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과 공정성보다 큰 은혜 | 운영자 | 2021-04-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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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과 공정성보다 큰 은혜 성경 : 로마서 3장 28절 찬송 : 251장(통137), 305장(통405) 요절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주제 : 오직 은혜! 들어가는 말 복음은 우리가 ‘율법을 인하여 행위로 말미암아’가 아니라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이나 율법준수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믿음의 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길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하고 참된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1. 율법의 길 성경은 율법과 은혜의 두 길을 날카롭게 대조시켜 놓고 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만일 사람이 율법의 체제나 틀 속에 갇힌다면, 그는 심판 날에 율법에 따라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율법의 작용 방법은 이렇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형벌을 면하라. 율법을 범하고 형벌을 받으라.” 이 방법이 대단히 정의롭게 보여도,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면 모를까, 죄와 허물을 피할 수 없는 이상, 이 방법으로써는 아무도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약 2:10, 갈 3:10, 롬 3:23). 2. 은혜의 길 은혜의 작용 방법은 이렇습니다. “율법을 지키지만, 형벌을 받으라. 율법을 범하지만, 형벌을 면하라.” 이 말은 율법 아래에서는 죄인이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지만, 은혜 아래에서는 죄인이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공정성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은혜는 공정성 이상의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공정해야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닐 것입니다. 은혜의 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가져가셨고, 우리는 그분의 의로움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죄인처럼 취급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그분처럼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3. 은혜의 상속자들 율법의 목적은 “범법함을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주어졌습니다(갈 3:19). 이것은 율법이 그것을 지킴으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고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교사이거나 가정교사에 불과합니다(갈 3:24). 율법 그 자체는 결코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갈 3:21). 이것은 구약성경의 성도들이 우리와 똑같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롬 3:28)는 것을 입증하려고 아브라함의 구원을 그 증거로 제시하였습니다(롬 4장). 구원과 영생의 충만한 복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에게 주어졌고, 그를 통하여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창 12:3, 갈 3:8). 어떻게 아브라함은 이 영광스런 기업을 받았습니까? 바울은 그 기업이 율법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갈 3:18)에 의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그 복들을 받았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롬 4:3, 갈 3:6)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롬 4:11).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은혜의 상속자들이 됩니다. 4. 은혜 아래서의 삶 만약 육지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배가 난파되고, 한 대의 수상비행기가 그곳에 착륙한다면, 물에 빠진 사람들 중에 그 비행기에 오르지 않고, 그 먼 해안까지 수영을 해서 가겠다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수영이란 율법을 택하지 않고 수상비행기란 은혜를 택하기로 즉각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분별력 있고 생명을 주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확신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죄를 지속적으로 덮는 그리스도의 피를 신뢰하면서, 그분의 완성된 사역위에 영생의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여전히 율법 아래 살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율법준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우리 자신의 선행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왜 내가 너를 천국에 들여보내야 하느냐?”고 물으실 때, 예수님의 비유에서(눅 18:9-14) 바리새인의 태도처럼 “제가 당신의 계명들을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시겠습니까? 또는 하나님께서 “내가 왜 너를 천국에 들여보내야 하느냐?”고 물으실 때, 세리처럼 “저의 죄를 용서하시는 당신의 자비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연약함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강하심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합시다. 우리의 구원은 율법을 지킬 우리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지킬 그분의 능력에 의존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은혜 아래서 살기를 참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우리는 율법 아래 남아서 어떤 정죄에 이를 수 있고, 혹은 무료로 제공되는 은혜를 수용하여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롬 8:17).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공정성보다 더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와 허물을 피하지 못하여 율법을 범하고서도 오히려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있게 됩니다. 생활 속으로(학습토의) 1. 어떻게 사는 것이 지속적으로 은혜를 의존하며 은혜아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해 봅시다. 2. 어떻게 사는 것이 지속적으로 율법을 의존하며 율법아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해 봅시다. 금주의 기도제목 1. 세리와 같이 겸손히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심령을 주옵소서. 2. 주님의 은혜 아래서 천국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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