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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은 다시 살아나는가? 원종호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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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영은 다시 살아나는가?

되풀이 되는 물음일수가 있지만 기독교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구원이라면 왜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원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야 일단 제처 놓는다. 왜냐하면 원죄를 부인하면 그것은 기독교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주 성경적 구원론의 총론 pp 55-69) 타락이 전제가 되지 아니하면 구원론은 성립될 이유가 없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은 타락이 영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보았다. 그렇다면 그 죽은 영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는가를 묻는 것은 구원이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인 것이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곧 구원의 방법을 말하는 것은 기독교 전체를 말하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쩌면 성경 전체를 거론 하여야 할 것이므로 적어도 저의 책 "성경적 구원론의 총론"을 다 읽으셔야 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가장 간략하게 말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거듭 난다는 것이다.

 

a,인간 구원의 근거

그것은 한마디로 십자가의 대속이다. 여기에는이의가 없어야 기독교이기 때문에 이것을 약간이라도 벗어나면 이단이거나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ㄱ왜 죽으셔야 하였는가?

죄의 값이 사망이기 (623) 때문이다. 이 죽음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 때문에 초래된 것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 되는 것이다(927).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도 그 죄의 값으로 죽으시는 죽음이었다. 죄의 값이 아니면 그 누구도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그날에 죽은 것은 영이었는데 어찌하여 그리스도의 육체가 죽는 것으로 그 죄의 값이 될수 있는가를 또한 묻지 않을수가 없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이러한 물음 자체도 없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죽은 것이 ""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와나 아담의 입술로 곧 육체로 따먹었으니까 그리스도가 죽는 육체의 죽음으로 그 죄의 값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할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다. 즉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영이 죽게 되었고(217) 생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으로부터 추방당하였기 때문에(322-24) 육체도 죽게 되었던 것이므로(ibid pp56-57)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영도 육체도 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영도 죽고 육체도 죽어야 선악과를 따먹은 완전한 죄의 값이 치루어 지는 일이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게 된다."(5310절 중반절)고 하며 "그가 자기의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중 하나로 여김을 받았다")5312절 중반절)고 할뿐 아니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 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라"(13-4)고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영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확증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은 "성결하였기" 때문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셨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리스도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 지셨다"(딤전316)는 말씀도 그리스도는 영도 의롭다 하심을 받은 곧 영으로도 죄를 범하지 않은 의인이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영적으로도 죽은 인간의 죄 값을 다치를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였다는 것은 인간은 영도 죽게 되었고 육신도 죽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영으로도 육신으로도 범죄 하지 않은 의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영도 육신도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모든 인간의 영육 간의 모든 죄의 값을 확실하게 치루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시 부활 하셨는가?

모든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고 그리스도만 다시 살아나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1140-44) 비롯하여 다비다(행 성구)와 유두고(209-10)그리고 구약시대에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살다가 다시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아니고 그리스도만 완전히 다시 살아난 사람이시기에 사망을 이긴 유일한 존재 이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분은 무죄하신 사람이셨다는 확실한 증거 인 것이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초래된 죽음이기에 죄가 없으면 죽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면서도 죽은 것은 자기 자신의 죄 값이 아니고 다른 모든 사람의 죄 값이었고 (딤전26)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그것을 입증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대속 이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부활까지로서 완전히 수행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425)고 확증 하며 역시 바울 사도는"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알게 한다면서"(고전151)"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한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고전153-4)이라고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까지가 복음이라는 사실을 확증 하였던 것이다. 역시 그렇기 떼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전1517)고 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만 하고 부활 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것은 죄사함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니까 믿음도 헛된 것이 됨으로 기독교의 존재 자체가 이유를 상실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타락이란 영의 죽음으로서 육신의 죽음 까지도 초래된 사망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생명이 없는 자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악과를 따먹고 영이 죽었다는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그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구원일 수밖에 없으므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주님의 말씀이 구원론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33-5). 왜냐하면 "거듭난다는 것" "다시 난다"는 것은 한번 죽었던 일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로서 주님도 복음을 듣고 살아날 사람들이 즉 구원을 받아야할 대상들 모두가 죽은 자들이라고 (525)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방법과 관련하여 거듭난다는 표현 말고 다양한 표현들이 성경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모든 표현들은 바로 "거듭난다"는 의미 속에 포괄 되는 것이다. 또다시 말하여지는 바이겠지만 타락이 영도 육도 죽은 것이므로 한번 죽은 일을 전제로 하는 거듭난다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타당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b,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거듭난다는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가야할 차례에 온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3)고 하셨더니 사람이 태어나서 늙기까지 하는데 어떻게 어머니의 태로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겠느냐(34)고 반문하는 니고데모에게 메시아로서 주님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35)고 하심으로서 거듭난다는 의미는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 하셨다.

 

,물로 난다는 의미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321절 상반절)는 말씀은 물을 세례라고 하는 여기에만 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의 물은 세례를 의미 한다는 것이 확실하여 지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212)고 함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한 것은 세례로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말이다. 또한 "무릇 그리스도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63-4)는 말씀도 그 의미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여 준다. 즉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과 사망의 권세 자 마귀 까지를 이긴 하나님의 영광임으로 그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다는 것이니까 새 생명으로 거듭 난다는 의미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말한다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도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 과 함께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니까 세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죽었던 모든 사람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거듭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조건들은 없이 무조건적으로 세례만 받으면 구원이 된다는 말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구원과 관련하여 세례말고도 다른 조건들을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1616)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례의 선행 조건으로서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과 믿음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또한 믿음은 말씀을 들어야 발생 하여도 하는 것이니까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을 수 있겠으며"(1014) 따라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1017)는 말씀들이 그 근거들이고 그렇게 복음을 듣고 믿기 위하여서는 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생의 방향 전환으로서의 "회개도" 가장 먼저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이다(115). 이러한 모든 것이 거듭난다는 의미 속에 포괄 되는 것이지만(ibid pp139-163) 세례가 그 결정적인 것이다.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여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으로서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238, 2216) 구원의 완성이 됨으로 따라서 구원의 보증으로서 성령을 받게 되는 일이기도(고후121-22, 113) 하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말씀도 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벧전123,ibid.p176)는 말씀은 확실히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하였으니 세례로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거의 모든 기독교단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할 것은 메시아로서 주님은 거듭나는 것을 분명히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거기서의 ""이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거기서 곧 바로 "말씀"이라고 하셔야지 어찌하여 거듭남을 "물로 나는 것"이라고 하셨겠는가 라는 물음을 제기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물은 물이고 말씀은 말씀일 수밖에 없다. 이 말씀 베드로 전서 123절에서는 말씀을 거듭남의 씨앗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미 앞에서 인용 되었지만 말씀을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을수 있겠느냐(1014)면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017)는 말씀으로 볼 때에 말씀은 믿음을 발생 시키는 씨앗이라는 것이니까 거듭남의 씨앗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믿음도 구원의 조건으로서 거듭남에 포함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로 거듭난다는 것과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성령으로 난다는 의미(,ibid,p173-175)

주님께서 거듭남을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 이라고 하셨으니 물로 나는 것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죽고 다시 사는 것 이라면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그 말씀에 계속되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36)과 관련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죽었던 영이 결정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 된다. 즉 거듭난 사람이란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이지만 거듭난 부부를 통해서 태어나는 자녀들이라고 하더라도 영이 살아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출생한 이후에 반드시 물로 나야 영이 다시 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의미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성령으로 난 사람은 나사렛 예수 밖에 없는데 거듭남으로 영이 다시 나는 일도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던 것처럼 신비중의 신비이기 때문에 그 나는 과정은 우리가 알 수가 없고 다만 "바람이 임의로 불어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 소리만 듣는 것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이와 같을 것이라"(38)고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결국 성령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깨달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영이 살아나는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그에게 주어지기(238) 때문이다 즉 성령을 받기 위한 별도의 조건이 없고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고, 고백하고, 세례까지를 받으면 성령은 구원의 보증으로서 필연적으로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성령까지를 받아야 구원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완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물어야할 한 가지 물음은 성령은 인간의 어디에 임재 하시는가 이다. 그것은 거듭난 영에 임하신다. 즉 영이 거듭난 것이 구원이니까 구원의 보증으로서 성령은(113)그 영에 오실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도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영이외의 다른 곳에는 인간 안에 영구 임재할 곳은 없기도 하기 때문이며 거듭난 영을 도우시는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도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816)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않아야 그 신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잘 지켜가게 하기 위하여서다. 그러므로 결국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성령을 받게 된다는 의미를 포괄 하는 것이다.

 

 

ix,그렇다면 거듭남은 과연 언제부터 인가?

우리는 천하의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일이 없다(412)는 말씀이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는 말씀들 때문에 천하의 모든 사람 그러니까 아담 때로부터 복음은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인 거듭남은 아담 때로부터 적용 되었다고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부정 할수 없게 된다. 그런데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서는 처음으로 말씀을 하셨었다. 그런데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유대인의 지도자(31)라는 이 사람을 산해 드린 공의회의 한사람으로 주경 가들은 보기도 하는데 이 사람이 거듭남에 대하여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거듭남을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뿐 아니라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거듭남에 대하여서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메시아로서 주님은 거듭남을 처음으로 말씀 하셨으니 과연 거듭남은 언제부터 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거듭남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기 이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를 더더욱 혼란케 하는 의문이 제기 될 수밖에 없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인데 어찌하여 거듭남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 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래서 또다시 되풀이 되는 말이 되겠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은 어디에서 끝나는가를 물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이다. 그래서 이미 말하여진 바가 있듯이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에 있을 것이라(고전1517)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만 하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인간의 구원은 절대 불가능하게 되고 따라서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고전151-4절하는 것이다. 더욱이나 우리가 지금 거듭남을 세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도 그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이고 역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벧전13절 하반절)는 말씀도 거듭나는 일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일이라고 함으로서 역시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이후부터의 일임을 확증 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를 또다시 물어야할 이유가 있겠는가? 거듭남이 구원의 절대적인조건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이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에라야 이루어 질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완전히 이루어진 이후부터 아니 그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므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십자가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거듭날 수가 없다는 말이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구원도 없다고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이 필연적으로 대두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이미 말한바와 같이 천하의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에(412, 딤전24)십자가 이전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은 보장이 되었으나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의 값이 치루어 질 때에 와서라야 비로소 죄 사함을 받으며 죽었던 영도 다시 살아나게 됨으로 구원이 확정 되는 것이다(27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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