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 아니한가? | 김희섭 | 2020-1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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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타락한 인간에게서 생명나무를 빼앗으신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날 때 인간은 ‘죽음’이라는 선물을 들고 나왔다. 설마 이런 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적당한 때 죽어 주는 것이 행복이다. 하지만 이 땅을 살면서 죽음이 선물이 되려면 죽음 이후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죽음 이후가 불확실 할수록 죽음은 저주가 된다! 평생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다. 그 때 사망의 권세 잡은 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내 뜻대로 살아라!” 그래서 우리는 마귀의 뜻대로 살아간다. 남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 죽기 위한 삶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며 욕심의 종, 마귀의 종이 되어 결국 일생을 종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 이후가 보장되어 있음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새 신발이 신발장에 있으면서 헌신발이 다는 것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살기 위한 삶이 아니요 죽기 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빨리 죽어야 빨리 천국 갈 것이 아닌가! 또 죽고자 하는 자가 살게 될 것이며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는 기독교의 역설을 믿기 때문이다. 그대! 죽고 싶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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