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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동산의 예수마가복음 14:32-42 강명석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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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동산의 예수(막14:32-42)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묻기를 주님이 가신 곳 중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얼른 대답하기를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깊은 바다나, 험한 산이나, 거친 가시밭이나, 우리 주님의 발자취 가신 곳이라면 어느 곳을 불문하고 다 가보고 싶으나 그 중에서 제일 가 보고 싶은 곳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제 마음의 금잔디 동산입니다. 한번만이라도 그곳을 찾아가 주님과 같이 기도해 보고 싶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땀이라도 흘려 가면서 기도해 보고 싶습니다. 더러운 나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추하고 흉한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은 이 동산에서 습관적으로(22:39) 기도하신 것으로 보아,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때가 한두 번이 아닌 듯합니다. 이 밤에도 주님께서는 기도하기 위하여 열한제자를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동산 입구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32) 다만 가장 친분이 있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동산 가운데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세 사람에게 특별히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33)고 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 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성품을 가지셨고, 말로 할 수 없는 비통한 마음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기도 제목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곁에 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외롭고 힘들 때 우정을 요구하신 것을 보면 주님께서는 인간의 성품을 가지신 것이 분명합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는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인성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에 여간한 고통이 아니고는 결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왔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22:44)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핏방울 같은 땀이 흘렀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지만 간절함으로 기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심적 부담은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처럼 간절히 기도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36절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말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이 잔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은 이 잔이 무슨 뜻이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에 그렇게 괴로워 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의 위대한 인격에 흠이 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위대함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주께서 죽음이라는 것을 피하고자 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도를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서 기도하는 중에 죽음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인생의 최후인 죽음이라는 것이 앞에 나타났을 때, 주님께서는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몸부림 쳤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주께서 이때의 고민은 육체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주께서는 비록 시간을 짧았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힘을 다하여 활동했습니다. 이제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시점에 결국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그들의 손에 죽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승리를 얻지 못하고 옳지 못한 것이 승리를 얻게 됨에 따른 항거였습니다.

 

엄밀히 말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믿었던 제자들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갈릴리서 오랫동안 전도했지만 그것도 다 실패로 돌아가고 됩니다. 유대에서도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도를 들은 사람은 있었으나 진정으로 주님을 따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가장 친히 따른 열두제자도 주님의 이상과는 다른 정치적 왕국을 꿈꾸며 따르고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제 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사람들은 제자들입니다. 주님을 삼년 따랐지만 예수님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정치적 왕국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서로 내가 제일 높은 대신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까지 하신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결코 당신 자체를 손상시킨 것이 아니고 주님의 위대한 것을 더욱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기에 잔을 피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기도 제목과 뜻이 있었지만 내 원대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버지께 맡기고 당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포자기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시는 주님의 순종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제자들의 몰인정한 모습을 봅니다. 주께서 세 제자를 가까이 데려다 두시고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다가 와서 보니 제자들은 다 자고 있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하던 베드로마저도 자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알아서 함께 기도할 것을 기대하고 데려 왔는데 세 제자는 그냥 자고 있습니다. 주께서 답답한 마음에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37, 38)하시고 다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기도하다 와서 보니 제자들은 계속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시다가 세 번이나 제자들을 찾아 오셨지만 그들은 피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세 번이나 와서 동정과 의리를 얻으려하였으나 결국 아무 효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향한 동정과 의리는 잠을 이길 만큼 강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또한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감동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리고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습관적으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기도처를 가져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앞에 두고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늘 기도하신 예수님을 본 받아야겠습니다. 피곤하여 잠을 이기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보이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둘째, 우리도 주님과 같은 고통을 당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걱정하고 고통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몸부림 친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전부 내 자신을 위한 고통뿐입니다. 우리도 한 영혼 구원을 위해 열심히 전도해야 하고, 한 영혼 구원을 위해 피땀을 흘리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셋째, 우리도 언제든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도록 훈련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갑니다.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훈련 받아야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 여러 번 생각하여 보고 아버지의 뜻대로 따라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과 같은 기도처를 가지신 것과, 고통하신 것과, 당신의 뜻을 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신 것을 우리도 배워야겠습니다.

 

 

강명석/ 1927년 기독신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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