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 김관평 | 2020-12-22 | |||
|
|||||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계1:3)
오늘의 본문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읽는 자는 단수이므로 읽는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듣는 자들은 복수로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습니다. 교회의 예배는 계시의 말씀을 받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 인도합니다. 이 계시는 일곱 교회 사자들에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일곱 교회의 사자들은 말씀을 읽고, 성도들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읽는 것이 아니고 듣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키는 이가 복이 있는데, 지키려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듣는 것을 잘못 들으면 헛것이 됩니다. 잘못 들으면 우리가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6절에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우리 귀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읽고가 아니라 삼가 듣는다고 하였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분들이 성경을 알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을 우리는 듣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 설교를 하면 잘못되기 쉽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8절에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예수님에게 당신을 먹인 그 젖, 당신을 낳은 그 분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낳았다고 해서 복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복은 육신적인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9절에는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내 말 한대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복이 무엇입니까? 물질의 건강과 육신의 건강 등이 포함되겠지만, 그보다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으로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 20절에서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 받았다는 것은 육신적으로 받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 여러분이 함께 하면 그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디모데후서 4장 3-6절에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고 했습니다. ‘귀가 가려워서’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 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데, 진리의 말씀은 귀가 가려져서 못 듣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그런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면서 디모데 전도자에게 ‘너는 네 직무인 전도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로 잘 들어야 됩니다. 믿는 성도들이 교회에 왜 모입니까? 교회에서 주의 종들이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니까 그 말씀을 들으러 오는 것입니다. 읽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듣는데 정신을 쏟으면 잘 들어지는데, 읽고 듣고 하면 점차 복잡해집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이 자리에 앉으면 ‘전도자님 앞에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 못 들으면 예배가 헛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려고 열심히 듣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들으면 하나님께서 ‘너희들 내 말 잘 듣는 구나’ 하고 매우 좋아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대하여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들을 지어다,’ ‘이 말씀을 들을 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지키고, 바로 전해야 됩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면 잘못 믿게 되고, 잘못 믿으니 잘못 행하게 되고, 잘못 행하면 남에게 전할 때 잘못 전하게 됩니다. 내가 바르게 말씀을 받았으면 듣는 사람에게 복이 되지만, 내가 말씀을 잘못 받으면 듣는 사람에게 해가 됩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했습니다. 왜 책망했습니까? 예수님께서 23장 3절에서 “너희는 절대로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말만 하고 행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우리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된 것을 자랑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는 믿으면 구원을 받지, 믿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행위로부터 받는 구원이냐, 행동으로 받는 구원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침례를 받아야 된다,’ ‘무슨 말씀 지켜야 된다’ 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 됐다고 합니다. 무엇이 잘못이냐 하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 깨달았기 때문에 잘못 믿는 것입니다. 잘못 믿는 것은 ‘그들이 아브라함 자손이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 믿는 것입니다. 믿고 행해야 구원받는데 잘못 믿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에게 전도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마태복은 23장 13절에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교훈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잘해도 너희도 못 들어가고, 그 가르침을 받는 자도 못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자인 전도자들이 잘못 깨달으면 교인들 전부가 잘못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테복음 23장 15절에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전해서 믿는 사람은 잘못 배워 잘못 깨달았기 때문에, 잘못 믿고 행하게 되었고 잘못 가르쳐 놓았습니다. 거기서 말씀을 잘못 받은 사람들 역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 같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마태복음 7장 26절을 보면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였으며, 야고보서 1장 22절에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 사람들은 모두 속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면 속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7절에는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며 죽은 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서 흠 없게 세상에 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들을 보냈고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것이 얼마나 큰 죄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해 주소서’라고 해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 예수님과 같이 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장 15절에는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를 교회에서 가르쳐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흠 없는 삶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어떻게 사람으로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은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2절에는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흠 없는 자, 책망 받지 않는 사람을 만들려고 성경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8절에는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딸 삼으셔서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흠 잡힐 것이 없이 만들려고 하나님이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걸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마태복음 3장 9절에는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손이 되느냐? 믿기만 하면 되느냐? 이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 오실 때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잘 믿었습니까?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 오실 때,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름을 준비했지만, 또 다른 다섯 처녀는 준비하지 안했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갑절을 남겨 칭찬을 받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내쫓겨서 바깥 어두운 데서 울며 이를 갈았습니다. 이렇게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니깐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장 14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흠이나 점 있으면 안 되니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예수님 나타날 때 만나라고 강조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한 것은 교인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자가 바로 서면 교인들은 자동적으로 바로 섭니다. 그러나 사자가 잘못서면 그 교회의 교인들은 다 잘못됩니다. 일부 교회 사자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잘했다. 네가 못했다. 네가 회개해야 한다.” 이것은 사자에게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얼마나 많아요? 사자들이 잘못 아느냐, 바로 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알면 바로 지킬 것인데, 올바로 알지 못하니깐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즉 빌라델비아 교회는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사자가 지키니까 교회도 지킵니다. 그러니까 칭찬만 받은 것입니다. 다섯 교회 사자들은 온전히 못 지켜 책망 받았습니다.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촛대를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아 옮긴 촛대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자는 일꾼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를 옮긴다고 하는데, 이는 성도들을 다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네 앞에 나오면 잘못되니깐 다 옮기는 겁니다.
사데교회 가운데에는 말씀을 지킨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4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성경에서 말씀하기를 사데교회는 모두가 살았다고 했지만,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서 온전한 행위를 찾지 못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 2절에는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고 하였습니다. 사데 교회 사람은 온전한 행위를 실천에 옮기고 지켜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은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관평전도자께서 2009년 8월 2일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설교하신 내용으로 임학균전도자가 녹취, 편집한 것을 편집자의 동의를 얻어 첨삭(添削)하였음)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