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어린이 교육을 위해 새판을 짜라! | 정춘석 | 2023-06-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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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어린이 교육을 위해 새판을 짜라!
200년 이상 지내온 역사를 갖고 교회는 오늘도 자랑스러운 주일학교를 하고 있다. 지금은 별 볼일 없이 보여도 한 때는 최고였고, 교사와 사역자들의 추억이 있다. 사실 교회에 큰 역사를 이루는데 주춧돌이 되었다. 현재는 주일학교가 교회학교로 바뀌는데도 한참이나 망설이고 있다. ‘그게 그거지’라고 포기한 채 주일학교라는 용어가 당연하고 최고로 여기고 있다. ‘아픈 아이는 천성적이다’라며 큰 어려움 없이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1. 파도에 휩쓸린 교회 어린이 어린이들은 누구보다도 눈치로 안다. 자기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정성이 있는지 건성인지 말이다. 교회 어린이에게 우리는 아직도 지하실 방을 내어주고 짜두리 시간을 통하여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교회학교는 헌금하는 그룹이 아니고 헌금을 사용하는 그룹으로 대한다. 만약 집에서 자식에게 너는 돈만 쓰는 자녀라고 인정한다면 자녀는 곧바로 집을 나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어린이가 보배이며, 교회 미래의 기둥이라고 하면서 그야말로 세상에 주는 것보다 더 상처를 주고 있다. 세상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파도를 보면서 바닷가에 홀로 세워두고 안전하기만 바란다면 우리의 지나친 욕심일까? 몰려다니는 어린이에게 우리는 따뜻한 사랑을 주어야 함에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물질인 양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주고 스스로를 위로받으려는 요즘 시대의 바쁜 부모의 모습이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따뜻함을 원하지만, 일등만을 기억해 주는 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어린이는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회도 일등교회, 이등 교회처럼 구분해두고, 우리 교회에 나오면 이런저런 것을 주고, 이런저런 혜택이 있다고 유혹해 두고, 교육이 아닌 사육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아니한가? 우리는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숨어버릴 필요는 없다. 그야말로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로 키우면 된다. 오히려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2. 되돌아보는 시스템, 교회에 신형 엔진을 200여 년 전 시작된 주일학교는 한국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한국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면서 자라왔다. 여름성경학교만 있고, 겨울성경학교가 없는 이유는 외국에 방학성경학교를 따온 것인데, 그들에게는 여름방학만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 학교와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무실도 학생회관도 없이 우리는 주일학교를 해 왔다. 기록이라야 겨우 일지와 출석부 정도이다. 그것도 몇 년이 지나면 없어지는 그런 기록들 말이다. 30년이 지난 후 어린 시절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행정이 오늘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에 더 많은 물질이 들어가도 더 많은 참여자를 참여시키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어린이 수가 줄어들고 교사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아직도 우리는 주일학교가 있다 하면서 안심하고 적으면 적은 대로 하면 된다고 열심(?)을 다해 섬기고 있다. 그래서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철저하게 망해야 정신을 차릴 터이니 망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교회 어린이들이 전멸해야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냉소주의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어느 경우든 현재의 지리멸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낡은 세력들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자리를 잡고 현실적 만족에 충성을 맹세한 세력들이 경건의 탈을 쓰고 교회 기반을 확보하는 데 이용당할 것이다. 그런 지리멸렬한 생각으로는 교회 어린이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견제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문제 적발자로 있지 말고 문제 해결자로 나서야 한다. 적어도 제대로 된 어린이 교회가 되려면 새롭게 컴퓨터의 하드를 업그레이드시키듯이 차의 엔진을 신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보이는 외양 사양을 바꾼다고 새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개혁과 변혁을 거쳐야 한다.
첫째, 교회가 처해 있는 구조적 위기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일반 학교는 교육환경이 최첨단이다. 곧 맞춤형 교육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아직도 칠판 하나 변변치 못한 상태이다. 온갖 기자재는 교회도 고급으로 준비해 두었지만, 어린이를 위하여 사용하기는 아직도 버겁다. 그들이 사용하면 고장 나고 다음에 어른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학교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교회로 바꾸라. 교회는 적으면 적은 대로이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시고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찬양과 예배만 있으면 된다. 왜 교회에서 사회에서 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해야만 하는가? 교회임을 어린이에게 반드시 알리고 교회로 섬겨나가도록 해야 한다. 일 년 동안 만났다가 다음 해에는 만나지 못하는 교사가 아니라 어쩌면 평생 돌보는 어린이 교회 사역자가 있어야 한다. 어린이 교회의 프로그램도 원칙에 따라 준비하라. 필요한 것을 모으고 그중에서 복음적으로 타당한 것을 추리고 또다시 우리 교회에서 가능한 것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교회 어린이에 대한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어린이 예배를 흔히 말하는 대예배실에서 드리도록 하라. 시간대도 가장 좋은 시간을 할애하라. 어른들은 많은 것을 경험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그렇다면 바꾸라. 해외 선교도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주변의 어린이에게 먼저 선교하라. 그들이 일어서지 아니하면 벌여놓은 선교는 곧 문을 닫고 말 것이다. 어린이 선교사를 훈련시켜라. 복음의 일군을 믿음으로 양육하라. 좋다는 프로그램으로 입맛을 버리게 말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라.
셋째, 대안이 신뢰를 받으려면, 전면적인 쇄신이 필수적이다. 전면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먼저 담임 목회자의 목회 방향이 중요하다. 어린이도 교인이고, 그들도 전도대상임을 목회의 목표 가운데 세워두어야 한다. 내가 관심이 없으니까 교육담당 사역자에게 맡기면 알아서 잘하겠지가 아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어린이 집회에 참석해 설교는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축복기도는 해 주어야 한다. 목회자의 생각이 바뀌면 시스템은 그곳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문제는 교사 문제이다. 좋은 교사가 있어야 어린이 교회가 성장한다. 교사들은 대체로 특별한 훈련과정을 밟지 않고 임명되고 있다. 그들은 배우지 아니해서 가르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얼마 되지 않아 교사의 일을 포기하게 된다. 교사선발에 온 힘을 다하라. 목회자 자신이 먼저 가르치기 시작하면 좋다. 전문가를 양성하라. 어린이 교회는 잠깐 맡았다가 지나가는 곳이 아니다. 평생 사역할 곳임을 아는 자들로 양육시켜야 한다. 누가 가르치는가에 따라 그들의 앞날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많은 수의 교사보다 능력 있는 교사가 중요하다. 준비된 자가 큰일을 하게 된다. 문제는 교회 전체가 환골탈태의 심정을 가지고 어린이 앞에 서야 할 것이다.
3. 새 판을 짜라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씀에서 보듯 시대가 다르게 지나가고 있다. 교회 어린이의 찬송은 아직도 19세기의 것을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 출처도 불분명한 성화를 가지고 수업을 하지 아니한가?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추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학교 교육을 구태여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좀 더 좋은 환경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은 인터넷에 익숙하고 MP3에 숙달되었고, 게임에는 능사가 되었다. 교회는 현 문명을 잘 활용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한 때이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마다 성령을 통하여 자주 새판을 짜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곧 1장에서는 맛디아를, 7장에서는 집사를, 10장에서는 이방인을, 11장과 16장에서는 이방 세계로 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들의 교회도 새 판을 짜야 한다. 목표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서 새 틀로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의 장년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성장이 멈추거나 퇴보하고 있다. 서서히 후발로 자리 잡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이것을 태생적 한계로 스스로 인정하는, 정말 좋지 않은 습관이 생기고 있다. 이제라도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어린이 교회를 위하여 새 판을 내가 짠다.’라는 생각을 하고 철저한 연구와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낡은 기준을 영원히 잠들게 하여야 한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또다시 교회 성장과 성숙은 꿈같은 이야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현실이 메뚜기 떼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소리치는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어린이가 배가 아프다면 우리는 빨간약이 최고라고 믿었던 시대에 살지 않는다. 병원에 먼저 데리고 가야 하듯 옛날에 좋았던 것만 회상하지 말고 과감하게 새것을 택할 줄 알아야 한다. 어린이 교회가 짐이었다면 이제는 힘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들이 자라고 성장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듯 아름다울 것이다. 어린이들은 잠깐이면 다 크고 만다. 그들이 바로 일군으로 큰다. 조금만 기다리면 귀하고 좋은 열매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이다. 보이는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새 판을 짜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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