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행복한 원로목사 | 참빛-최제봉 | 2023-1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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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년의 현장목회를 마치고 지금은 그토록 열정을 쏟았던 일산을 떠나 멀리 부산에서 요즘말로 부캐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일산교회 원로목사이다. 분기별로 한 번씩 본교회에 가서 주일설교를 하며 강단에서 정든 성도들을 만난다. 스스로에게 ‘나는 정말 행복한 원로목사’라고 자주 입력하고 세뇌를 시키며 살아가는 참으로 우스운 은퇴목사이다. 목회 여정 1973년 합천에서 목회를 처음 시작했다. 내 나이 23살, 신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등록금을 번다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원종호 목사님이 나를 부르더니 합천의 교회가 환원했는데 목회자가 없다고 가라고 했다. 그저 착한 순종파였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목회는 어차피 내가 갈 길’이라며 경상남도 서쪽 오지 합천으로 갔다. 나는 첫 목회를 어린 청소년들과 몇 안 되는 성도들과 신나게 보냈다. 6개월이 지날 즈음 군대 입영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내 처녀목회는 짧게 마무리되었다. 군 생활 후, 신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경기도 송탄에 파송되어 두 번째 교회 담임목사가 되었고, 3년 반 만인 1983년 4월에 지금의 일산교회 전신인 노량진중앙교회에 청빙을 받고 36년(교육전도자 2년 포함하면 38년) 목회를 하고 2019년 1월 말 주일에 ‘성역 40년 감사 및 원로목사 추대 예배’로 현장목회를 마무리했다. 원로목사의 소감 나는 인생을 30, 40, 30으로 이해한다. 즉 30년은 자기의 인생살이 준비 기간이고 그 준비를 바탕으로 40년간 일(사역)을 하고 마지막 인생 30년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 30년, 중년 40년, 노년 30년이다. 돌아보면 내 인생이 딱 그러했다. 내 나이 30살이 되던 해 2월에 신학교를 졸업했고 졸업 직전에 결혼했다. 그리고 만 40년에 두 달이 덜 채워진 채로 현장목회를 내려놓았다. 위대한 출애굽의 영웅 모세도 40년간 일했고, 30세에 왕위에 오른 다윗왕도 70세까지 40년간 일을 했는데 미천한 내가 그분들보다 조금 모자라게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혹 내가 그분들만큼 딱 40년을 채웠다면 우쭐할지도 모르는데 조금 모자람이 알맞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딱 알맞게 해주셨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 정리를 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원로목사 5년 차인 현재의 나는 그동안 정말 감사 또 감사하면서 살았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이 40년이나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 목사로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돌아보면 현장목회에서도 나는 참으로 감사하며 사역을 하였었고 지금도 그 감사가 계속된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으니”,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이다. 이런 감사가 또 있을까? 그렇다. 현장에서 그랬듯이 은퇴하고 원로목사가 된 지금도 나는 정말 복음성가 가사처럼 “감사하면서 살기로 했네 감사하면서 살기로 했네”이다. 이 감사가 나 자신의 인생을 윤택하게 한다. 생각할수록 감사를 선택한 나 자신에게 너무나 잘했다고 칭찬한다. 사역하면서 속상했던 기억들, 때론 모두 던지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목회 여정들, 목회자에게 불편을 가져다주었던 제도와 사연들, 혹이라도 이런 것들에 묶여 있다면 현장을 내려온 후에도 원망과 불평, 한숨과 속상함으로 살아가게 될 텐데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은퇴 시점에는 특별히 목회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관리하고 목회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면 자신도 행복하고 가족도 행복하며 그를 바라보는 주위와 특히 교회가 아름다워지게 된다. 이게 인생의 순리이며 하늘의 순리이다. 이웃에 대한 바른 정리도 필요하다. 목회하면서 힘들지 않았던 목회자가 있을까? 아무리 평탄하고 잘한 목회사역이었을지라도 목회자를 서운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여러 여건이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을 아름답게 잘 정리해야 한다. 생각하면 내가 경험한 모든 환경과 주위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었다. 그들은 내가 섬기고 기도하고 보살펴 드려야 했던 목양의 대상들이다. 그렇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었다. 만약에 그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내 사역이 힘을 얻었고 내 인생이 존재하였다는 말이다. 이런 확고한 대상정리가 있어야 한다. 더 큰 감사는 내가 하나님께 붙들려서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나는 소명도 없이 주위에서 가야 한다고 해서 신학교가 뭔지도 모르고 갔다. 1학년 강의 중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로 소명을 받고 생각지도 않았던 길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소명을 주셔서 그 소명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평생 살아왔다. 그리고 긍휼함으로 돌보아주셔서 마무리하게 하셨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었던, 나의 등 뒤에서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이 그야말로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사용하신 후 이렇게 목회를 마무리하게 하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원로목사가 되는 과정과 준비 행복한 원로목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현장목회가 평안하고 순탄해야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고 목회현장이 꼭 목사의 희망과 기도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이 목회자의 바람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방법이 있다. 자신의 목회를 둘러싼 여건이 기대처럼 만족하지 못할지라도 목회자는 그에 따라 아름답게 목회 마무리를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목회자가 그 환경에 잘 맞추면 된다. 즉 환경에 따라 자신의 눈높이를 조정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내 목회현장에서는 주인공인 내가 나의 눈높이를 맞추고 잘 정리하고 내려오는 것이 목회 마무리의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를테면 목회 마지막의 사역 결산이 아름다워야 한다. 우선은 언제 목회를 마무리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목회 마무리의 첫째 단계이다. 대개의 교단은 담임목사의 은퇴를 70세로 하고 있지만 일부 교회는 65세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우리 교회의 규약에는 담임목사 사역은 70세까지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 앞당겨 은퇴하기로 했다. 목회자 당사자가 분명하게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설왕설래하기 쉬워진다. 당시 내 목회상황으로는 가장 좋은 시기가 40년으로 목회 마무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교회창립기념 주일인 2019년 1월 말이었다. 주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후임자 선정이다. 전임자가 목회 세습이나 혹 지나치게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하면 파열음이 일기 마련이다. 교단이나 교회의 내규가 있으면 그것을 잘 따르는 게 우선이다. 괜히 억지를 부리다가 인심도 잃고 관계도 서먹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소탐대실하지 않게 길게 보고 덕을 세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은퇴하는 목사에게 교회가 일정한 대우를 하기 마련이다. 이때가 참 중요하다. 자칫하면 평생에 원망의 소지를 남길 수도 있고 또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고 누가 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염려가 있다. 특별히 교단적으로 연금제도가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음 칸이 있듯이 은퇴 이후에도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심을 믿는 게 필요하다. 목회자는 비록 부족하지만 평생을 주의 일을 했기에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또 우리를 살피고 도우신다. 눈높이만 낮추면 알맞은 많은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걸 잘 찾아서 그에 맞춰서 사는 지혜가 있으면 은퇴는 또 다른 설렘이 있는 시작이요 새로운 은혜의 시작임이 분명하다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목사가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은퇴하고 나서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길 희망하였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목사와 성도들이 뼈와 살을 깎는 수고를 하였는데 내가 은퇴하고 난 뒤에 교회가 말씀대로 잘 성장하여 건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세워짐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전임목사와 후임 목사의 아름다운 목회 인계가 필수적이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아야 할 테지만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성도들의 시선에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참 아름답다는 긍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 아름다운 사역의 바통 터치, 마치 구약의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신약의 바울과 디모데처럼 아름다운 인수인계는 자신들도 아름답지만 이를 지켜보는 공동체 일원들에게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나는 건강한 교회, 사역을 아름답게 연결하는 지혜로운 은퇴자이길 원했다. 목사가 자신이 섬겼던 교회에 감사함과 긍지를 갖고 떠나는 것은 정말 자신의 남은 인생에서도 행복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혹시라도 은퇴 후에 자신이 섬기며 사역한 교회 예배에 가지도 못하고 비판만 하게 된다면 이보다 슬픈 현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역한 공동체, 내가 섬기고 사랑한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원로목사로 잘 섬겨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남은 자신의 일생을 위하여서도 아름다운 목회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목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시점에서 목사가 가져야 하는 지혜이다. 원로목사로 살아가기 30, 40, 30의 인생을 살면서 나는 딱 결정했다. 이미 30, 40은 살았으니까 앞으로의 30 인생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로 했다. 어찌 목사임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마는 더는 목사로 살지 않기로 했다. 즉 현장교회의 지휘자나 관여자가 아니라 기도하고 협력하는 자로서 살기로 했다. 현장교회의 일은 철저히 현장에 있는 담임목사의 일로 맡기고 단지 기도하는 자, 도움을 주는 자로 자리매김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새로운 사회인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새 출발을 하였다. 사역을 내려놓은 지 3개월 만에 멀리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동생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60대 마지막 시기에는 아직도 에너지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목회와 전혀 다른 부캐를 한 지 5년째다. 지금까지 너무나 신나게 일하고 있다. 우선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던 그 무거운 사역을 마무리하고 내려놓으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이 평안함, 이 여유로움, 주일에 아내랑 같이 하나님 앞에 나가 앉아서 예배하는 즐거움과 감사, 은퇴 목사, 원로목사, 정말 좋은 신분이다. 목회현장에서는,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늘 두렵고 떨렸다. 금, 토요일이면 주일 말씀 준비로 골방에서(?) 설교 준비를 하다가 잘되지 않으면 목이 막히고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던 그 시절, 혹 토요일 저녁까지도 깔끔하게 마무리가 안 되면 잠도 못 자고 끙끙거리던 그 모자람에서 훨훨 벗어나서 ‘나는야 신나는 은퇴 목사, 원로목사’라고 감사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리인지. 나는 지금 신나는 원로목사이다. 분기별로 본 교회에 가서 주일 낮 예배설교를 한다. 현역시절에도 그랬지만 나는 본 교회 목양실과 강단이 너무나 좋다. 지금도 그 목양실에 들어가면 ‘여기가 천국이야’ 그런 느낌이다. 강대상에 올라가서 성도들을 대하고 바라보면 정말로 우리 교회 성도들이 고맙다. 나는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기를 기도하였다. 기도한 대로 힘써 목회현장을 지켜 가시는 담임목사님과 성도들! 사실 내 눈에는 그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누구나 은퇴하여 은퇴 목사가 되면 다 그렇게 되나 보다. 개인적으로는 운동을 열심히 한다. 15년 전 허리디스크 파열을 겪었던 후유증으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헬스를 한다. 덕분에 현역 때보다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건강한 체력관리가 삶의 질을 엄청나게 높여줄 요인임을 믿는다. 교단 원로목회자회 총무로 섬기는 일도 나의 즐거움이다. 평생 주의 일을 하고 은퇴하고 쓸쓸히 잊혀져 가는 어른들에게 차 한잔, 갈비탕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여 열심히 섬긴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서 나도 잊혀져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 원로목사의 운명이다. 이를 잘 받아들이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전에는 함께 상의하고 문의하던 여러 일도 차츰차츰 적어져 가고 전화통화도 줄고 교제권도 차츰차츰 축소되어 간다. 나는 잊혀져 가는 중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로목사의 소망 은퇴한 목사로서의 내 일상의 기도는 무엇보다 소속된 일산교회를 위한 기도와 내가 출석하는 부산중앙교회를 위한 기도가 우선된다. 담임하는 두 분의 목사님들과 교회의 건강함, 그리고 전국의 교단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는다. 동시에 가까이 지내는 동료 목사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한다. 지방에 내려와서 보니까 지방교회들의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현장의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였지만 별로 그런 기회나 수요가 없어 보인다. 더러 선교의 현장에 가서 강의하기도 한다. 모든 분에게 기도의 후원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되려는 희망이다. 나는 우리 교계가 잘 연합하고 성장하기를 새벽마다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이 원로목사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요 절실한 소망이다. 그렇다. 바로 이런 나 ‘나는야 행복한 원로목사’이다. 아멘! “이스라엘이여(원로목사야)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너같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신 34:29)
최제봉 목사 합천(경남), 송탄(경기), 일산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한 후 은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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