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다움교회 | 김용철 | 2020-12-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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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전성기라고 치켜세워줬던 인다움 이전의 사역들, 저는 행복하지 않았다. 인기 있는 전도자로 교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섬기는 교회마다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면서 행복을 갈망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행을 넘어 불안에 이르게 됐다. 사역자인 저조차도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사가 크고, 직분을 가진 리더가 크면 하나님의 시선을 가릴 수 있다는 것, 그런 목회자를 방패삼아 숨어 안주하려는 성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중간에서 박쥐처럼 이리저리 붙어 지내는 제 모습은 비참할 정도로 한심하고 초라했다. 이후 저는 하나님께 인간을 지으신 이유와 진정한 행복을 묻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은혜가 된 말씀이 에베소서 2장 10절이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면, 그리고 그 선이 하나님을 말하고(눅18:19),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가 된다면(요일4:16), 결국 우리는 교회 가운데 사랑을 행함으로 행복을 얻고, 서로의 모습 가운데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확장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인다움 교회는 이름 그대로 ‘사람다움’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기본자세를 제안하는 것이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던 그때가 인다움의 출발점이 된다. 하나님은 온전하기에 그에게 받은 모습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스도인의 길이며, 전도자의 삶이라는 확신으로 인다움을 시작했다. 교회 개척을 준비하면서 성경을 보는 저의 관점도 사랑으로 채워졌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사랑으로부터 나온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로 사랑이 되며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다. 연약함으로 죄에 노출된 백성들을 위해 율법을 주시고, 지도자와 예언자를 세우신 이유도 사랑이며,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신 이유도 사랑이었다. 예수가 이 땅에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도 사랑이었고, 그가 완성한 율법의 핵심도 사랑이었다. 죽기까지 보이셨던 예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한 그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사랑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들로부터 시작된 초대교회도 사랑이 가득했다.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오히려 수많은 제도와 규칙들을 교회 안에 가득 채워, 멋스러운 틀 안에 교인들을 가두고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다 다르게 지으셨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제한하고 가두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고 가두는 것과 같다. 오히려 각자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을 건강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는 각기 다른 지체들의 부분과 마디를 어떻게든 하나로 연결해서 한 몸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노력해야 한다. 인다움은 다양한 모습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교회가 규모나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설프고 부족할 수 있지만, 가정이라는 단단한 모델을 통해 각자의 가진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지체인 우리’, ‘만찬에서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우리’라는 측면에서도 가정모델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물론 가정 안에서도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고 상처받고 배신당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기에 사랑이 있기에 눈물로 참고 손을 내밀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정이라는 모델은 손님과의 구분이 불가피하다. 교회가 안식처가 되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우선 스스로가 결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사랑할 수 있고, 넘어져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잡을 수도 있게 된다. 건강한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다. 사람의 수가 적더라도 가족의 수가 많아야 건강한 교회이다. 가족 구성원이 많아야 손님은 풍성한 대접과 사랑을 받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손님이 많으면 서로 불편한 마음만 주고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다움은 가족에 집중한다. 손님들이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게, 그 손님을 잘 대접할 수 있게 먼저 가정을 돌봐야 한다. 인다움 가족 구성원이 되는 방법은 12과로 구성된 성경공부와 침례를 통해서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가 가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공부를 통해 스스로 가족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타의에 의해 교회를 결정한 사람과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로 교회를 결정한 사람 중 어떤 사람이 가족의 역할을 감당하려 할까요? 인다움은 잘하는 사람보다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 급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여유 있고 단순하다. 할 수 있는 일은 감당하고, 하지 못 하는 일들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으며, 예배에 승리할 수 있다. 그런 예배만이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의 한 주를 감당케 하고 승리케 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도를 전하는 의미에서의 전도가 아닐까요? 인다움은 가족과 함께 세상을 바라본다. 인다움의 한 해 수입의 십분의 일을 선교목적으로 사용한다. 모르는 곳이 아닌 경험이 있고,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을 연결해서 보고서를 작성,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매년 여름에는 캠프 사역도 감당하고 있다. 교파 구분 없이 자체 캠프가 어려운 교회와 일손이 필요한 교회의 신청을 받아 그에 맞춘 캠프를 직접 기획하고 제작해서 사역하고 있다. 인다움에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도 있다. 인다움 가족으로 구성된 단톡방에서는 가끔 재미있는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커피나 치킨 쿠폰을 올려서 선착순으로 선물하고, 고이 모셔둔 물건들을 나누거나 구하기도 한다. 가끔 예배 후에 재능기부도 진행된다. ‘네일’을 배운 청년에게 손톱 관리를 받기도 하고, 가정용 컴퓨터나 노트북을 점검받기도 한다. 디자인이나 악기를 배우거나 연습하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한다. 교회 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를 사와 나누기도 하고, 한 주간 좋은 일이 있었던 사람은 커피를 대접하고 축하받기도 한다. 기도 제목이 생길 때마다 대화방에 기도를 요청하고, 급한 제목은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한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어린이를 위한 교회학교를 열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자율로 진행되고 있다. 교회가 필요하리라 예측되는 일들을 미리 정해놓고 담당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절실할 때 함께 고민하면서 자발적인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이 인다움 교회의 일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인다움이 잘하고 있고,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참은 멀어 보인다. 어떠한 움직임에 대한 평가를 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작은 일 하나도 빨리 진행되거나 쉽게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교회에서만이라도 천천히 갈 수 있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고, 그래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됐다. 함께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답답하다 여겨졌던 시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저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며 온몸에 힘주어 살았다. 그리고 결국, 그 엄청난 무게를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야 했고 보상 차원에서라도 제 이름이 기억되길 바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인다움이라는 함께 나눌 가족이 생겼고, 제 짐을 덜어줄 동역자와 함께 걷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깨달음은 내려놓고 침묵하는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가 일하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그러고 여전히 힘들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인다움 교회에서 전도자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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