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교훈 | 원종호 | 2021-0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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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교훈 성경본문: 요3장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55장1절-4절,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i)들어가는 말 여름은 물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소용되는 때입니다. 강이나 바다를 찾아 바캉스를 즐기는 일도 그렇지만 몸도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씻어야 하고 흐르는 많은 땀으로 인하여 오기 쉬운 탈수증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물을 마셔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고 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물로 상징하였으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물의 중요성을 영생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물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생각해 봄으로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i) 물의 존재의 의 (A)생명의 근거입니다. 물이란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액체인데 생명 있는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근거가 됩니다. 자고로 물이 있는 곳이라야 동식물을 막론하고 생명의 서식이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 인간이 밀집하여 살게 되었던 곳은 강 유역이었고 대도시가 형성된 인류문명의 발상지도 큰 강변이나 해안이었던 것도 이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들입니다. 좌우간 물이 있는 곳이라야 어떤 형태이든지 생명의 생성이 가능한 것이기에 물이야 말로 생명의 근거이며 생명 근원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더욱이나 인체를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의 몸둥이는 절대 다량의 물로 즉,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과 들! 곧 이 지구라는 땅 덩어리 자체까지도 그 안에는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그 지니고 있는 물의 양을 유지 하지 못하면 땅덩어리든지 동식물들이든지를 막론하고 몸둥이들은 파멸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확실히 물이란 생명의 근거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물이라는 것 즉, 영적 생명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B) 물은 모든 것을 정화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더러운 것은 물이라야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물의 존재 의의 즉, 그 사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물의 용해력 때문이며 동시에 물 자체가 깨끗하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씻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물의 정화작용과 운동은 물과 접촉하거나 물속에 들어가 잠길 때에 가능합니다. 물과 접촉하지 않고는 그 더러운 것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같은 정화작용을 하는 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인간들의 마음과 인격과 양심과 생활의 즉, 말과 행위와 생각의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주는 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물에 접촉하거나 물속에 잠길 때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와서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은혜와 사랑 안에 잠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분의 사랑과 인격과 은혜의 용해력이 우리들을 정화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와 허물 즉 모든 더러운 것을 대신 짊어지신 것은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을 깨끗이 씻어냄으로서 그 자체는 더러워진 물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C) 갈함을 면케 하여 줍니다. 갈증 때문에 사막을 헤매는 자에게는 한 방울의 물이 곧 생명입니다. 여름철에 얼음과자 같은 단 것을 너무 많이 먹는 것 때문에 배탈 난 병자는 달고 시원한 것을 자꾸 마시고 싶은 갈증 때문에 찬 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갈하여지는 경험을 우리가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심심하고 아무 맛도 없고 미지근하지만 그냥 물을 마시는 것이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입니다. 어옇든 순수 물! 이것이 갈증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약인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은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적, 정적, 의지적 갈증 즉 영과 인격과 가슴의 갈증을 해소하여 줄 물은 오직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물과 양식이 없어 기근이나 기갈을 당한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한 기근과 기갈 속에 몸부림치는 시대입니다. "그날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기 위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달려 왕래하여도 얻지 못하리니 그때에는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8장11절-13절)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보낸 기갈의 시대입니다. 우리들의 영적 갈함을 해소 시켜 줄 말씀이 없는 시대! 육체적 신경조직을 자극하는 음악은 있어도 혼을 충동하는 문화운동은 있어도 영을 시원하게 하는 음악이나 말씀은 없는 시대! 때문에 먹고 마시고 광란의 춤을 추어 보지만 가슴의 갈증을 해소할 길이 없는 피곤한 시대가 오늘 우리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어서 우리 안에서 그 형상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할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인간성의 갈증을 해소시킬 물입니다. 그 분의 마음을 품어야할(빌2장5절) 우리들이 또한 그 “물”입니다. 이 뜨거운 역사의 여름에 갈증에 허덕이는 자들에게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물의 사명을 다 하시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iv)물의 성질 (A) 물은 어떤 곳에도 적응합니다. 물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곳에도 적응한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그릇이라고 안 담기거나 큰 그릇이라고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동그란 그릇에 담기면 동그랗게 되고, 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모가 나고 붉은색 병이나 그릇에 담기면 붉은색으로, 노란색 그릇에 들어가면 그 그릇 색깔로 되어 집니다. 그렇다고 물 본래의 성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물은 짠 것이 들어가면 짠물이 되고 신 것이 들어가면 신물이 되고, 단 것이 들어가면 단물이 되고 무슨 색깔의 물감이 들어가든지 그 색깔로 변화됩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것에도 적응이 됩니다. 이것은 물이 투명색이기 때문이며, 즉 무색이기 때문이고 전혀 그 어떤 맛도 가지고 있지 않는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즉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 물입니다. 오늘 우리 인간들은 이미 어떠한 색깔의 인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또는 이미 짜거나, 시거나, 매운 인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순수한 본질을 가졌듯이 모든 인간도 순수로 돌아가야 하지만 특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순수로 돌아가야 합니다. (B) 물은 흐릅니다. 고인 물도 있지만 물이란 본래 흐르는 성질 곧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성질이 있습니다. 사랑이든지, 인격이든지, 기타 인간의 가슴과 삶을 윤택케 하는 모든 고상한 것은 위에서 낮은 데로 흐릅니다. 흐르는 물은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흐를 수 있는 방향을 잘 잡아 주어야 할 따름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위로부터 아래로 흘러야 합니다. 신앙 인격도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흘러야 합니다. 따라서 사춘기의 자녀 교육도 위로부터 그들에게 신앙과 인격과 사랑이 흘러 내려가야 합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C) 물은 엉키며 부력을 가집니다. 물은 엉키는 즉 합치는 성질이 있습니다. 나무 막대기가 끊어졌던 것을 이어 놓았다 하더라도 이은 자리가 있지만 물은 어떤 물이든지 합쳐지면 전혀 그러한 표식이 없습니다. 완전 하나가 됩니다. 물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불합하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동시에 합쳐지면 무슨 색이든지 색깔이 동일하여 집니다.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도 얼마든지 합쳐지며 많은 물과 적은 물!, 어떤 곳에서든지 다 잘 합쳐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합쳐지면서 응고되지 않습니다. 굳어져서 물 본래의 생명적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물렁물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처럼 힘이 강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어디서나 물이 흐르는 곳에는 모든 것이 쓸려갑니다. 더욱이나 물은 부력이 있어서 많은 물은 큰 군함도 띄웁니다. 빗방울 하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개울이 되고 개울이 합쳐져서 냇물이 되고 냇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그것들이 흘러서 바다를 이룹니다. 그 바다는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지구안의 모든 강물들을 통하여 들어오는 그 모든 더러운 것도 수용하며, 실로 다양한 생물들이 보금자리로 삼고, 또한 큰 배들이 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평화스러워야 할 기독교가 분쟁이 상존한다는 것은 그 본질을 상실한 비극이며 따라서 물렁물렁 하기에 가장 나약한 것 같지만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더러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수용 하면서도 자기는 더러워지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용해시킴으로서 정화 하는 물의 성질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물로 표현된 그리스도의 성질인 것입니다. (v)나오는 말 물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물을 잘못 다스리면 대단한 피해를 입게 되며 잘 다스리면 유익이 됩니다. 수력 전기의 개발이나 수리 관개 사업, 그리고 상수도 사업이 그것이며 홍수나 산사태를 막는 사방 공사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의 성질을 거스리지 않고 잘 따르는 일이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일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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