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동그리스도의교회-50년 | 이준 | 2020-1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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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교회 교회사 성산동교회 교회사를 어떻게 서술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중심으로 간단히 서술하려고 한다. 성산동교회는 1965년 8월 15일 설립되었는데, 2015년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교회사를 간단하게나마 남겨야 한다는 여론이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있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풍부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준비 기간도 1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다. 집필은 교회사를 전공한 전인수 교수에게 맡겼다.
성산동교회 교회사는 총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요한 것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에서는 성산동교회가 설립되기 전, 미국과 한국의 환원운동 선구자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성산동교회 역사를 담임 목회자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제3장에서는 50년 동안의 교회 연혁을 중요한 것만을 소개하여 실었다. 제4장에서는 성산동교회에 관해 소개하는 기존에 남아있던 글을 게재하였으며, 제5장에서는 성산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의 추억담을 실었고, 제6장에서는 교회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부분으로 구성했으나 다른 역사 자료가 많지 않아 사진 자료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성산동교회 제1대 담임목사는 공삼렬이다. 그에 대한 자료는「참빛」지나 몇 개의 교계 신문기사를 참고했고, 확인할 사항에 대해서는 캐나다에 거주하던 공삼렬 목사에게 직접 전화로 확인하였다. 제2대 최화희 목사의 경우 남겨진 자료가 많지 않아 서술하기 가장 어려웠다. 역시「참빛」지가 도움이 되었고 한차례 직접 면담을 통해 재직 당시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3대 이준 목사의 경우 현직 담임목사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이 직접 면담과 전인수 교수가 직접 경험한 일화를 통해 구성되었다. 교회사의 경우, 처음 설립 상황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제1대 담임목사에 대한 자료가 가장 많이 서술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기록으로 남겨진 자료가 많지 않아 많은 분량을 서술할 수는 없었다.
제3장 교회 연혁의 경우를 살펴보자. 다행히 성산동교회는 최근 몇 년까지만 해도 「교인수첩」을 제작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는 공삼렬 목사가 처음 시작하였고 이준 목사 때까지 유지되었다. 공삼렬 목사는 목회자의 행정적 능력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교회 수첩을 제작하고 중요한 초기 자료를 보존하도록 했을 것이다. 물론 공삼렬 목사가 재직하던 당시의 「교인수첩」은 1-2개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회의 중요한 연혁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1987년도 「교인수첩」이 좋은 참고가 되었다. 이후 최화희 목사나 이준 목사가 재직했던 당시의 「교인수첩」까지 참고하여 50년 동안의 중요한 연혁은 서술할 수 있었다. 「교인수첩」이 없었다면 50년 동안의 연혁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성산동교회는「교인수첩」을 제작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주보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매주 주보를 인쇄물로 잘 보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제4장에서는 우리 교회에 참고가 될 만한 글을 게재하였는데「크리스천 포스트」, 「참빛」, 『2013학년도 그리스도대학교 대학원 추계신학 포럼』에 실린 글을 수록하였다. 제5장의 경우는 우리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 생활하여 추억을 갖고 계신 분들이나 우리교회를 거쳐한 이들에게 글을 부탁하여 게재하였다. 제6장은 “성산동교회 발자취”라는 이름으로 50년 동안의 사진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사진에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 자료는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할 수가 있었는데 이는 두 단계의 과정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공삼렬 목사가 재직하던 당시 교회 사진을 앨범 2권 분량으로 정리하고 거기에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다. 만약 이 앨범이 없었다면 초기 관련 사진이나 설명을 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이준 목사가 4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전인수 전도자를 통해 교인들의 사진을 수집하고 이를 PPT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 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사진을 보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성산동교회 교회사의 가장 핵심은 이 사진 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른 교회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설명이 추가되었다는 점은 치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사 서술을 위한 제언 교회사를 정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늘 자료의 부족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교회로 이루어져 있어 교단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 어려운데 개교회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개교회의 역량이나 담임 목회자의 역사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당장 주보를 인쇄물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은 귀찮은 일이지만 나중에 역사를 정리할 때 가장 중요한 사료로 사용될 것이다. 근래 디지털 문화의 발달과 사생활 보호로 「교인수첩」도 제작하지 못하고 있는데 중요한 교회연혁은 반드시 정리하여 후세에 전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컴퓨터로 주보나 연혁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담임목사가 바뀌거나 컴퓨터 하드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한 순간에 자료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인쇄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진 자료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회의 경우 50년 동안의 사진 자료는 그나마 정리를 했고 이에 대한 설명도 확보하였다. 그러나 누군가 사진을 정리해 놓지 않거나 사진을 정리했더라도 이에 대한 설명을 해 놓지 않았다면 이는 교회사의 큰 공백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5주년, 10주년 마다 사진 자료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붙여 교인들에게 PPT나 영상으로 보여주고, 이를 다시 인쇄물로 남기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참빛」지의 역할에 대해 감사함을 전한다. 이는 우리 교회 역사를 정리함에 있어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교회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체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참빛」지와 같은 교계의 소식지가 너무 중요하다. 최근 「참빛」지가 이런 역할을 회복하고 더욱 나은 체계로 쇄신되어 기쁘다. 각 교회에서는 개교회의 소식이나 역사를 「참빛」지에 수록하여 한국그리스도의교회사에 대한 자료를 많이 남겼으면 한다. 지금은 사소한 일로 보이나 훗날에는 이런 자료들이 그리스도의교회사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줄 것이다.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신학적으로 “길갈에 세운 열두 돌”과 같다. 출애굽한 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요단강에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길갈에 세우게 하셨다. 그 돌무더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이라는 표시였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멈추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밟고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돌무더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권능,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다(수 4:21-24). 우리도 교회의 예배당을 바라보며 교회사 책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이전 성도들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서서 목회하는 단상은 이전 목회자들의 눈물이 서렸던 곳이고 교인들이 앉는 의자는 이전 교인들의 눈물과 기도가 맺힌 곳이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길갈의 돌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했던 하나님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후속 세대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도 이런 교회사를 남겨 후속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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