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지금도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 운영자 | 2020-12-30 | |||
|
|||||
제6과 지금도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성경 : 창세기 8장 1-22절 찬송 : 203장(없음), 542장(통340) 요절 :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창 8:20) 주제 :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 속에 개입하시며 세상을 재창조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들어가는 말 우리는 때로 변화를 바랍니다. 지금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현실이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 쇄신을 꾀함에 있어 적당히 바꾸기만 해도 되는 경우가 있고, 아예 판을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예를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죄악은 노아시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했을까요? 물로 세상을 쓸어버려야겠다고 결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은 세상을 멸망시키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벌을 주시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판을 갈아엎어서라도 세상을 정화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홍수는 멸망이 아닌 재창조입니다. 1. 홍수의 과정 하나님은 죄로 물든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이 정화의 심판이 끝나자마자 스스로 후회하시며 다시는 사람의 죄 때문에 세상을 삼판하지 않으시리라고 결심하셨습니다(창 8:21-22 참조).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노아와 은총의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여기서 재창조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무지개가 뜨고, 거기에 창세기 1장에 나왔던 두 가지 내용이 다시 반복되어 나옵니다. 우선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창 9:1-2 참조)고 말씀하시며 창세기 1장 28절의 다스리는 권한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과 채소를 먹을거리로 준다”(창 9:3 참조)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29절에 나오는 먹고 사는 문제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창조의 원축복은 노아 시대에 와서 온전히 회복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무지개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계약의 표징으로 띄우셨습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죄와 타락의 세상 위에 떠서 하늘로 뻗쳐 있습니다. 저주 위에 떠서 축복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망 위에 떠서 희망의 세계에 잇닿아 있습니다. 종말 위에 떠서 새 출발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무지개입니다. 2. 노아의 제사 홍수가 지나가고 노아가 땅으로 나와 맨 처음 한 일은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창 8:20 참조). 이 제사가 하늘까지 향내를 풍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이에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계약을 주셨습니다(창 8:21 참조). 그런데 예언서에는 거꾸로 역겨운 제사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이렇듯 제사에는 ‘역겨운 제사’도 있고 ‘향내 나는 제사’도 있습니다. 무엇이 향내 나는 제사입니까? 마음을 다 모아서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둔 제사, 또한 마음이 담긴 제사가 아니겠습니까? 노아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향내를 풍기는 예배, 이런 예배를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언자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제사를 원하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사랑을 전하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것, 정의를 구현하는 것, 이 모두가 참된 제사의 요건입니다. 3.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함은 노아가 술을 한잔 하고 긴장이 풀려서 그만 발가벗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로 형제들에게 가서 아버지 노아가 발가벗고 자고 있노라고 알립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가서 겉옷으로 아버지를 덮어줍니다. 그 후 노아는 아들들을 모은 자리에서 함을 야단치며 저주를 내립니다(창 9:18-26 참조).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오늘날 이른바 스캔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잘 가르쳐 줍니다. 일례로 우리 교회에 스캔들이 났다 칩시다. 그 때, 함처럼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셈과 야벳과 같이 덮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영성가입니까? 바로 덮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교회에는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신앙이란 정의감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필요합니다. 분열을 일으키려는 것은 결국 유혹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의 이름으로든 파벌을 만들지 말고, 관계를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오는 말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던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함으로서 세상을 정화하셨습니다. 정화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내 물로 세상을 쓸어버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징표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은 일회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 속에 개입하시며 끊임없이 세상을 재창조해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노아는 당대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의인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생활 속으로(학습토의) 1.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2. 교회나 가족 공동체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금주의 기도제목 1. 타인의 실수를 덮어 주고 기도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2. 노아처럼 향내 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