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호-설교

  • 홈 >
  • 원로목회자 >
  • 원종호-설교
원종호-설교
성령은 어떻게 받는가? 원종호 2022-10-16
  • 추천 1
  • 댓글 0
  • 조회 205

http://cochrist.kr/bbs/bbsView/50/6158476

????성령은 어떻게 받는가?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받는다(행2장38절).

왜냐하면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이 구원인대 성령은 구원의 보증으로(고후1장21절-22절)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례를 받지 않고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대두된다.

성경에 나타난 그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의 한편 강도의 경우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있을 때에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편 강도인데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달라"(눅23장42절)고 하였고 이에 대하여 주님은 "내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장43절)고 하심으로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명히 이 사람도 구원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세례를 받지 않았던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싶이 이 사람도 십자가 이전 시대에 해당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발생하는 한가지 의문은 그가 언제 믿기는 하였다는 말인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에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달라"고 한 사실에서 그의 믿음은 확실하여 진다. 

그런데 여기서도 확실하게 짚어야 할 한가지는 주님은 그 강도에게 내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으니 천국에 간다는 의미가 아니고 낙원에 간다는 뜻이니까, 낙원은 천국과 다른 곳인가? 라는 물음이 발생할수 밖에 없다. 

 

그냥 간단하게 한마디만 하겠다. 우선적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죽어서 막바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낙원에 가게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으로 갈 사람들도 우선적으로 죽어서 막바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음부에 가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끝날에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 할 때에는 구원받는 사람들은 완전히 천국으로 올라가고, 반대로 멸망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완전히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믿게하는 것이 성령이신가?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가 없다"(고전12장3절 하반절)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성령은 믿고 세례를 받은 다음에 받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성령이 와 있기 때문에(?) 그 성령으로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에게 묻는다. 성령은 언제 어떻게 받기에 그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없는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데 대한 해석을 성경에서 찾을 길은 없고, 다만 믿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행2장38절 전후) 십자가 이후부터 실행된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 이전시대에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은 어떻게 임하셨는가를 묻지 않을수가 없다. 

즉 제사장들이나 선지자들이나 사사들에게도 성령이 함께 사역하신 것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울왕이나 삼손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이 왔다가 떠나 가기도 하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에 어려움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에 대한 확실한 말씀은 없고, 오직 어떤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이 성령을 주셨다고 해야만 할것같은 것일 뿐이다. 

더 더욱이나 제사장 들이나 선지자들이나 아니면 왕들은 다 성령을 받는가도 분명치 않고  또 성령을 받았던 사람에게서도 성령이 떠나 가버리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고, 특히 삼손의 경우에는 그의 삶이 한 여인에게 빠져서 해매는 모습 같은 것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따라서 필자로서는 구약시대 곧 그때의 성령의 역사는 인격의 성숙과는 관계가 없고 다만 하나님과 반대되는 자들의 활동을 대적하는 일만 하신 것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십자가 이후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과는 다른 점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즉 십자가 이후 시대에는 구원의 보증으로 성령을 받는대 비하여(고후1장21절-22절), 십자가 이전 시대의 성령은 구원의 보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다만 대적들과의 대결하는 일에만 충실하도록 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구원의 보증으로 받는 성령은, 성령 받은 사람의 인격을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게하는 성화와 관계되는 것이고, 구약시대의 성령은 그들의 인격의 변화와 성숙에는 상관 없이 대외적으로 하나님과의 대적자들과의 싸움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그때의 성령은 그들의 심령에 왔다기 보다는, 그들에게 그냥 함께하여 주신것에 비하여 오늘날 성령은 거듭난자의 심령에 오셔서 그들의 삶과 인격을 변화 시키며 인격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 시키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더 말하는 바이지만 구약시대의 성령은 구원의 보증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역을 위하여 오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가 없다"는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믿기 전에도 성령의 감화 감동이 작용하신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례를 받음으로 성령을 받는다든지(행2장38절)라는 말씀이나 성령은 구원의 보증으로 받는다는(고후1장21절-22절) 말씀과는 완전히 상충되기 때문이다. 

또 다시 말한다면 즉,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할수 없다는 이 말씀은, 성령이 그 사람 안에 임재 하였기에 비로소 예수를 주로 시인 할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감화 감동하였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장16절)이라고 하였듯이 이때에도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마16장17절)라 하였는데 이는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까닭은 오순절 성령을 받은 일을 성령이 우리에게 처음 입히던 것(행11장15절)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 곧 믿을 때에는 성령이 역사하되 그것은 임재가 아니고 단순히 감화와 감동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장5절)고 하셨을 때에도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의미는, 거기에 성령이 그 사람 안에 임재 한다는 의미는 없다.

다만 물, 곧 세례와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사역도 내주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능이 입혀지게 된다. 

따라서 그렇게 하여 거듭날 때에 성령을 구원의 보증으로 그 안에 임재하게 된다(고후1장22절,롬8장9절)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에는 성령의 감동 감화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거듭나는 때에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성령이 임하는 것은 증인이 되기 위해서 곧 주의 사역을 위해서 라면서 "오직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장8절)는 말씀을 든다.

 그런것 같으나 아니다. 

 

먼저 성령은 믿을 때에 받는 것이고(행19장2절) 그 성령의 임하심의 목적은 성령 받는 자의 구원의 보증이고, 제 2차적인 목적은 성화이고(갈5장16절,22절,롬8장9절-10절) 그 다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천사가 예수님을 수종들었듯이 우리에게도 그럴 수 있다. "오직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하였는데 이 권능이 성령이 임하시는 목적이 아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 성령의 목적이다. (따라서 증인 사역에 전력할 때에 성령의 권능은 더 크게 역사하는 것이다. 천사가 수종드는 일이든지 말이다.)

오순절 이후 성령은 우리의 몸 안에 임재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여 우리의 영에 와서 거주하신다.(롬8장11절)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지혜와 순결 원종호 2022.10.18 1 160
다음글 말씀의 흉년 원종호 2022.09.30 1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