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 참빛-조병근 | 2023-1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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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에서 일찍이 은퇴하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쇠퇴의 시대에 접어들어 교인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문 닫는 교회가 속출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에 대한 원인으로는 출산율 저하, 젊은 세대의 이탈, 교회를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 등이라고 풀이한다. 여기에 추가하고 싶은 것은, 강단의 노령화이다. 건강 100세라는 달콤한 언어유희가 교회 안에도 풍미하여 강단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목회자의 은퇴 나이가 60세 -> 65세 -> 70세로 고무줄 늘이듯이 늘린다. 교회 안의 자리는 텅텅 비워가고 젊은 세대는 떠나가는데도 홀로 유연 자적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마하 음속으로 변해가고 사람들의 사고와 언어는 빠르게 변해가는데, 언제까지 지난 세대의 낡은 언어로 강단을 울릴 것인지? 매번 되풀이되는 노쇠한 메시지는 메아리로 자신에게 돌아갈 뿐이다. 알파고가 세기의 국수 이세돌을 무너트린 것은 벌써 옛날이야기고, 이제는 AI(인공지능)가 챗 GPT 4.0을 세상에 내놓는 시대에 언제까지 100세대를 읊조리면서 강단을 독점할 것인지? 강단 위와 아래는 화성과 금성의 차이만큼이나 갭이 크다.
교회가 쇠락의 늪에서 탈출하려면 제일 먼저 강단이 젊어져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알맞게 말씀의 본질에 따라서 신선한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하며, 창의적인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다가가야만 교회가 소생할 수 있다. 강단이 젊어져야만 교회가 젊어지고 떠나간 교인들, 특히 젊은 세대가 연어의 귀향처럼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목사가 젊어져야만 젊음의 열정과 신선한 창의력으로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조기 은퇴의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교회 앞에 공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주안교회에 부임한 초기, 강단에서 65세에 은퇴하겠다고 공포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금세 65세가 밀물처럼 내 앞에 왔다. 은퇴하기 전년도에 어느 집사가 묻기를 “목사님 아직 젊으신데, 65세 은퇴한다고 약속한 것을 번복할 의향이 없으시냐”라고 물었다. 그 집사의 물음의 뜻은 아직은 은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만류의 요청이다. 그의 말은 뱀의 유혹의 언어처럼 달콤하고 고소했다. “그래 나는 아직 신체적으로 젊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였고, 영적으로는 은혜가 풍성하니 몇 년 더 목회하는 것이 교회에도 유익할 것이다”라고 자문자답도 하였으나, 목회자가 공포하여 약속한 말에 대해서 번복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은퇴 번복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강단에서 공포한 대로 65세에 은퇴하겠다”라고 답변하고, 곧바로 은퇴를 결단, 실행하였다.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목회의 길을 서약하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목회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려고 힘썼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 2:9).”는 말씀에 목회원칙과 근거를 두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며,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불의한 물질은 절대 취하지 않고, 공의와 정직의 바탕 위에서 목회자의 길을 겸허히 걷겠다고 서약하였으며, 한 번도 그 약속의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목회자로서 출발점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보민 목사께서 고향교회인 전도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 목사로 재임하다가 사임하고, 제주도 시흥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면서 제주도로 내려와서 같이 사역할 것을 요청하셨다. 이런 제안을 받기 이전, 학생 때에 목사가 될 것을 하나님께 서약하였다. 어느 해에 출석하던 교회집회에서 초청 강사의 말씀 중에 회개의 은사를 받고, 자신의 잘못한 것과 부족한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그때 하나님께 서약하기를 앞으로 성장하여 반드시 목회자로 헌신하겠다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그 후로 목회자의 삶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나의 성격으로는 목회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훌륭한 크리스천 사업가가 되어서 농어촌지역에 80개 정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사고로 죽을 고배를 넘기면서 삶과 죽음, 생명과 영혼의 문제를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 큰 사건을 겪으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 생명의 유한함과 세상 계획의 무익함을 뼈저리게 체득하였다. 그 후로 새롭게 결단하고 준비하던 사업계획들을 과감히 접었다.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가 시흥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 새내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1975년 8월). 시흥교회를 시작으로 서울 목동교회, 인천 주안교회를 거치는 목회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에 대한 목회 여정은 (참빛) 목회 단상(통권 385호, 2021년 5/6월호 39~45쪽)에 자세하게 기술하였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다루겠다. 본란에서는 다양한 자리에서 교계에 이바지한 역할과 헌신,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경적 뿌리와 정체성 등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시흥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하다 처음에는 시흥교회에서 직임 없이 봉사하다가 1976년에 교육전도자로 세움 받고, 본격적으로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사역할 때 시흥교회와 가마교회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겪었던 고초가 컸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큰 보람을 느낀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 어렵고 바쁜 과정에서도 배움의 갈증을 느껴 B.C.C. 성경통신을 공부하고 동계대학 4년의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였다. 목회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지역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단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이다. 지역선교의 지장이 올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 노선이 무엇인지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제주지역 목회자 모임에 참가하였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성경적 가치를 설명하고 목회의 유익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서울에서 명문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동남장로교회로 부임해온 목사가 있었다. 그분이 목회자 모임에서 그리스도신학대학이 복음적이며 선교사들이 영어 강의를 하는 등의 실력이 출중한 대학이라고 칭찬하였다. 그 후로는 다른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필자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 일을 겪은 후에 신학대학이 교회의 선교와 부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앞으로 평생 목회하려면 그리스도신학대학에서 공부해야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목표하고 기도한 대로 그리스도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대학의 중요성에 대해 경험했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착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더 학교를 사랑하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 당시에 대학은 불행하게도 관선이사 체재로 관선 학장의 전횡과 독선적 학사 운영 등의 불의를 행하는 일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학내 투쟁을 하였다. 결국, 급조된 학칙에 의해 징계를 받고 몇 년간 공부하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와 같은 수난이 필자에게는 대학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대학을 위한 헌신과 기도를 그치지 않는다. 필자의 대학 사랑은 그 어떤 이해 관련자보다 더 깊고 강하다. 우여곡절 끝에 몇 년 후에 복학하여 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였다.
목동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하다
4학년 가을 학기 졸업반 때, 목동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으로 부임하였다. 그 당시 교회당은 슬래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로 새로 예배당을 건축해야만 될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교회의 재정 형편은 가능하지 않았다. 예배당 건축을 위한 15년 목표를 작정하고, 교회 강당에서 꼬박 1년 동안 기도했다. 1년 작정 기도를 마친 후에 옆집 건축으로 인해 교회당 현관 일부가 무너지고 균열이 생기는 등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는 무작정 건축을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교회 공동회의에서 논의 끝에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막상 건축하려고 하니깐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첫째는 필요한 건축비 약 5억 원을 마련하는 것이고, 둘째는 교회 재산의 명의 문제였다. 그 당시 다섯 명의 공동명의로 등기되었는데, 그분들 중에 네 분은 목동 교회를 떠난 분들이고, 한 분만 남으셨다. 이것을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재산 분쟁요인이 되겠다고 판단되어 다섯 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동의를 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말로는 동의하면서도 막상 서류를 만들려고 하니 서로 미루면서 지연시켰다. 한분 한분에게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하여 간신히 서류를 받아, 재단법인 그리스도의 교회로 명의신탁하였다.
대지의 법적 문제를 정리한 후에는 건축비를 마련해야 하는 현실적인 큰 문제가 남았다. 건축비로는 옆집에서 받은 보상금액뿐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일간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방법을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의 섭리를 믿고 대대적인 건축 모금을 시작하였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까지 가서 동문과 가족 친지들을 한 달 동안 찾아다니면서 2만여 불을 모금하였다.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재정 부족, 이웃 방해, 난공사로 인한 중단 등의 숱한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완공하게 되었다.
주안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하다
주안교회에 취임하면서 교계를 위해 두 가지의 무거운 직무를 맡게 되었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협의회 회장과 그리스도신학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이사장(직대)의 직책이다. 필자는 어떤 일에 책임을 맡아 수행할 때에는 이 사역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가를 놓고 기도하고 숙고한 후에 행한다. 교역자 회장은 한국교회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이바지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에서 스스로 자원하여 봉사한 것이지만, 학교법인 이사장은 그 당시 법인 안의 복잡한 상황에서 떠밀리다시피 책임 맡게 되었고, 더욱이 직무대행자로서 할 수 있는 업무의 한계가 있어 고충이 많았다.
그 당시 학교법인에는 산적한 일이 얽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임대보증금을 반환해주는 문제다. 학교법인 소유의 건물을 전세로 사용하다가 IMF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서 임대보증금을 반환해 달라는 문제다. 학교법인에는 그만한 금액이 없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건물에 임대하였던 LG전자도 임대보증금 반환을 요청했다. 임대 만기일까지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자 보험공단은 학교법인 소유로 되어있는 인천 주안 그리스도의 교회 토지와 건물을 법원에 경매신청하여 집행하려고 하였다. 주안교회는 빌 램지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로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학교법인에 명의 신탁하였던 것인데, 학교법인의 부실운영으로 주안교회 재산이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주안교회 담임목사이며 학교법인 이사장의 입장에서, 만일 주안교회가 경매된다면 더 이상 목회할 수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쳤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학교법인 비교육용 부동산을 매각하는 길밖에 없다. 학교법인 소유의 다세대 주택을 매각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문제는 건물이 너무 낡고 오래되어 매각이 쉽지 않아 하나님께 방법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렵게 매수자가 나타나서 매각하여 보험공단의 임대보증금과 LG전자 임대보증금 일부를 반환하여 위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어려운 위기를 겪으면서 주안교회 재산을 학교법인에 신탁, 유지하는 것은 재산권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온 성도들이 공감하게 되었다. 교회 공동회의에서 교회 재산을 반환받는 것으로 결의하고, 학교법인에 반환을 요청하였으나 비교육용재산이라는 명분으로 거부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기피하여 할 수 없이 학교법인을 상대로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포함해서 법정투쟁을 약 10여 년 동안 진행하면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피폐해 졌다. 이로 인해 일부 성도들은 신앙의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기도 하였다. 목회자로서 마음이 매우 아팠고, 3년 동안 강단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 생활을 하였다. 6년 동안 재산반환소송에 올인한 끝에 승소하여 재단법인 그리스도의 교회로 명의신탁했다. 이로 인해 재산은 지킬 수 있었으나, 목회자는 번아웃되었고 교회는 영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했던 주안교회의 아픈 역사다.
교계를 위한 사역을 하다
교역자협의회/ 교역자회 회장의 중책을 맡은 후에 내적으로는 기도 모임과 세미나를 통하여 목회자의 질적 향상과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하였다. 도시교회와 농어촌교회 간에 연결과 협력, 미자립교회와 개척교회의 자립을 위한 서로 돕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소통과 협력하지 못하는 높은 담장을 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외적인 대외활동으로는 배타적이고 고정화된 한국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위상을 높이는 일에 부단히 노력했다.
학교법인/ 법인 이사장의 중책을 맡은 시기에 사학재단과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옭조이는 악법들이 많이 시행되어 철폐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사학법인 특히 기독교 법인의 고유한 권리를 위해 시키는 각종 사학 악법을 철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학의 개방형 이사제도의 철폐다. 개방형 이사제도 폐지를 포함한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총연합회와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 등과 공동으로 연대하여 금식하면서까지 대대적인 저지 운동을 펼쳤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기독교 조병근 목사를 치면 위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의 기사가 뜬다.
재단법인/ 재단법인 그리스도의 교회 이사직도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는 하등의 이득이나 도움 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교회 특성상 개교회의 재산관리를 재단법인 안에 묶지 않으면 얼마든지 손실될 우려가 크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개인 명의로 등기된 교회들이 타교파로 넘어가기도 하고, 개인의 재산으로 둔갑하여 매각되기도 하였다. 이사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교회 재산관리와 안정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역량을 다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재임 시에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제주도 시흥 그리스도의 교회, 목동 그리스도의 교회, 주안 그리스도의 교회 등의 재산을 재단법인에 명의 신탁했다.
은퇴목회자의 당부
필자는 감리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다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씀 중심과 신약교회 회복운동에 감동받고 회심한 후로는, 지금껏 5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성경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의 근본과 근간을 지켜왔다. 온갖 핍박과 유혹 앞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리스도의 교회 가르침과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았다. 필자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한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행 2:37-47).”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다. 본 절 외에 성경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말씀은 침례는 구원과 직결되었음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구원관이다. 그런데 이 근래 구원론에 따른 그리스도의 교회 존재와 근간을 뒤흔드는 온당치 못한 흐름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것은 신학의 학문이다.’라는 미화된 언어로 포장하여 교계 앞에 내놓는 그리스도의 교회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그리스도의 교회 앞에 숱한 풍파와 굴곡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무분별하게 비판적인 언어로 떠드는 황당한 모습은 경험하지 못했다. 목회자로서 평생을 교회와 강단을 지켜 오면서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지켜왔기에 작금의 흐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루살렘이 참담하게 멸망되는 비극을 통탄한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눈물로써 회개를 촉구하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하는 중에 외쳤던 비탄의 음성이 겹쳐지는 것은 어인 일인가?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애 5:18).” 우리 앞에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신과 가치를 세우려고 평생을 헌신, 희생하였고, 그분들이 뿌린 씨앗에 거름을 주고 물을 뿌려 어렵게 싹을 틔웠는데, 땀 한 방울, 눈물의 기도 한 줌 뿌리지 않고 “학문이다.”라는 가면 속에 스스럼없이 “비판”의 용어를 남발해도 되는지 묻는다. 솔로몬은 아가서에서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아 2:15).”고 애타게 호소하였다. 눈물과 기도로 대학을 설립한 설립자, 존폐 위기에서 대학을 살려낸 선구자들, 그리스도의 교회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선배들에 의해 오늘의 대학이 굳건히 섰는데 이제 뒤늦게 나타나서 대학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려는 떠돌이들의 입놀림에 절규한다. 앞으로는 변함 없이 그리스도의 교회 정신과 가치를 지키기를 간곡하게 바라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조병근 목사/ 시흥(제주) 그리스도의 교회, 목동(서울) 그리스도의 교회, 인천 주안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한후 은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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