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 난 풀 /시129:1-8 | 정춘석 | 2025-09-29 | |||
|
|||||
지붕 위에 난 풀 /시129:1-8
오늘 본문 말씀 시 129편은 '성전에 올가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시편 중에 하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들은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는지를 체험하게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을 때는 어렸을적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어렸을 적에 대부분의 마을 지붕들이 초가지붕이었고 혹 기와로된 지붕이 있기도 했지만 그 지붕에는 어김없이 풀이 몇 포기쯤은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비가 오거나 비온 후에는 생기를 얻었다가도 곧 날이 가물면 지붕위에 난 풀은 금새 시들어버려서 자라 열매까지 맺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시온을 사랑하는 자에게 줄 곧 따라다니는 문제가 있습니다. 시온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시온을 미워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온을 사랑하고 산다는 것은 시온을 미워하는 자로부터 주어지지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온을 사랑하는 사람,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 믿음의 내용 때문에 어려움을 분명하게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은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괴롭힘은 "밭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고 한 것처럼 결코 만만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힘에 겹고 참아내기가 쉽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자신을 괴롭힌 자들을 "지붕위에 난 풀"로 비유했겠습니까? 1. 지붕위에 난 풀은 "다 자라기도 전에 마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통의 땅에 난 풀은 그 뿌리가 굉장합니다. 어떤 것은 땅 깊숙이 파고 들어서 캐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실뿌리 하나만 놓쳐도 그 뿌리가 퍼지고 자라서 쑥대밭이 됩니다. 이런 풀들은 굉장히 질기고 깊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붕위에 난 풀은 풀씨가 어쩌다 지붕 위에 떨어져서 습할 때 발아가된 풀입니다. 지붕 위에 나 있는 풀이기에 보이기는 잘 보입니다. 지붕위에 있으니까 금방 사람의 눈에 띄고 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지붕 위는 흙이 아주 앝습니다. 흙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붕위에 난 풀은 뿌리가 깊게 내릴 수 없고 영양분이 충분하게 공급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지붕위에 난 풀은 "다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했습니다. 2. 지붕 위에 난 풀은 오늘 말씀에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 하나니"했습니다. 지붕위에 난 풀은 벨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베도 손에 차지도 않습니다. 열매가 없으니까 굳이 수확을 위하여 묶어 나르는 노고를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묶어 저장하고 간 수할 필요가 없으니 하찮은 것으로 취급될 수 밖에 없습니다. 3. 지붕 위에 난 풀은 또한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든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흔한 축복의 인사말인데, 이런 인사말조차도 아까운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붕위의 난 풀과 같은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어떤 일말의 축복의 말도 동정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 지붕위에 난 풀이라면 시온을 사랑하는 자들은 땅위에 난 풀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간해서는 없애기 힘든 것이 땅위에 난 풀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또 다른 시편에서 시온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기자는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처럼 반드시 지키십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