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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보게하소서 (마7:5) 이길우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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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보게하소서 (7:5)

 

눈에 티끌이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지요. 눈을 비비고, 바람을 불어서라도, 물로 씻어서라도 그 티끌을 빼내어야 합니다. 더 쉬운 방법은 가만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면 됩니다. 울면 됩니다. 다른 이가 빼어기 보다 스스로 깨닫고 눈물 흘리면 그 눈은 맑아지게 됩니다.

 

주님이 더 통탄스럽게 생각하시는 일은 티끌로 고생하는 이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티끌이 눈에 들어가도 힘겨운데 그 눈에 밝히 보아야 할 그 눈에 들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들보가 들어가 있는 이가 다른 이의 티끌을 빼내어 주겠다고 합니다. 도무지 상황파악이 안되도 너무 안 됩니다. 이 들보를 빼내어야 비로소 밝히 볼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지요. 아니, 눈에 들보가 있으면서 스스로 건강한척, 오히려 다른 이들의 티끌을 빼내어 주겠다고 설치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신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이처럼 사단의 간계는 교묘하고 집요하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으라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우리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들보로 인해 어두워진, 볼 수 없고, 그래서 분별할 수도, 누군가를 인도할 수도 없는 우리들을 생각할 때에 탄식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티끌만 있어도 눈을 비비며 몸부림치는데, 우리는 우리의 영안이 뜰수 있도록 생명 다하여 몸부림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그러나,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을 때, 소경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고자 했던 그들이 사랑하는 형제를 웅덩이에 빠뜨리고 자기 자신도 지옥 불 가운데 던져지는 상황 가운데 놓여 졌음을 우리는 기억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살아난 생명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아야 합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생명을 소멸시키는 행위는 주님 앞에 그 책망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가 악하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아니 강하게 명령하십니다. 깨어 있어 시대를 분별하여 악한 어둠의 세력과 싸워서 주의 몸된 교회를 지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성경을 펴 보면 곳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과 선지자들의 탄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책망하시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떠할까요. 지금 우리가 주님 앞에 선다면 어떠할까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을, 들보를 어찌합니까... 우리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어찌합니까... 우리를 도와주소서!” 탄식하며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더럽고 추한 나병환자는 주님 앞에 나아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며 간구했습니다. 이 나병환자의 간구가 우리의 절규가 되어야 합니다. 나병환자의 간구를 들으신 주님은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고 친히 그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것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는 그리스도가 세우셨다는 고백과 함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주님의 말씀대로 교회가 세움 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모인 무리들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라는 뜻인데 그 이름 나태 내기 위한, 외식적인 이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고백은 사문화된 고백도 아니요 여기, 지금 살아있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도자들과 온 성도들의 모습 가운데, 그 삶의 열매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않고, 그러한 노력도 없으며 당연히 열매도 없다면 그리스도의 교회가운데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화가 우리에게 미칠까 두렵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율법을 완성 시키고자 하시는데 아니, 이미 당신 스스로 십자가 위에서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율법을완성하셨는데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우리는 그 율법을 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그 사랑의 법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로마서 13장에서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증언합니다. 어떠한 법도 사랑의 법 위에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으시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만든그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심은 무엇일까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 핵심이 예수님께서 삶으로 가르치신 사랑의 법을 배우고 그 사랑을행하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입니다.요한복음에서는 이 말씀을 너희가 서로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제자인 줄 알리라(13:38)”고 명확하게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하는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다해서 사랑하시고, 끝까지 그 제자들을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사명을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사도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첫 치유이자 가장 유명한 사건 중의 하나인 성전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의 치유사건이 나옵니다. 이사람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했는데 사도들은 그가 구한 은이나 금은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에게 있는 나사렛 예수 이름’, 그 이름을 선물로 주며 그 이름의 능력으로일어나 걸으라하고 선포했을 때,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자는 걷기도 하고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건을 우리는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도 귀하게 여기는 성경 본문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주의 사랑을 잊고 은과 금을 구하는 삶을 반성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저는 선교사로써 하나님께 많은 것들을 구합니다. 그 간구 가운데는 은과 금도 있습니다.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능력도 구합니다. 병 고치는 능력, 축귀 능력, 말씀을전하는 담대함과 언변도 필요하지요. 정말 필요한 것도 많기에 구할 것도 많습니다. 사도행전 3장의 본문처럼 사도들의 이런 능력을 정말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시 한번 묵상하며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진정한 참 가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소유한다면 우리의 모든 필요는 문제 되지 않음을,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자의 문제는 헛된 것을 구하는 것도, 걷지 못하는 것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예수 생명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반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돈, 은사, 능력, 언변, 권위, 지식 등이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지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생명입니다.이는 지식도 아니요. 신비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살아 계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과 함께사는 것입니다.

 

두렵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7장의 본문에서 외식하는 자여!’라고 외치십니다. 주님은 인자와 긍휼의 마음으로, 그러나 의미심장하고 강하게 권면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에게, ‘주여, 주여외침만 있는 자들에게, 목에 힘만 주고 율법으로 형제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오늘도 그들을...,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눈물흘리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두렵습니다.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담대히 예수 이름을, 예수 생명을 전해 주었는데, 우리가 전하는 복음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 정작 있어야 할 예수, 그 이름...,예수 생명이 소멸되어 있다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은 오직 예수,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할 것이며 아니, 오히려 예수그 분이 모든 복의 전부가 되심을 성경은 분명히 선포합니다.우리는 다시금 이 복음의 진리를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들을 단순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그분으로 인해 모든 것이 정리되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주님만 따라가며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래 참으시고 인애와 긍휼을 베푸시는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우리 생명 다하여 시인하고, 삶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이 사는 길이요 우리의 사명을 다하여 세상을 구하는 길입니다.

 

 

마지막 때를 향하여 달려가는 이 시대는 저마다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각기 옳은 의견들을 다투며 내어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미혹의 소리는 높아만 가며 그들의 마음을 빼앗고 달콤함으로 속삭임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성경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그릇 행했을 때, 자신들만 곤경에 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환난을 당했지만, 그 주변의 모든 나라와 민족 그리고 그 후손까지 그 죄악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 주시고 이방의 복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그가 이룰 민족으로 인해 세상에 복 주시겠다는 약속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통해 열방 가운데 복 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방의 빛인 이스라엘이그 빛을 발했을 때, 열방은 그 빛을 보고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그 빛을 잃고 방황할 때에 세상은 혼란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극심한 혼란 가운데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땅 가운데 있는 주의 백성들이 그 책무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대한민국은 참으로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현대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그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건지시고 복 주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환난의 때에 이 땅에 은혜 주셔서 수많은 믿음의 백성들을 세우시고 교회를 부흥케 하셨음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에게, 주의 종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대를 책임져야 하며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교회 지도자들의 책무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책망하는 일은 멈춰야 합니다. 그 책망과 각성은 나 스스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시대와 우리의 모습은 탄식뿐이지만,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은 여전히 온 천지의 주인이시오. 우리의 구원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여전히 신실한 주의 종들을 예비해 놓으셨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책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주의 심판을 속히 행해달라고 간구한 것처럼, 그리고 오직 주님으로 인해 기뻐한다는 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유형의 교회가 망해서 무형의 교회를 살리신다면, 고난의 터널을 통해 영광을 볼 수 있다면 그 터널을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학교나 그 무엇이 망해야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감사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님을 기뻐하며 그 영원한 사랑의 교제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내가,나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모두가 그 자리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길간절히 기도합니다. 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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