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word)과 칼(sword) | 기준서 | 2024-09-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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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word)과 칼(sword)
원종호 형제가 세상을 떠난 지가 일 년이 훌쩍 지났다. 그가 떠난 후에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하고 고심하기보다는 남은 자로서 산자의 인생을 희희낙락하며 살아왔음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을 성찰한다. 우리 둘은 동갑내기로 스스럼없는 친구로서 어려운 시대를 함께 고뇌하며 살아왔다. 어쭙잖은 자랑거리도, 가슴에 깊이 담긴 아픔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막역한 친구이며, 형제이며, 동역자이다. 우리는 이른 나이에 담임 목회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교계 문제에 앞장서면서 방자(放恣)한 혈기를 분출하여 아웃사이더가 되기도 했다. 대학의 격동기에는 주어진 시대의 책무를 감당하기 위해 굳건하게 어깨동무하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함께 짊어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위해 몸을 던져 희생하면서 그와의 아름다운 우정을 굳게 다져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에, 60여 년 동안 목회하던 부산성지교회에서 은퇴예배가 있었다. 은퇴하는 친구에게 고별 메시지를 전하고, 다음날은 그의 집에서 반나절을 함께 지내면서 온갖 옛 이야기를 풀어댔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꼬깃꼬깃 접힌 봉투를 내놓으면서 원형제가 손에 꼭 쥐어주어서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고 한다. 봉투 안에는 오만 원 지폐 두 장과 만원 지폐 두 장이 들어 있다(12만원). 나는 아내의 만류를 무릅쓰고 봉투를 돌려보내면서 “마음만 받겠으니 당신 생활비에나 보태라”고 쓴 소리를 했었다. 그 후 원형제한테서 전화가 오길 “친구의 우정을 그토록 차갑게 뿌리치느냐, 나는 오만 원 지폐 넉 장인 줄 알았는데(20만원)…….”하면서 무척 서운한 마음을 전해왔다. 원형제는 시각장애인으로 가족 없이 홀로 살고 있었다. 그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가슴이 짠하고 먹먹하여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이제 생각하니, 친구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노후 생활대책을 제안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돈을 아끼지 말고 24시간 생활도우미를 둬라, 은퇴하였으니 예배시간 외에는 교회에 가지 말라, 이제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든가 아니면 제주도로 이사하는 것이 어떻겠냐?”등등. 그의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알았어” 한마디뿐이었다. 나의 말은 나의 관점에서 생각 없이 퍼부은 막말이지 따뜻한 친구의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생활경제를 참견하고, 평생을 부산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다른 곳에 가서 살라고 한 것은 막말 중에 막말이다. 거둬드릴 수 없는 막말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 말이 칼이 되어 친구의 가슴에 비수(匕首)로 꽂혔다. 뒤늦게 후회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싶지만, 친구는 떠나가고 없다. 친구를 잃은 상실의 아픔보다 마지막 거칠었던 막말이 더 쓰리고 아프다. 야고보서는 절제되지 않은 말의 실수를 경고하였으며, 잠언서는 구부러진 말은 입에서 버리며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말의 신중함을 교훈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더욱이 그 말이 마지막 말이 될지를 생각하지 않고 막말을 한다. 영어에 말과 칼은 알파벳 하나의 차이다, word -> sword. 절제되지 않은 말(word)은 칼(sword)이 되어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 말은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아프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기준서 / 참빛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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