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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과 자유권 운영자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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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과  자유권

 

성경: 갈라디아서 51

찬송: 268(202), 260(194)

요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주제: 참 자유!

 

들어가는 말

자유하기를 바라는 욕망보다 인간의 마음에서 더 크게 불타는 욕망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자유는 죄스럽고 파괴적이며, 어떤 자유는 선하고 본질적입니다. 모든 자유들 중에서 최상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결과로써 오는 자유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

 

1. 거짓 자유

세속주의자들은 절대 자유를 추구합니다. 세속주의자들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사생활보호권, 자율권, 자기결정권 등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이런 요구 속에는 낙태, 자살, 안락사, 동성혼 등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포함해서 모든 외적인 권위로부터 자유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자유는 거짓 자유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브를 꼬드겼던 그런 종류의 자유입니다(3).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자유이지, 옳고 그름을 결정할 자유는 아닙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사소한 법들이나 규정들일지라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은 결코 율법주의가 아니다. 율법주의는 율법들을 잘 지킨 결과로써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으려는 잘못된 동기나 행동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2.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에서 자유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유죄 판결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유죄판결을 받으셨다는 진술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할 때, 그분은 우리를 유죄판결로부터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3:13).

둘째, 율법준수 의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의롭다하심의 수단으로써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하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얼마나 율법에 잘 복종하는가에 달렸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18:9-14) 율법주의자 바리새인의 태도처럼 자기를 하나님께 바르게 유지하려고 율법준수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선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걱정과 의심과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는 자기기만과 좌절 모두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수단으로써의 율법준수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로마서 104절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KJV).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셋째, 율법주의의 동기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기독교복음은 복종에 대한 올바른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멍에 메는 것,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 추수하는 것, 전투하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 그밖에 힘든 운동 등으로 기술합니다.

그러면 복종에 대한 올바른 동기는 무엇일까요? 율법 아래서 생활할 때 사람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갈망이라는 두 가지 동기들에 의해서 쫓깁니다. 모든 것이 개인적인 복종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 복종해야만 하거나 보상을 얻기 위해서 복종해야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이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들을 실제로는 싫어할 테지만, 마치 무뚝뚝한 노예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회초리를 피하려고 그것들을 행합니다.

그 같은 동기는 자기중심적입니다. 그 같은 동기는 거기에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고 묻습니다. 그것은 마치 돈을 보고하는 결혼과 같습니다. 그렇게 동기화된 사람은 구세주보다는 오히려 구원을 사랑합니다.

선행에 대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동기는 감사가 담긴 사랑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14:15). 그리스도인의 복종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랑에 자극된 수고입니다(살전 1:3). 문제가 되는 단 한 가지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KJV)뿐이라고 갈라디아서 56절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람은 믿음 즉 역사하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왜 그것은 역사합니까? 사랑 때문에 즉 가장 강한 가능한 동기, 사심이 전혀 없는 동기, 그리스도중심과 이웃중심의 동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은혜와 은혜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여 사랑으로 복종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은혜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에 근거하여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것에 우리가 덧붙일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은혜 아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3:28). 이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면, 우리는 사심이 없고 감사가 넘치는 사랑으로 실천하고 복종하는 일에 자유로운 것입니다.

 

나오는 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것은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해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자유는 방종이나 절대 자유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는 순종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기 때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자원하는 것입니다.

 

생활 속으로(학습토의)

1. 세속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절대 자유의 문제점들과 사례들을 논의해봅시다.

2. 각자가 삶 속에서 행하고 누린 참 자유에 대한 경험들에 대해서 발표해봅시다.

 

금주의 기도제목

1. 하나님을 이용의 수단으로써가 아닌 감사의 목적으로 섬기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2. 하나님의 말씀들을 이용의 수단으로써가 아닌 감사의 목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힘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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