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직분들에 대한 안수 문제 | 원종호 | 2021-07-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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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직분들에 대한 안수 문제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딤전4장14절)고 바울은 말하였다. 이 말씀을 일반적으로 디모데가 직분을 받을 때에 직분 받는 목적으로 안수를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의 문맥에는 그러한 의미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렇게 안수를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직분을 받기 위한 안수라기보다는 받은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당부를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혹 직분을 위한 안수라고 하더라도 무슨 직분에 대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역시 일반적으로 목사직에 대한 안수라고 하여 온다. 그러나 역시 그 성경 본문에는 그 어떤 직분에 대한 안수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전도자 직에 대한 안수라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어느 한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교회의 장로 직분을 세우는 근거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디모데가 한 교회만을 목회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단 말씀을 전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목사의 직을 위한 안수라면 긍정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문제가 되는 것은 "장로의 회에서" 그 안수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목사의 직분을 세우는 안수는 장로들에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부정 할 수 없게 된다. 어떻든 이 성경을 장로의 직분을 세우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구약시대의 안수 받았던 사실들을 근거로 오늘날의 안수 받는 근거로 삼는 것은 역시 안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 시대 이전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것들은 오늘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물론 우리와 상관있다. 구원론과 관련하여 타락과 함께 연관되는 모든 것도 우리와 상관있고 그러나 제도적인 것들은 교회 시대와는 상관없으며 다만 율법은 교회시대에 와서도 지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장17절)고 하셨을 뿐 아니라 성경도"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 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장31절)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13장2절-3절에도 안수를 한 일이 나타나는데 거기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디옥 교회가 그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안수를 하였던 것이다(행13장2절-3절). 그런데 그 바울과 바나바를 성경은 "두 사도"(행14장3절-4절,12절)라고 하니까 거기에서의 안수는 선교사로서 파송을 받는 안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사도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바나바를 사도라고 하였는가의 문제는 있지만 선교사를 파송 하면서의 안수이었기 때문에 교회안의 어떤 직분을 세우는 일의 안수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 6장3절-6절에서도 안수를 한일이 있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집사의 직분을 세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도들은 "너희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6장3절)고 하였고 그 말을 들은 온 무리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웠고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를 하였던 것이다(행6장5절-6절). 먼저 어떠한 일을 위하여 일곱 일꾼을 선택한 것은 틀림없는데 이 말씀 자체에는 어떠한 직분이라는 것이 명시 되지 않았다. 다만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행21장8절)이라는 말씀으로 볼 때에 일곱 사람이 안수를 받은 것은 집사들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를 "전도자"라고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집사와는 구별되는 집사라고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다. 왜냐하면 전도자라는 직분이 그에게 적용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집사라고 하여 전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성경적 원칙은 없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든지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빌립에게 적용된 "전도자"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할 수도 있는 전도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도를 전문으로 하는 직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문이 제기 되기도 하는 것이다. 만약 집사로 있다가 전도자의 직분으로 옮겨갔다면 그를 집사라고는 하지 말고 오직 전도자라고만 하여야 할 것인데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이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교회에서 세우는 집사 직 하고는 같지 않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스데반도 일곱 집사로(행6장5절) 안수를 받은 사람이니까 빌립과 같이 분명히 집사님인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고"(행6장8절) 이에 "이른바 자유민들"곧 불신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세(행6장9절)"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행6장10절) 사람을 매수하여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게 하는등(행6장11절이하)결국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게 된다(행7장51절이하). 그렇기 때문에 스데반도 오늘날 교회에서 세우는 집사하고는 결코 같은 직분일수가 없으므로 이 일곱 집사가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서 집사 직을 세우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집사는 세워진 그 교회의 집사일 뿐이다. 그런데 빌립이나 스데반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 가지를 더 짚어야하는 것은 이들 일곱 사람들을 물론 사도들의 명을 따랐을 뿐이긴 하였지만 성도들이 그들을 택하였던 것이다(행6장3절과5절말절).그렇다면 오늘날도 성도들이 집사들을 선출을 하던지 좌우간 성도들이 선택을 하여야 하겠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집사의 자격이 나온다. 이제 우리는 거기로 가보아야 할 것이다. 디모데 전서 3장8절에서 13절까지 나오는데 거기에는 안수를 하여야 한다는 말씀은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자들도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3장11절)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여자 집사의 자격을 말하는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바로 그 앞절까지 즉 디모데 전서 3장8절로부터10절까지 집사로 세워질 남자의 자기와의 관계를 근거로 하는 자격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 성구에서도 여자들의 자기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니까 여자 집사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느냐는 논리가 대두 될 수가 있다. 그런데 자기 밖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 하는 디모데 전서 3장12절에서 부터는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남자 집사의 자격만 말하고 있다(딤전3장12절-13절).다시 말해서 여자도 자기 밖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당연히 자격이 나와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이와 같이 여자들도"라고 한 것은 여자의 집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장로나 집사의 아내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더 확실한 이유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전14:34-35절)고 하였기 때문이며 역시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딤전2장11절-12절)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여자집사를 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고찰하여 본 바와 같이 장로 직이나 집사 직에 대한 안수는 성경적으로 없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고 여자집사직도 없어야 하는 것이 보다 더 성경적이 아니겠는가 그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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