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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 원종호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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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

 

성경본문 고후12장1절-10절

 

 

 Ⅰ. 들어가는 말

 

 쇼펜하우엘의 말이다. “내가 누군가?” 나는 누구인지? 그것을 아는 일은 쉽지 않다.

 돈, 지식,등을 얻었으나 자기를 잃었다. 현대인은 두 가지 병이 들었다.

 

A. 자기를 모른다.

 

 즉 자기를 잃었다. 자기 상실이다. 

 

B. 자기 상실을 알지못한다.

 

 자기 상실에 대한 망각의 병이 들었다. 

모든 것을 통달하였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자이고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잃었다면 모든 것을 잃은 자이다. 

그래서 칼빈은 자기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즉, 이 두 가지는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같은 사건으로 그는 간주하고 있다. 

여러분! 자기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바르게 평가하고 있는가? 

체력, 지력, 덕, 인격, 믿음, 인내는 어느 정도인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를 적나라하게 평가한다. 가혹하리만큼 평가한다. 

폭행자요 핍박자요 죄인중의 괴수, 만물의 찌끼,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등 다른 성경에서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일을 많이 했다. 교회를 많이 세우고 능욕도 많이 당했다. 지금의 자기를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Ⅱ.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9절).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로 묘사되어 있는 이것은 혹 간질, 혹 안질로도 생각되고 있다. 전도하는 일, 복음사역이나 모든 일에 치명적인 이 질병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머물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머물게 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말인가? 

 

한 생애를 그 질병 속에 살더라도 그리스도의 능력이 떠나가지 않고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옳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렇기에 그 가시를 떠나가게 하기 위해 세 번이나 간구 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안에 머무른다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그것이 바로 크리스찬의 참 모습이며, 크리스찬의 참된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자연인도 아니고 타락인이다. 

넌 크리스찬들은 그리스도가 그 안에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능력도 그 안에 있을 수가 없고, 또한 그렇기에 그 능력에 의해서 살 수 없다. 

 

기독인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요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므로 그리스도의 능력, 곧 그리스도에 의해 그 가슴이 움직여지는 삶을 사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떠나가지 않고 그 안에 머문다는 것은 가장 정상적이고 올바른 기독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영적인 것이 육적인 것 보다 더 중요함을 보여주며, 세상적인 것보다 하늘나라의 것이 더 중요함을 나타낸다. 육체가 질병에 젖어 살아도 우리의 가슴이 그리스도 없이 살면 안 되고,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제 없이 살아서는 안 될 것을 교시한다.

 

Ⅲ.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겸손이다. 겸손하여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이다. “자고하지 않기 위하여” 라는 말이 바로 그러한 뜻이다. 

그렇다면 겸손케 하기 위해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그런 치명적인 질병을 주셔야 하는가? 

또한 그 같은 치명적인 결함이나 약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수 없다는 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런 치명적인 가시가 내게 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낮추면 된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A. 첫째로, 그는 교만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지극히 작은 장점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고 자기를 나타내며 내세우고 싶은 사람, 또한 자기로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만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조금만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 매어 달리지도 않고, 조금 어려우면 하나님께 엎드렸다가도 조금 풀리면 돌아서는 얄팍하고 간사한 사람, 이랬다가 저랬다가 쉽게 흔들리는 사람, 건강 있으면 건강 의지하고, 돈 있으면 돈 의지하고, 권력이나 명예 지식 등, 세상 적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 고삐가 없으면 금방 튕겨 나가는 망아지처럼 수시로 쿡쿡 쑤시는 가시가 없으면 금방 교만해져서 하나님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기에, 육체의 가시로 묶어두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기에 그러하였다. 

때문에 자랑도, 절망도, 교만이다. 약간이라도 풀리면 교만해지는 사람, 하나님께서 항상 엎어 버려야 되지 않겠는가? 엎어버리기 전에 가시가 오기 전에 스스로 낮추라 아니 가시가 없어도 교만해지지 않는 자가 되라.

 

B. 둘째로, 너무 큰 계시와 은혜를 받았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것이다. 큰 은혜가 큰 복이 관리되고 유지되려면 가시가 필요하다. 은혜 받는 것은 쉽지 않으나, 받은 은혜의 관리나 유지가 더 어렵고, 관리 유지 보다 그것을 더 키우는 것은 더 어렵다.

  겸손의 도가 깊고, 넓고, 높아야 그 만큼 더 큰 은혜를 받는다. 

그러기에 더 많이 낮아지고, 죽어지고, 녹아지고, 없어진 자에게 더 큰 은혜가 임한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 계속적으로 자기를 바로 세우는 비결이다.

 

성자라고 불리우던 한 사람의 겸손의 덕 다섯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A.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비천에 처하는 사람

B.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하고 그 통회한 자리(물리적 자리, 영적 자리)에서 사는 자

C. 자신의 죄를 알고 업신여기는 자를 달게 받는 것, 그를 보지 말고 자기를 보라, 주님을 보라, 그의 태도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으라.

D. 누가 자기를 모욕할 때도 반항하는 그것은 겸손이 아니다.

E. 모든 것은 하나님이 좌우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를 알고 있었기에 자기에게 있어야 할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무런 불만도 없고 도리어 기뻐했다. 

자기를 자기 되게 하고, 겸손케 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고, 죽도록 충성케 하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Ⅳ.나오는 말

 

 자신이 약할 때에 곧 강하여지기 때문에 도리어 육체의 가시를 기뻐하고 자랑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과 같은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고 하였다. 

누가 궁핍을 좋아하며 핍박, 환난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내 안에 머물게 하는 곧,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바르게 서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뻐하고 자랑하였다. 

자랑이란 헬라어가 명사형이 되면 영광이란 말이 될 수 있다. 약한 것이 영광이다. 

그리스도 앞에서 더 많이 죽어진 것이 가치이다. 영광이다. 

그럴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됨으로 내가 진정으로 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현재적 자기 곧, 육적 자아를 죽여 달라고 할 때에 곧, 진정으로 자기를 죽일 때에 강하여 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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