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불러낸 사람들 | 권문주 | 2021-12-06 | ||||||
|
||||||||
하나님이 불러낸 사람들 이사야 42:1~7
본문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네 개의 ‘여호와의 종’ 노래 가운데 첫 번째 노래다. 성경학자들은 ‘여호와의 종’을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던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또한 ‘여호와의 종’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종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라는 사실의 표현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법,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과 특별한 신뢰의 관계에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사명자들이 ‘여호와의 종’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굳게 붙드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영을 부음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이 행할 사명은 이방에 공의를 베푸는 일이라고 이사야서는 증거한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여 바사의 영웅 고레스를 들어서 본토로 귀환하도록 할 것이라고 한 뒤, 인류의 구원자 메시아를 소개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있어서 [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통해서 실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 사역을 담당할 가장 적합한 분을 보내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하여 [2절]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라고 소개한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세상의 왕들처럼 인기를 의식하거나, 세상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또한 폭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핍박도 순순히 당하는 분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씀처럼 우리 주님은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시다. 이사야는 또한 메시아가 [3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말씀은 아주 쓸모없는 사람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오는 자마다 내어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그렇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같이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도 구원해 주셨고,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도 다시 받아 주셨으며, 십자가상의 한 행악자도 구원해 주셨다. 이처럼 주님은 약한 자를 도우면서도 진리와 공의를 세우셨다. 계속해서 이사야는 [4절]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예언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3년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세상 끝날까지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우리 주님은 힘이 없고, 나약한 자 같이 보였지만 그의 사역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미 2천 년 전에 부할 승천하셨지만,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그의 사역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을 여는 출발점이다.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의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믿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동역자로 삼으셨고 장차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다. 둘째, 본문은 메시아의 예언이기도 하지만 우리들도 주의 종으로 부르신다는 뜻이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을 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손으로 붙들고 계신다는 뜻이다. 종은 자유도 권리도 없이 비참하게 살지만, 그래도 여호와의 종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이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종 된 신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다. 우리는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의 3절 말씀처럼 사실상 상한 갈대처럼 연약한 사람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갈대다. 갈대는 몸집이 가늘고 키가 커서 약간의 바람에도 잘 흔들린다. 좀 심한 바람이 불면 완전히 다 쓰러지듯이 넘어간다. 속이 비어있고 재질이 약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충격에도 꺾이거나 상하게 된다. 이것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인간성에 대한 비유이다. 겉으로는 훤칠하고 건강하게 보여도 사실은 매우 약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도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인간의 감정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한다. 의지나 결심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갈대 같은 인간이지만 아름다운 특징도 있다. 그래서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고, 소설 ‘대지’ 작가 펄벅은 ‘살아 있는 갈대’라고 했다. 반면 갈대는 약한 식물이지만 가늘어도 곧게 자랍니다. 옆으로 뻗어 나가지 않고,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만 올라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으로 흔들리고, 쓰러져 가기도 하지만 결국 제 자리에 바로 서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 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런 갈대에게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고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주의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고,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의 공의를 베풀라고 우리를 불러 주셨다. 결론으로 정리해 보자. 이사야 42장 1~7절은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 같은 연약한 존재들인 인간들을 끝까지 사랑하사 구원해 주시려고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실제로 약 7백여 년 후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기록되었듯이 예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다. 흔들리는 갈대는 강한 힘이 버텨주면 강해지고, 꺼져가는 등불도 기름을 부어 주면 되살아난다. 마찬가지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같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 충만해 지면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 할렐루야!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