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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살자 /시91: | 정춘석 | 2024-0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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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살자 /시91:
시편 91편은 제목을 갖고 있지 않으나 장르구분상 재앙이나 해를 막기 위해 소원을 적어 가지고 다니는 패나 장식구에 속합니다. 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재앙이나 질병에서 구원받는다는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본 시편은 모세의 노래 (신명기 32장)와 사용모티브에 있어서 비슷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보호자 공급자 안내자가 되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광야 40년 동안 외적의 침입과 맹수들의 약탈에서 보호하시고,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시고,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 주시고, 옷과 신발을 닳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이 멈추는 곳에 멈추어 서고, 그것이 움직이면 그들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일 뿐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요, 공급자요, 안내자이신 것입니다. 1.나의 피난처 되신 하나님(1~6절) 때때로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불안정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타성에 젖어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성도들을 깨우시고, 연단시키시기 위해 불안정한 삶을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마귀가 주는 환난이 있습니다. 마귀는 성도 개인을 파괴하고, 그들의 가정을 파괴하고, 그들이 섬기는 교회를 파괴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파괴하고자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마귀가 환난을 통해 성도들 파괴하려고 달려 들 때 성도들은 즉시 여호와의 견고한 망대를 피난처로 삼아 그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피난처에 관한 네 가지 다른 표현이 나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여호와의 피난처, 하나님의 요새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뜻은 동일합니다. 여호와가 성도들의 피난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요 요새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밤에 찾아 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2.여호와는 나의 부적이 아니다(7~13절)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하나님은 성도들을 직접 관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우리들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의식주를 해결하시고, 필요하면 더 많은 부로서 어떤 알들을 하게 하십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하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필요한대로 알맞게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찾지 않는 자를 하나님은 도우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긍휼을 간구하면서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주님께 드릴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시고, 끝까지 나를 지키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로 서는 것,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3.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믿음(14~16절)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려면 1) 그 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은 다른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2) 그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는지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다르다는 것입니다. 3) 그 분께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낙망치 말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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