탐한인교회, 복음신학교, 렘센타와 뚜나스바루 학원을 위해 기도한다. 후원했던 효창교회, 그리스도의 교회들, 강서대학교, 그리고 후임자인 안동균, 김규태 선교사의 사역과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도 매달 초에 계속되는 목회자세미나와 부흥 집회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350개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유학과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들어온다. 그들을 위한 선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섬겼던 선교사들이 안디옥 인니 교회들을 6개 도시에 세웠다. 필자는 그중에 마나도 종족인 랜디 목사가 섬기는 수원 안디옥 교회에 출석하며, 섬기게 되었다. 지난 4월에는 인도네시아 목회자 팀(15명)이 방문했는데, 집회에서 동역하였다. 9월 20일에는 19명의 한국 목사팀들과 바탐섬, 뻐라왕, 바간바뚜, 메단에 가서 목회자세미나 및 집회를 할 예정이다. 10월에는 어명선교회와 연대하여 광림기도원에서 세계선교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선교, 세계 선교가 계속되도록 집회와 단기 선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 나가고자 한다. 소원을 주시고, 이루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은 탐욕으로 죄악에서 살던 나를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살게 하셨다. 첫 번째 은혜는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 은혜로 학생 시절을 보내고, 그리스도의 교회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 어느 날 에베소서 2장 8-9 말씀을 읽었다. 내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해 간증하며 복음 전하기 시작했다.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베푼 두 번째 은혜였다. 결혼 후에 그리스도신학대학에서 학생주임으로 근무하였다. 신학 교수의 꿈을 갖고 토플 시험도 보며, 유학 준비를 하였다. 아주사대학원에 입학 허가서를 받아 미 영사관에 신청했으나 비자를 받지 못했다. 싱가포르의 신학교에 길이 열려, 1983년 초에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하며 싱가포르 한인교회에서 6년간 사역하였다. 졸업할 때가 되니 싱가포르한인교회에서 선교사로 후원하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그래서 귀국하여 효창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미국 선교사들에게 강냉이죽, 옷, 우유, 장학금 등의 도움을 받던 내가 선교사가 된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였다.

하늘 문화권을 떠나 인간 세계에서 오셔서 선교사로 섬기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영광이다. 그래서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선교사의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주심을 믿고 나간다. 살아오는 동안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은혜로 품으시고 사용하시고 채우셨다. 주님께서 영원한 것으로 채우기까지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다가오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김부열 선교사/ 인도네시아 바탐에서 선교 활동한 후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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