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 | 이창성 | 2021-12-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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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삶 마가복음 9:38~50 모든 스포츠 경기는 상대와 경쟁해서 좋은 성적을 내야만 상을 받습니다. 자동차경주자들은 상대가 자신의 차를 추월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먼저 들어오려 합니다. 학교나 회사도 남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려고 경쟁합니다. 우리 사회는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관용이 사라진 사회에서 예수님은 관용과 배려로 소금 되는 제자가 되라 말씀합니다. 1 그들(작은 자들)에 대해 독점주의를 버리고 포용주의가 될 것(9:38~40) 2 그들(작은 자들)을 선대 하는 자들이 받을 상급 약속(9:41) 3 작은 자가 된 사람(하찮게 된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말 것(9:42) 포용하는 제자가 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관용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관용이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신조나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외적 힘을 이용하여 억압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38절 제자들이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음으로 우리가 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바른 처신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으니 예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리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를 독점하려는 것입니다.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장은 나에 대하여 비난하지 않을 것이니 그냥 두라고 합니다. 너희가 나를 독점하려고도 말고 상대와 경쟁하지 말고 포용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물 한 그릇의 작은 것이라도 베풀어 관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경쟁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 역시 제자들 간의 경쟁심이 있었음을 바로 앞 마가복음 9장 33~37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6)고 말씀하십니다. 경쟁해서 이겨야만 첫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이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가 상 받는 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기적 삶이 아닌 이타주의적 삶을 살라고 합니다. 자기만족 자아성취를 위한 경쟁의 삶이 아닌 상대를 위한 관용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작은아들 야곱과 함께 한 가정에서 큰아들 ‘에서’를 상속의 경쟁자로 만들었습니다. ‘에서‘는 리브가의 첫째 아들이었고 아버지 이삭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과 함께 장자의 권한을 두고 결국 속임수를 씁니다. 그 결과 가정이 흔들리고 야곱은 집에서 도망하여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많은 고통의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나중에 야곱은 역지사지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므로 생사를 알지 못하는 고통의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나누는 제자가 되라 41절 예수님은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이라도 베푸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작은 겨자씨가 나무가 되고, 적은 누룩이 빵을 만들 듯이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메아리가 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한 사람이 외치면 울림(메아리)이 있습니다. 작은 외침이지만 사랑은 울림이 있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5천 명이나 되는 배고픈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시발점은 어린아이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리 떡 지금 어린이는 줘도 안 먹는 떡이고, 오천 명이란 숫자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이지만 나누려고 내놓는 것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42절 “이 작은 자 중의 하나가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자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힘듭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약자(작은 자)를 선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작은 자[소자]들이 많습니다. 노숙자라든가, 학대받는 아동이 음지에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이 작은 자입니다. 현재 한국에 사는 이주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2.3%인 120만 명에 달합니다. 이주 외국인의 수는 갈수록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문화 가정이 이렇게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작은 자를 돌보는 것에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소금 되는 제자가 되라 50절 예수님은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화목이란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마음으로 허물 덮어주고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소금과 같이 삶 속에서 맛을 내되 서로 화목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경쟁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킵니다. 경쟁은 화목하지 못합니다. 경쟁은 다툼과 시기가 있습니다. 경쟁은 때로는 불화를 만듭니다. 경쟁은 쓴맛을 느끼게 합니다. 화목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께 용서받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화목하면 나쁜 관계가 좋은 관계로 바뀌어서 서로를 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뜻이 맞아서 하나가 되고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소금이란 자기 부인과 희생, 섬김과 같은 제자의 내면성을 가리키는데 이런 제자 도를 실천할 때, 성도의 모임 속에서 서로 화목할 수 있지만, 소금 같은 내면성 대신에 인간적인 이기심과 교만으로 행할 때, 성도의 모임은 깨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며 너희가 좋은 소금 제자같이 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처럼, 우리는 진리가 아닌 잘못된 이념과 신조나 사상들은 무관용으로 하되 모든 사람에 대하여는 그리스도 안에서 관용의 마음으로 포용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관용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화목 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경쟁의 삶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배타적으로 이기적으로 살기보다는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삶으로 서로 화목하게 함으로 모두가 화평할 때 우리는 관용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화목 하는 직분을 받은 자들로 화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관용하는 자가 화목 하는 자로서 직분을 감당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화목 하는 자는 소금이 음식을 맛나게 하는 것처럼 관용으로 모든 사람이 다정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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