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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원종호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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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성경본문: 136-9

 

. 들어가는 말

어떤 비유든지 그 비유를 베풀게 된 배경이 다 있지만 본 비유도 초두에 이미 비유로 말씀하시되라는 표현으로 앞선 부분(131-5)이 그 배경임을 시사해 줍니다. 즉 삼년간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던 무화과나무를 또다시 기회를 주면서 열매를 기대하는 본 비유의 초점은 곧 갈릴리에서 죽임당한 어떤 사람들의 피가 제물에 섞여진 일과 실로암에서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결코 지금도 갈릴리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시면서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5)고 회개를 촉구하신 말씀에 초점을 맞춘 비유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삼년 동안이나 열매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던 주인에게 한 알의 열매도 맺혀드리지 못한 무화가 나무! 여기 삼년이라는 것은 나무를 심고 난 다음 3년이 아니라 열매를 맺을 만큼 성장했을 때로부터 3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무리하게 열매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한 주인의 말을 보더라도 그 무화과나무가 서있는 땅, 즉 밭이 좋지 못해서 열매가 없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말한 과원지기의 말을 통해보면 과원지가가 성실히 가꾸지 않은 것도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가 오직 나무자체에 있음이 확실한 것입니다. 포도원을 경영하는 주인의 목적은 오직 열매를 바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야할 때를 세 번씩이나 그냥 넘겨버린 이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화가 난 주인의 자세는 오히려 당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계나 우리 자신들은 어떠합니까?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당연히 맺어야할 열매들은 과연 얼마나 맺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맺혀질 수 없는 열매이기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인격적 열매, 삶의 결실들을 맺히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을 쫓아 행하여야할(516) 오늘의 교계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유행의 풍조에 밀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름한철 이 동산, 저 마을로 노래나 부르고 다니던 베짱이가 개미에게 구걸하던 겨울철의 초라한 모습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이솝의 우화입니다만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언제나 여름인줄만 알았던 잘못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열매 없는 가을나무! 얼마나 불쌍합니까? 역사는 언제나 여름일 수만은 없습니다. 가을이 올 것이고 겨울이 올 것입니다. 확실히 열매를 요구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처럼 어떤 사람들이 각 갖은 사고로 죽고 상하고 그리고 가난하고 질병에서 신음하고 감옥에 갔다면 바로 당신보다 그들이 더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당신을 돌아보십시오.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 찍어버리라 명하신 주인

주인은 이 같은 결단을 내린 데에는 물론 근원적인 것은 열매가 없다는 이유이지만 열매가 없음으로 생기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3년이란 시간을 허비하였고 열매를 맺히게 하기 위해 그동안 들인 공력의 낭비가 그 이유들이었으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라는 것이 즉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가 어떤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그 자리만 버린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었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주인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감당치 못하는 자들, 고회의 신앙적 직분이나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열매 없는 생활만을 되풀이하는 자들에 대하여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찍어버리라 어찌 자리만 버리겠느냐"라고 명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서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이든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찍혀 버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략적인 인간의 수단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까닭은 주인이 당신을 그 자리에 심은 것은 오직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울 진저 포도원에 대하여 절대적 권한을 가지신 주인의 명령이여! 말씀이여!

 

.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본 비유의 마지막 의미는 과원지기의 간청에 의해 찍어버리라 시던 주인의 선고가 일 년간 유예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의 과원지기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복음 사역자들을 말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들의 간구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경우 모세의 간청에 의해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형벌이나 재앙이 보류, 또는 감면되었던 일을(32:10-14)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만 때문에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마치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 같이하는 주님의 사역자들로 하여금 그 일을 즐거움으로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1317-18)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좌우간 과원지기를 통해 유예 받은 이 마지막 기회를 정말 아무렇게나 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기회는 하나님의 자비의 은총입니다. 마땅히 찍혀 버림당해야 했을 자신이 이제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찍어버리지 않고 사하여 주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삶의 본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마땅히 지옥형벌을 받았어야할 죄인들이였는데 십자가의 피로 속죄함을 받았으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인생, 즉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주어진 은총은 즉 기회는 조건부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예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형언도가 유예된 심령들! 기회를 살리는 자가 성공할 수 있으며 이길 수 있습니다. 즉 시간을 살리는 자, 시간에 먹히는 자가 아니라 시간을 넘어선 삶, 바로 그것이 영원한 삶인 것입니다.

. 나오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의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바라고 오래 참고 계십니다.(벧후39) 그러므로 나는 늦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당신에게는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베짱이가 보낸 여름이여서는 안됩니다. 유예 받은 덤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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