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여자 | 김희섭 | 2021-0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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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여자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1,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아마도 아벨이 가인처럼 범죄 했다면 “양이 다시는 새끼를 낳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지 않았을 까? 하나님은 지금 가인의 좋은 것을 뺏고 계신다. 가인의 직업이 무엇인가? 농사짓는 자. 그럼 농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물어보나마나 ‘땅’이다! 농부의 “좋은 것”은 ‘땅’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인은 땅을 빼앗기고 있다. 효력을 내지 않는 땅이 도대체 농부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산자는 좋은 것을 빼앗긴다. 그럼 아벨, 아벨은 어떻게 되었을 까? 그는 죽었다. 그는 죽은 자였기 때문에. 아니 죽은 자는 살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왜 산자, 가인은 범죄하고도 어찌됐건 살아남고 아벨은 죽는 것으로 끝이 났는가? 가인은 죽은 자로 살아갔지만, 아벨은 죽은 자로 살아났다. 성경은 아벨을 “의인”이라 칭한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그가 의인이라면 좋은 것을 빼앗기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는 죽음으로 자신의 양떼들을 빼앗겼다. 어찌된 일인가? 이런 생각해본 적 있나? 아벨은 지금 어디 있을 까? 의인 아벨은 지금 누구의 품에 있을 까?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품에 있지 않을 까? 그는 잠깐 자신의 ‘양’을 잃었지만, 그는 결국 영원한 ‘어린양’을 얻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죽었지만 믿음으로 살았던 그의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믿음”을 말해주고 있다. 믿음 따라 살다가 죽은 죽음은 비록 자기 친형의 손에 죽었을 지라도 결코 헛된 죽음이 되지 않는다.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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