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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 /시88: 정춘석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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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 /88:

 

 

시편 88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비통한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제어에 나오는 <마할랏르안놋><고통스러운 질병>이란 뜻인데 그만큼 처절한 고난 가운데서 <주야로 주 앞에 부르짖었다>(1)는 탄원이요 기도였을 것입니다. 시편 88편은 <시편>에 나오는 150편의 시들 중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를 읽어보면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는 믿음의 고백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음에 대한 탄식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무덤에 누운 자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 없는 용사와 같으며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3-5). 그 절망감이 얼마나 크고 그 현실이 얼마나 참혹했으면 <스올>,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고, <죽은 자 중>에 누운 것 같았을까요? 시인은 심지어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라는 표현까지도 쓰는데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게 다 주님의 간섭이요 주님의 진노요 주님이 보내신 모진 파도라는 고백입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6,7).

 

 

2.두 손을 든 자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9). 내가 매일 두 손을 들었다는 것은 만세를 불렀다는 뜻이 아니라 투항했다는 뜻입니다. 무덤 같은 현실에 항복했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 백기를 들었다는 얘깁니다. 마치 아말렉과의 전쟁 때 모세가 높은 산에 올라가 두 손을 들었던 것처럼 주님 앞에 투항함으로 현실의 항복을 받아 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시인의 선택과 주님 앞에 두 손을 든 그 결단에 무한한 존경과 갈채를 보냅니다. 그것만이 칠흑 같은 절망을 이기고 무덤 같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비결임을 확신합니다.

 

 

3.아침에 기도하는 자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13). 때묻지 않은 아침기도는 반드시 주 앞에 상달 됩니다. 새벽기도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구별된 이른 아침, 구별된 성소에서 주께 부르짖어 보십시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이른 새벽 산이나 광야로 나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새벽을 바치면 하루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새벽은 기적의 시간이고, 또 은혜의 시간입니다. 만나도, 홍해도, 여리고도 다 새벽에 기적이 임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14) 하고 부르짖으셔서 새벽에 역사하시는 주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 보십시오.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던>(18) 주께서 그 뜻을 돌이키사 모든 이들을 내게로 다시 오게 하시고 밝은 빛 가운데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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