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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순결 원종호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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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순결

성경본문 마태복음10장5절-16절

 

 

Ⅰ. 들어가는 말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복음전선에 파송하면서 필히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를 당부하셨다. 즉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장8절),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10장9절-10절), “아무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던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마10장11절),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마10장12절), “사람들을 삼가라”(마10장17절),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마10장19절), “두려워하지 말라”(마10장26절) 등이다.

 이 모든 말씀들은 우리가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아야 할 말씀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의 본문은 실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이나 환원 대열에 몸을 담은 우리들에게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씀이다. 

 

Ⅱ. 이리 가운데의 양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고 하셨다. 

실로 복음전선은 이리들의 세계를 향한 양들의 진군이다. 

오늘 이 시대를 이리떼의 소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물질인 육의 행복에다 초점을 맞춘 철저한 이기주의는 약육강식의 문명의 동물시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교계는 어떠한가? 

주님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종교계를 “강도의 소굴”(마21장13절)이라고 하였거니와 교권과 유물주의, 인위적 조직과 정책으로 사분오열되어 찢고 찢기는 오늘날 우리의 교계를 이리의 소굴이라고 표현하면 과연 잘못일까? 그러므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리떼의 소굴에서 사는 양들이며, 오늘의 환원운동은 이리 소굴을 향한 양들의 행군인 것이다. 

때문에 지혜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양들의 행군은 무저항적이며 비폭력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까닭에 주님은 “너희는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지혜롭기만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동시에 "순결 하라"고 하셨다. 

왜 그랬을까? 

 

Ⅲ. 지혜와 순결

 

 오늘 우리시대는 지혜의 시대이다. 역사상에 그 어느 시대보다도 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혜의 시대이며 지식의 시대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산물로서의 문명은 인간의 물질생활을 고도의 풍요와 편리를 누리게 하였고 또한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즉, 지식과 지혜 없이는 도저히 살아 갈 수 없을 21세기를 위하여 천재 인간들의 정자, 난자를 채취하여 시험관 안에서 교합시켜 천재들만을 출생케 함으로써 바보는 없는 지식과 지혜의 천재들만이 사는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유전인자 연구가들은 호언장담하고 있다. 아니 이미 그 실행이 현실화 되어 있는 줄 안다.

 바보는 없는 천재들만의 세계!! 후진성을 완전히 탈피한 물질문명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세계!! 그것은 실로 문예부흥 이후 인간이 걸어온 길이며 반만년 역사에 한 번도 넘어본 일이 없는 보리 고개를 넘어보려는 우리 민족의 절절한 염원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말이다. 

그러나 천재들만의 세계가, 아니 문명인들만의 세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과연 인류 행복의 경지와 현장이 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인류 역사를 불행과 고통과 슬픔의 전란 속으로 휘몰아 넣었던 것은 다 바보들이 아닌 천재들의 장난이 아니었던가 그 말이다. 그렇다면 정녕 지혜만을 추구하는 시대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바로 기독교가 풀어 가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머리의 문제가 아니고 가슴의 문제이다. 

현대의 문제는 지식과 지혜의 문제가 아니라 순결과 성결의 문제인 것이다. 

이 시대는 고도한 지혜에 반하여 순결이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자연이 공해로 인하여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성의 세계가 순결을 즉 본연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물질문명은 정신문명 아니 영적문명과 병행해야한다. 오히려 물질문명은 영적문명의 지배하에서 성장 되어야 한다.

 아메리카나 서구문명의 결과로서의 오늘날을 건너다 보라!!

 순결성을 상실해 가는 인간성들이 고도한 물질문명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만 아니고 지혜와 함께 순결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한국 환원운동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 지혜인가? 순결인가? 

그 어느 쪽일 수도 없다. 그것은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약3장17절)고 성경은 선언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성결이 없는 지혜는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원운동은 이론이 아니다.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살았다는 지식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을까 하는 지혜가 아니다. 거기에 바탕을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순결이요 성결이다. 환원운동이 이것을 바탕에 둘 때 그것은 무한한 추진력을 가지고 성장, 확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환원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리가 아니다. 지식이 아니다.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운동이다. 운동은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한한 동,식물들의 생명운동이 아니고 영원을 지향하는 영적생명 운동이기 때문에 더욱 끊임없는 운동이며 성장이다. 

생명은 어떤 범주안에 들어 있기만 하면 생명력이 약화되거나 죽는다. 

영원한 생명일 경우에는 더 더욱 그러하다. 생명은 오직 생명의 법칙을 준수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환원은 시간안의 목적이 될 수는 없고, 영원을 향한 전진만 있을 뿐이다. 

무한한 성숙을 향한 길일 뿐이다.

환원은 운동이다. 그것은 생명운동이다. 진리운동이다. 성령운동이다. 말씀운동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Ⅳ. 중단없는 양의 행군

 

그런데 주님은 이같이 이리 가운데로 양들을 보내는것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로서 우리 기독인들은 이리떼의 소굴로 들어가는 양들인 것이다. 

가다가 여우를 만나면 여우로 둔갑하고, 이리를 만나면 이리로 변화되고, 만나는 대상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둔갑하여야, 아니 오히려 만나는 대상들보다 더 강한 존재로 둔갑 하여야 그 대상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이길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은 결코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즉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양이어야 하고 둔갑하지 말고, 오직 양으로 끝까지 행군하라는 것이다. 

그러할 때에 주님은 곧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기(시23편1절) 때문에 어떤 상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딪쳐오는 현실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는 것은 하나님을 절대로 의지하는 믿음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곧 하나님은 양의 목자이지 여우나 이리의 목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V. 나오는 말

 

 그러므로 우리는 모름지기 지혜와 순결을 가진 양으로 중단 없는 전진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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