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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과 생명과 갈등하는 인간 운영자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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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과 생명과 갈등하는 인간

 

성경 : 히브리서 927

찬송 : 608(295), 529(319)

요절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주제 : 생명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자.

 

들어가는 말

인간이 범죄 한 후 하나님은 인간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생명과 갈등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인간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이 인간의 학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인간의 철학이나 과학 그리고 의학 등의 목표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목표는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노력은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오직 주님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인간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이 죽는 것은 그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 외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죽음이라는 형벌을 인간들에게 주시면서도 죽음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시편 11615절에 보면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죄악이 가득한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만큼 큰 형벌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 땅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형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믿고 죽는 죽음은 복이 됩니다.

인간들에게 죽음을 경험하게 하신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불행의 근원이며, 다툼이나 각종 범죄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죄로 말미암아 생명과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1. 영생불사(永生不死)를 소원하는 인간

요즘 우리나라는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아이들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공원이나 강변에는 어김없이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또한 각종 매체를 통해서 건강비결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전 국민이 건강 박사들입니다. 먹는 식품에서 운동법에 이르기까지 건강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에 좋은 음식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을 한 마디로 하면, 영생불사에 소원입니다.

그런가 하면 각종 종교들이 나타난 것 또한 영생불사를 꿈꾸는 인간들의 헛된 욕망의 결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영생의 길에 대한 오해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우상숭배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생불사를 꿈꾸는 인간들의 잘못된 행동들입니다.

 

2. 절망하는 인간

영생불사를 꿈꾸던 인간들은 자신의 학문이나 노력 그리고 자기수양 등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영생불사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있는데 그것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은 곧 죽음입니다. 주님은 고린도전서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을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3:13).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 드리면,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지속시키는 것은 소망이며, 소망의 완성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11:1)이라고 합니다. 즉 소망의 실상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생에 대한 소망 대신에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생불사에 대한 꿈이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꿈은 무병장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3.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이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 되십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구세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므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 자신은 한없이 약하며 죄인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지만, 주님은 은혜로써 의롭다고 칭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과의 갈등을 치유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도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참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본질상 같은 분이시지만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3:16).

 

나오는 말

그리스도인은 무병장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생불사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영생불사를 위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의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노력으로도 얻지 못한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생불사 대신 무병장수를 소망하거나 우상숭배를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함께 죄인 됨을 말해야 하고, 절망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생명을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죄악 된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2:20). 바울의 삶의 이유가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울처럼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으로(학습토의)

1. 인간들이 생명과 갈등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2. 생명과의 갈등을 치유하는 길은 무엇인가요?

 

금주의 기도제목

1. 우상숭배를 하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2. 날마다 예수를 닮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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