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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 있는 첫 계명 | 원종호 | 2021-0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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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있는 첫 계명
성경본문: 에베소서 6장1절-3절
Ⅰ. 들어가는 말 오늘은 전 교회가 기념하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우리에게 주시는 본문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에 대한 효도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셨듯이 그 제목으로 효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Ⅱ. 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까? A. 생명을 계승하여 주신 생명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생명을 직접적으로 전수하여 주신 분은 우리의 부모님인 것입니다. 이 땅 위에 그 부모 없이 태어나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생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추구하는 자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을 이 땅에 있게 하신 부모님께 감사치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공경치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때로 다른 부모님들처럼 우리 부모는 우리에게 잘한 일이 많지 못하다고 생각이 될 때에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느끼는 자기 자신은 생을 포기하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느낌을 받는 자체가 강렬한 생의 의욕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B.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이 싫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사랑을 줄 때이며 또 받을 때일 것입니다. 그것도 이성의 사랑을 받을 때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때 인간은 더욱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견줄 수 있는 인간의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뿐 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다음으로 공경해야 할 분이 부모님이라고 성경은 증거 하는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의 희생적인 사랑! 임신기간과 산고의 고통은 고사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보살피며 병들어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물수건으로 이마를 적셔주시며 옆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시던 그 은혜와 우리들의 성장과정에 뼈아픈 노동을 해가며 음으로 양으로 밑거름이 되어 주신 부모님의 그 희생적 사랑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아니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사랑이란 갚아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과 같은 것이어서 하는 쪽에서나 받는 쪽에서 공히 흡족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좌우간 그토록 자녀를 사랑하고서도 더 사랑하고 싶어 “내가 무엇을 해준 것이 있어야지”하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부모님들을 감사하며 받들어 효도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비해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너무도 빈약하듯이 자녀들의 효도가 어찌 부모님의 은혜에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만 단 한 번이라도 우 리는 부모님께 진정한 효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자로서 우리들은 영적 어버이가 되시는 하나님을 절대 순종함으로서 효도를 다하여야 하며 인간으로서 우리의 영적 아버지가 되시는 목사님에게도 믿음의 효도를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C.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하나님의 계명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계명이란 단순히 권유하거나 “바램”이 아니기 때문에 효도는 당연히 해야만 되는 것으로서, 하면 그만큼 계명을 순종한 축복이 있을 것이지만 효도하지 않는다면 역시 계명의 불순종으로 말미암는 형벌이 따를 것입니다. 동시에 효도는 계명 중에서도 첫 계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여야 되는 인륜 가운데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모에 대한 효도 없이는 다른 모든 윤리적 계명의 실천은 의미가 없는 선행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안사람들 특히 부모에게는 아무렇게나 하더라도 집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존경 받으면 그것이 올바르게 사는 성공의 삶 인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하여야할 일을 제외 하고는 부모에게 대한 효도가 인간이 하여야할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효도를 잘하는 자라야 밖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의 인재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옛말은 부모에게 효도치 않는 자는 나라에 충성할 수가 없다는 뜻인 것처럼 효도치 않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나라에 충성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계승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헌신적이며 희생적 사랑을 남김없이 베풀어 주시는 부모님께 효도함으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인 효도를 실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어떻게 효도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하여 오는 효도의 방법은 여러 종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 주신 말씀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A. 첫째는 순종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의 첫 번째입니다. 아무리 부모의 필요를 잘 공급하여 드린다고 하더라도 순종치 않는다면 단지 잘 공급해 드린 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까닭은 부모님의 마음이 가장 기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하시자는 대로 하는 즉 순종하는 것 이상의 효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효도는 여기에 한 가지가 첨가되어 있음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순종을 하되 “주 안에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컨대 만약 어떤 부모님이 불의를 도모하려고 할 때에도 거기에 순종만 할 수는 없고 더더욱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게 하거나 약화 시키는 일도 거기에 순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효도는 하나님의 뜻이 최우선이고 그 뜻의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는 것입니다.
B. 둘째는 공경입니다. 이것은 부모님을 높이고 존경하며 무시하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물질적으로도 궁핍하지 않게 공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병폐중의 하나는 경로사상이 식어지고 오히려 부모나 나이 드신 분들을 경시 내지는 무시하는 풍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부모를 존경해야 하며 공양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빚을 내어서 공양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Ⅳ. 효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효도는 계명이지만 약속 있는 계명이라 하여 어떤 약속이 보장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구체적인 약속이 무엇입니까?
A. 땅에서 잘된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잘된다는 것은 천국과는 상관없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물론이고 땅에서도 잘된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단순히 이 땅위의 유한한 가치, 즉 경제적인 면에서만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영도 육도 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부모님께 대한 효도를 잘 된다는 조건부로 해서는 안 되지만 그 잘됨은 문자 그대로 효도를 행한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B. 장수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여 오는 오복 중의 하나가 장수이지만 성도 중의 어떤 이는 빨리 죽는 것이 천국 빨리 가게 되니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장수는 분명히 축복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한 결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인데 병들고 고생하며 살 리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영육이 다 잘되는 축복을 장수에 붙여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까! 다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언제 죽어도 좋은, 즉 죽어도 좋고, 안 죽어도 좋은, 죽음의 준비를 끝내 놓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Ⅴ. 나오는 말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부모님의 은덕을 우리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리며 생각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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