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중에 찾아든 손님 | 원종호 | 2021-02-17 | |||
|
|||||
|
밤중에 찾아든 손님 성경본문: 눅11장5절-8절 Ⅰ. 들어가는 말 앞과 뒤에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이 있는 본 비유는 기도에 대한 비유임에 틀림없고 과부의 간구(눅18장1-8절)와 그 맥을 같이하는 비유로서 기도는 도중포기를 하지 않아야 될 뿐만 아니라 아주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는 데에 그 중심점이 있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물론 이점에도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본문 내용에 깔려있는 여타의 의미까지를 추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저 하는 것입니다.
Ⅱ. 밤중에 찾아온 손님 여기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이미 해는 저버렸고 밤도 퍽이나 깊었는데 찾아온 손님이었습니다. 이집에서 그를 초청한 것도 아니고 그가 또한 이집을 찾아올 것이라고 사전 연락 같은 것이 없었음이 분명한 것은 그를 위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로서 확실하여 집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오늘 우리의 본문은 “여행 중에”라는 말로 이 대답을 하여 줍니다. 때문에 이 밤에 들렸다가 내일 아침 어디론가 훌쩍 떠나갈 수도 있는 여행 중인 사람이었습니다. 나와 여러분! 긴말하지 않아도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느끼는 바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은 세상이라는 광야를 정처 없이 유랑하는 여행자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이 세상에 영구히 뿌리 내릴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잠깐 머물다가 가는 여인숙이며 아무리 좋아도 몇 밤 자고 떠나야 하는 호텔방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길손은 길손답게 말도 행동도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며 피곤과 고난을 각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여행자이기에 고독과 싸워야하며 불안을 느껴야 하며 풍우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 여행자는 밤중에 찾아왔다는 사실이 이미 그렇기도 하지만 대단히 허기져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먹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밤중에 찾아온 이 길손은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방황하다가 허기지고 지친, 인생 나그네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동산 투기 바람 따라 살며 사치와 유흥의 물결, 그리고 관광의 물결 따라 흘러봤지만 마음은 차지 않고 가슴은 점점 공허해지고 인격이 굶주리고 양심이 허기가 져서 지치고 쓰러지는 여행자들이 속출하는 것이 오늘 이 밤이 아닌가합니다.
Ⅲ. 그것은 교회입니다. 깊은 밤에도 빛을 잃지 않고 어두움을 밝히며 표류 자들의 길잡이와 안식처가 되어주는 이곳은 확실히 이 밤의 불침번인 교회입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찾아드는 허기지고 지친 길손들이 더 많아질 현상은 오늘날 그토록 풍요하고 편리한 환경 속에서도 가슴의 고독과 심령의 허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교회로 더욱 많이 몰려드는 것으로도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밤중에 찾아든 예기치 않았던 이 사람의 굶주림을 채워줄 떡이 그 집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언제, 어디서, 누가 찾아와도 그들에게 참 배부름을 줄 수 있는 생명의 양식과 갈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줄 생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는지? 여기 이집처럼 그것도 다 떨어져 없어진지 이미 오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인생 여행자에게 안식을 제공해야할 하나님의 집(딤전3장15절)입니다. 이적이 아니면 경제적 축복만이 신앙의 전부이며 목표인 것 같은 오늘의 교회를 통해서 참된 심령의 배부름과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겠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허기진 가슴에 줄 떡이 없다고 찾아온 벗을 그것도 그 밤중에 어디로 내어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떡 있는 집에 가서 떡을 요청하였습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강조하고저 하시는 초점이 있습니다. 떡을 얻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으나 기어코 얻어 내고야 만 이 의미를 주님은 “벗됨을 인하여는 떡을 줄 수 없었으나 그의 강청 때문에 떡을 얻었다”고 이 비유의 결론도 함께 맺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벗이라는 안면 때문이 아니라 강렬하게 요청하는 기도의 응답으로써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던 과부의 호소처럼(눅18장3-5절) 강하게 울부짖는 기도는 교회나 개인, 그리고 가정과 국가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Ⅳ. 떡 있는 집 밤중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떡을 구하러 갔던 떡 있는 집, 그 집은 어디이며 그 집 주인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하늘나라와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떡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집에서 우리는 떡을 구하여야 합니다. 본문의 찾아온 손님을 위해 강청한 사람도 구하여야 할 집을 정확히 알았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밤중인데 일일이 물을 수도 없고 어떻게 그 집에는 떡이 있을 것을 알았겠습니까? 즉 자기의 문제를 능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일까를 정확히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청했더라도 그 집에 떡이 없었더라면 허사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거절하였습니다.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함께 이미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것은 비록 자기는 떡이 없었지만 찾아온 손님을 먹이고 싶은 그의 심정을 잘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사람의 굶주림 상태가 더 이상 한 끼라도 굶을 수 없을 만큼 긴박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국 문은 열리고 떡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두드리는 자에게는 그저 주십니다. 마치 얍복 강변에서 야곱에게 하나님이 져 주시던 것처럼 말입니다.
Ⅴ. 나오는 말 베드로는 은을 구하는 성전 미문의 거지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여 앉은뱅이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학력도 권력도 부력도 있지만 생명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당신의 가슴에도 생활에도, 사업장이나 당신의 직업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까? 그리스도만이 인생 여행에 지치고 허기진 인간을 참으로 안식 주며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