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이후시대 곧 새언약 시대에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가? | 원종호 | 2022-07-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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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십자가 이후시대 곧 새언약 시대에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가?
그동안 부족한 이 사람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세례가 믿음과 함께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 하려고 하였다. 그것도 십자가 이전 시대에는 세례 자체가 없기도 하였었나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기로 보장 되어 있었는데,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무덤속에서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고(마27장50절-53절), 죽지 않고 십자가 이후까지 살아서 넘어온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새로히 받게 함으로서(행19장2절-7절) 십자가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확실하여지고, 그러한 사람들 중 십자가 이후까지 살아서 넘어온 사람들에게는 새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는 것은, 십자가 이후에는 믿음만 아니고 세례까지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성립된 것이었다.
그것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요3장16절,36절,6장40절,47절등)고 말씀 하셨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는 믿음만 아니고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기"(막16장15절-16절) 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십자가 이후 시대 곧 교회시대에 와서도 세례에 대하여서는 언급도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보기로 하겠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장21절-22절)는 말씀에서도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아온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함으로서 세례같은 것은 언급도 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십자가 전후 시대를 막론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처럼 되어 있다고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모두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롬3장30절)고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말씀이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엡2장8절,갈3장26절,행16장30절-31절,롬5장1절,빌3장9절,벧전1장5절 등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이전 시대는 물론이고 십자가 이후 시대에도 오직 믿음으로만 인간이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적이고 완전한 구원론이라고 하면 이미도 말한바와 같이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막16장15절-16절)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는데도 상관 없겠는가 그말이다.
먼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며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들 대부분이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바울 사도의 말씀들이다. 앞에서 이미 지적된 말씀들 곧 에배소서 2장8절은 물론이고 갈라디아서 3장26절이나 빌립보서 3장9절이나 로마서 5장1절등이 다 그러하다. 그런데 로마서를 그 바울이 성령의 영감에 의하여 저작한 것이긴 하지만, 바울은 그 로마서에서 우리가 잘 알다싶이,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우리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거듭남이라고(롬6장3절-4절)하였으니 바울에게서 뿐 아니라 새언약 전체에서도 세례가 없이는 의롭다 함을 받을수 없다는 것이 절대 원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들의 모든 경우에도 거기에 직접적으로 세례라는 말씀이 없다고 하더라도, "세례가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세례에 대하여 부족한 이 사람이 이미 말씀을 드렸던 내용들을 다시 말하여 보겠다. 먼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장14절)는 말씀이다. 즉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라는 것인데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장27절)고 하였으니 세례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 일"이기 때문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을수 있는 비결임을 확증하여 준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육신의 일"이란 인간이 타락하였던 상태의 삶을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이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영이 죽었기"(마8장21절-22절) 때문에 인간은 오직 육신으로만 살수 밖에 없었으므로, 그때의 삶 전체를 "육신의 일" 이라고 하는데 그 육신의 일 곧 육신만을 위하는 삶을 꺽고 죽이며, 도모하지 않을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세례라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자기의 옛사람인 육신적 자아가 아직도 완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일이 있을수 있는데 그 세례를 받음으로서 거듭났던 곧 다시 살아난 영의 힘으로라야 이길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게 되는 바이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살수도 있고 영을 따라 살수도 있기 때문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장5절-6절)고 한다. 그러니까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거듭나는 구원인데 그렇게 영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여 그 즉시로부터 영 주체적으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고, 거듭나기 이전 옛사람 곧 육신적 자아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그 육신을 따를수도 있고 영을 따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는 것은 사망이고 영을 따르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 곧 육신을 따르는 것은 사망이라는 것은, 실제로 그 육신이 죽어서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렇게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 나라에는 올라갈수 없는 삶이 되기 때문에 사망이라는 것이니까, 그 반대로 영을 따라 사는 삶은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올라 갈수 있는 삶이 쌓여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장4절)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장13절)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일이 바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아무것으로도 자기들을 가리우지 않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는데(창2장25절) 마귀의 미혹에 걸려들어 선악과를 따먹고 났더니 부끄러워져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었다(창3장7절).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심으로서 그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곧 죄를 가리워 주셨던 것인데(창3장21절) 이것도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 곧 세례를 벌써 거기서 하나님이 예시하여 주셨던 것이다. 즉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진 죄를 가리우기 위하여 인간 자기들의 방법으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 나뭇잎의 옷은 잠깐 있다가도 바스러지는 것이므로 불완전한 옷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옷은 벗기시고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셨다는 것은, 결국 세례라는 옷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부터 인간의 모든 죄를 가리우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3천명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서 이 땅위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질 때에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행2장38절)고 하였으니까 세례는 "죄사함이 되는 근거"라는 말씀임으로,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죄사함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세례가 없이도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다른 모든 교단들은 전체가 거짓 구원론인 것이다. 이뿐 아니라 노아 홍수 때 방주로 말미암아 노아의 가족들이 구원 받은 일과 관련하여(벧전3장20절- 21절)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는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3장20절 하반절- 21절 상반절)라고도 성경은 말한다. 여기 세례를 구원의 표라고 할 때 "표"라는 말은 한글로 표현하여 "안티 투포스"라는 말인데 "안티"는 반대라는 의미의 말이고 "투포스"라는 말은 "형상"이라는 의미의 말이니까 세례는 단순히 구원의 표상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구원의 실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대학생들이 가슴에 붙이고 다니는 뺏찌나 군인들이 역시 가슴에 붙이고 다니는 명찰 정도 같은 것일수는 없고 구원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다 더욱 분명한 것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장12절)는 말씀과 함께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장3절-4절)는 말씀들은 세례가 거듭남의 근거라는 사실이다. 한 마디를 더한다면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장25절)는 말씀은 우리 모든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 인간들을 의롭다고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시기까지 하셨다는 것이니까 구원은 그 십자가의 죽음만 아니라 그분의 부활에까지 합하여져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죽고 그 다시 살아나심과 함께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바로 "세례"를 통하여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니까 세례를 받지 않고도 구원이 된다는 사상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 구원론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타락하여 죽은 것이 인간의 영이었으니까 그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구원인데 주님도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하셨다(요3장3절-5절). 그런데 세례가 그렇게 거듭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가 없이도 구원이 된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성경적 구원론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은 기독교 자체라고 할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말이다. 그러므로 온천하 만민에게 전파 되어야 할 복음은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막16장15절-16절)고 하신 주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십자가 이후 시대에는 이 세계의 종말 까지 믿음만 아니고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정확하고 올바른 기독교의 구원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에도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으며 구원을 받는 것처럼 되어 있는 경우들에도 거기에 세례가 필연적으로 수행 되었을 것이라고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되풀이 하여 강조 하였듯이 만약 세례가 없이 믿음만으로의 구원을 말한다면 그것은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 그리스도를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고 거듭남 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 구원론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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