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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원종호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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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성경본문 고린도 전서 1512-22)

 

() 들어가는 말 - 오늘 우리의 성경본문은 만약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거짓말로 드러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 인생은 죽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로 시작합니다.

부활이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심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다시사신 것을 보니까 죽은 자의 부활은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번째 의미는, 인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다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죽으면 그만이고, 죽은 다음의 세계, 곧 내세는 없는 거야! 누가 천국이나 지옥에 가보았나? 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인생이 정말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인생은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다 한번은 죽습니다. 분명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죽은 다음, 즉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529절에는 사람은 다 두 가지 부활, 곧 생명의 부활과 사망의 부활로 부활할 것이라고 증거 합니다.

요즘에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여 너무 어렵고 견디기 곤란한 고통이 오면 자살하고 맙니다. 죽으면 모든 것은 다 잊어버리고 끝나겠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참으로 인생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구태여 진실하고 선하게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면서 살다가 죽으면 될 것이 아닙니까?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이 세상 현실에서 반드시 유익이 된다면, 죽은 다음은 제쳐 놓고라도 이 세상 현실에서 나마 유익되게 살기 위하여 그렇게 산다고 할 수 있겠는데 어떻습니까?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삶이 반드시 현실에서 유익이 됩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착하고 진실하면 이 세상 현실에서는 손해 보는 일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정말 인생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라면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인간은 아직도 선을 추구합니다. 이면적으로는 악을 저지르면서도 외면적으로는 선을 주장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불의를 자행해서라도 현실적 영광과 출세와 현세적 부를 추구하면서도, 그 내면의 깊은 본성은 그러한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시인합니다.

이와 같이 본성적으로 인간은 진, , 미를 곧 참을 추구한다는 말은 인생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까닭은 그러한 인간의 삶을 평가하고 결산을 보아야하는 때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다 정평 정가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세는 실로 있는 것이 사실인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로 그것이 입증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또한 전적으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이외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있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도 내세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죽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내세가 있는데, 그 내세가 더 본질입니다. 인간의 몸보다 마음이 즉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본질이듯, 물질적인 이 세계보다 비물질적인 즉 육적인 세계보다 영적인 세계가 더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내세를 준비하는 장소요 기간입니다. 이세상은 잠간이요, 내세는 영원하기 때문이며 내세는 이 세상 다음에 오기 때문이고 그 내세가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생살이는 내세의 준비를 잘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수의 사람들은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고,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로지 이 세상 영광이나 부와 귀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을 허비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 까지도 내세에 대한 준비보다는 세상 부귀영화 추구에 푹 빠져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이라면 부활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일부터 해야 죽은 다음의 세계를 준비하는 일이 되겠습니다마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 시민들은 그 내세에서 내가 영원히 누릴 상급을 준비하고 키우고 쌓는 준비에 차질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이며, 따라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고 한다면 그대는 믿는 자가 맞는가? 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와 사망을 이기신 사건입니다.

성경은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은 다 죄를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즉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히 의로 울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사람 예수는 모든 일에 우리 인간들과 꼭 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지만, 죄를 범하지 아니 하신 분(4:15)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습니다. 이것은 불의가 의를 죽이는 일이기에, 악이 선을 이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세계의 역사는 불의가 의를 이기는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 심화 되어, 지금은 그러한 일이 극도에 달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대도 거짓이 진실을 이기고 불의가 의를 이기는 일이 이제는 아주 보편화 되어 버렸기 때문에 거짓과 불의의 편에 서서 의와 진실을 죽이는 일을 자행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가도 느끼지 못 할 만큼 인간성이 무디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고, 오히려 한술 더 떠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를 알지도 못하였고(고후5:21) 무흠하신 분인 나사렛 예수도 그 불의의 힘에 지금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왕권을 확보하실 줄 알았던 열두 제자는 물론이고, 주님을 믿던 거의 모든 무리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적지 않은 무리들은 몇 푼의 돈과 현실적 실권자들이라는 사람들의 편에서, 그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그마한 이권이나 현실적 실권의 힘에 붙어야 현명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의를 죽이는 불의에 가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의인 나사렛 예수는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하늘도 그 어떤 응답도 없이 캄캄한 어두움으로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무덤 속에 묻혔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의인 예수도 죽어서 그 시체가 무덤 속에 묻혔다는 말입니다.

그를 죽인 무리들이야 제 까짓 별수 없어! 이제야 그 무덤 안에서 썩어버리겠지!” 하면서 승리감에 도취되어 축배를 들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몇 푼씩 얻어먹고 강도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맘껏 소리 지르던 군중들도 이제는 예수도 끝났다면서 인생은 그렇게 죽으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하며 현세적으로 자기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며, 열두제자들과 함께 다른 제자들은 두렵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의인이던 예수도 죽임당하는 이 세상은 역시 힘이 있어야 되는가 보다! 라고 하면서 매우 쓸쓸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길게 이야기 하지 마십시다. 의의 승리입니다. 불의가 의를 이기는 것 같았는데, 아니 의의 승리이었습니다. 죽는 것 같았던, 아니 죽는 줄로만 알았던 참이, 진리가, 의와 진실이, 거짓과 불의를 이기고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사망을 이긴 것입니다. 죄의 값이 사망이었는데, 주님은 무죄한 자신이 죄를 이기었으니, 그것이 또한 죽음을 이기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활이전 모든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비록 969세까지 살았지만 결국 므두셀라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무덤 속에 들어가 다 썩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성경에도 엘리야와 엘리사가 다시 살린 사람도 있고, 베드로나 바울이 다시 살린 사람도 있구요! 또 주님께서도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무덤 속에 들어가 나흘이나 되었던 나사로까지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사망을 이긴 자들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얼마만큼씩 이 세상에 더 살다가 다시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 썩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망을 완전히 이기신 분은 예수님 한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분은 죽어서 죽음에 삼키워진 것이 아니라, 썩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기에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16:19)

불교나 유교 같은 타 종교가 대단한 마음의 수행이나 현실적 교훈은 할 수 있지만 죽음을 이길 수 없는 종교라는 사실이고, 착한일 하라! 정의를 실현하라! 등을 아무리 외쳐도, 죽음을 이기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은 죽어 무덤 속에 들어가 썩어져버릴 사람도 얼마든지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여러분! 의롭게 사는 것이 손해가 나는 것 같고, 지는 것 같고 죽는 것 같고 미련한 것 같이 느껴지는 세상이지만 결국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이긴다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우리들도 주님처럼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근거입니다.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 부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생명의 부활의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경본문 가운데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죄가 사하여 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더라도, 죄에 대한 속죄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는 보통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렇게 생활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됩니다. 분명히 죄의 값은 사망(6:23) 이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죽음도 죄의 값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 죽음은 예수님 자신의 죄 값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도 죄가 없는 분이 아니라, 죄가 있는 분이되겠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도 조금이라도 죄가 있어서 죽으셨다면,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죄의 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는 대속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분은 죽을 수 없는 무죄자라는 사실이 입증됨과 동시에 그의 피를 흘린 죽음은 우리들의 대속의 피 값이 된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대속의 은총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우리도 이다음에 부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본문 성경은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사망을 완전히 이긴 첫 열매라는 것인데, “첫 열매라는 것은 그 이전에는 그러한 열매가 없었다는 의미이며, 그 후에는 둘째 열매도 셋째 열매도 있을 수 있어서 그리스도처럼 생명으로 부활할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있을 것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첫 열매 뒤를 따라 영생할 부활의 열매들인 것입니다. 여기 첫 열매란 시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전에도 믿음으로 살고 죽어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첫 열매가 아니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첫 열매의 뒤를 이어 아니 그에게 붙어야 부활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만이 이 부활에 참여할 열매들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부활을 보장 받은 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어도 사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것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을 성경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 합니다.(11:38)

따라서 역시 땅에서도 나그네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에서 영원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 세상 현실 속에서 영원한 영적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죽음이편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 죽음 너머 저편의 삶을 여기서 사는 삶이기, 사망의 영역에서 생명을 살고 어두움 속에서 빛을 살고 오늘에서 내일을 사는 생이 되는 것입니다.

 

() 나오는 말 - 부부나 자녀들 모두가 주님을 믿지만 자신은 고집을 부리며 천국이나 지옥이 어디 있느냐?” 면서 믿지 않던 한사람이 아주 늙어 임종이 가까웠기에 그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한번 와서 복음을 전하여 달라고 하여 찾아간 목사님이,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였더니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다른 말씀을 다 전하고 났는데도 안 믿어진다고 함으로, “만약 천국과 지옥이 사실로 있다고 한다면 선생님은 천국에 갈 것 같습니까? 아니면 지옥에 갈 것 같습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머뭇거리다가 아마도 천국은 못가고 지옥에 가겠지요?” 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는 그렇다면 선생님 믿어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선생님 생각대로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면 밑져봐야 본전이지만, 만약 정말로 천국이나 지옥이 있다면 안 믿었을 경우에는 그것은 지옥에 갈 수 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더니, 역시 주저하다가 그러면 믿어보겠습니다. 라고 하여 믿었다고 합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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