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 | 운영자 | 2021-09-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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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 성경 : 창세기 3장 6-8절 찬송 : 304장(통404), 538장(통327) 요절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6-8) 주제 : 죄의 습관을 끊어라. 들어가는 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온전한 순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귀에는 언제나 많은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소리와 마귀의 소리 중에서 마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입니다. 이것이 죄를 짓게 했던 가장 큰 원인입니다. 물론 마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소리를 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교만이라는 죄조차도 마귀의 소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듣는 것에 약합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나도 미국에서 영어를 듣고 자라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신앙의 언어가 나오고, 그 언어가 그리스도인을 순종으로 이끄는 힘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그 소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아담의 실수가 반복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죄를 알게 된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거룩한 청지기의 사명을 받은 인간은 불행하게도 죄를 짓게 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죄를 지은 인간들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 첫째가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서로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난 후에는 부끄러움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부끄러움도 모를 만큼 미숙한 아담이 부끄러움을 알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담이라고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의 뜻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고 난 후 이 말의 의미가 남자라는 의미로 전용(轉用)됩니다. 아담은 하와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단순히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남자라는 자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와가 창조된 후 남자임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여자를 모르면 남자도 모름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모르면 의도 모르게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들이 죄를 알고 의를 알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후에 나타날 많은 불행의 씨앗들을 잉태한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의(義)보다는 죄를 행하는 것에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정합니다(롬 3:10). 이 사실이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합니다. 2. 죄를 행하는 인간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고 둘째는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상실되고,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은혜에 의한 믿음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인간은 행위는 언제나 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선을 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간혹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서도 선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그 선(善)은 부분적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선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선이 이웃 나라들에는 고통을 안겨주는 악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성공이 누군가에는 고통을 주는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지 않은 인간의 선은 언제나 부분적임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도인조차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의 중에서 죄를 행하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회개가 필요합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통회자복(痛悔自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죄와 전투하는 인간 죄가 유전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가 유전되었듯이 부모의 죄가 유전되고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면서 집안의 병력(病歷)을 중시하듯이 죄가 유전되고 있습니다. 즉 집집마다 죄력(罪歷)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의 원인은 죄의 유전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의 유전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끊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입니다. 즉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칭함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죄의 유전에서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죄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소리도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합니다(계 2:29). 이 명령은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영적 전투를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영적 전투에 승리하시므로 선한 열매들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오는 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를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와 영적 전투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생활 속으로(학습토의) 1. 죄를 지은 아담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금주의 기도제목 1. 죄와 영적 전투를 하게 하소서. 2. 날마다 주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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