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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야기(1)- 창세기 박신배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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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1)- 창세기

 

 

1. 하나님의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그 하늘과 그 땅을 창조하셨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왜 에트 하아레츠-창1.1)

성경의 첫 말씀은, 위대한 창조선언이자 창조주 하나님을 나타내는 최고의 신앙고백이다. 구약성경은 태초에(베레쉬트)라는 말로 시작한다. 첫 단어 베트는 유한한 인간과 영원한 하나님 세계를 구별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이 히브리어 베트(ב) 형상을 통해 인간의 시공간의 세계를 열어 주어서,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질서를 이해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데서 부터 신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고 자연계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이론(진화론)을 말한다. 아무리 자연과학이 발전해도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는 이론은 무익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창조 안에서 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발전시키고 그런 과학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스티브 호킹 같은 석학이 빅뱅설을 얘기하며 창조론을 거부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아직도 현대과학이 올바른 신학이론에 바탕을 둔 과학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설득력있는 창조 과학이론이 보다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창세기 1장에서 말씀으로 이뤄진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말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는,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생명의 언어를 발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지, 죽음의 언어 · 어둠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며, 낮과 저녁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창공 위의 물과 창공 아래의 물을 나누시고 하늘 아래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게 하고 뭍(육지)이 드러나게 했다. 분리의 창조를 보여 주신것이다. 거룩과 세속, 안식일과 평일을 구별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이렇듯 말씀의 창조, 구별의 창조, 하나님 형상으로 인간 창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창조 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닮도록 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2아담과 하와의 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담과 하와 사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창세기는 원인론(Aetiology)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쓰여졌다. 왜 인류가 죄를 짓게 되었는가, 남자가 왜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야 하는가, 여자가 왜 잉태하는 고통과 산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가, 뱀이 배로 다니며 평생을 흙을 먹어야 하는가 등등. 그 원인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고, 그 죄가 인류의 문제를 야기시켰으며 낙원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죄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으로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이 원죄(Origin Sin)를 물려받았고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롬5.9-12) 인류의 모든 문제는 죄(罪)에서 근원하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언약 관계가 파기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닌데 금령을 어기면서 관계 파괴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아담과 하와와의 관계, 여자와 뱀과의 관계가 어긋난 것이다.

원시복음(Proto-Evangelium)에서 그 사실을 말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예수가 뱀(사탄)의 후손을 상하게 할 것이다. 오직 예수로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예언한 것이다.

죄는 간교한 뱀을 통해 시작되었다. 뱀이 여자(하와)를 꾄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3-5).

죄의 속성은 거짓, 탐스런 유혹, 부끄러워함, 은닉성 등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밝아진다는 교만성이 내포된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게 된다(약1.15). 죄는 결국 사망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 본문에서 죄를 문책하신다. 먼저 아담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아담은 하와에게 전가하고,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된다. 하나님은 거꾸로 죄의 대한 벌을 내린다. 먼저 뱀에게 심판 선고를 내리고 하와는 잉태의 벌을, 아담에게는 노동의 땀을 댓가로 지불하게 하는 벌을 내린다. 죄와 회개에 이은, 용서의 표징으로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창3.21). 아담의 죄는 인류의 죄 문제, 죄의 속성과 댓가 등을 알게 된다. 결국 구속사의 관점에서 구원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의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5.17).

 

3. 노아 홍수

원역사(原歷史) 이야기는 창세기 1-11장 부분이다. 이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노아홍수와 방주 이야기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원역사(Origin History)에서 다루고 있다. 그 중에 노아 이야기는, 인류의 구원은 소수의 사람 만 임을 보여주며 천국의 문은 좁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창6.1-9.29). 노아의 홍수 심판 이야기는, 인간의 죄가 관영하였음을 보고 인간을 지은 것을 하나님이 한탄하면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창6.11).

죄의 시작은 창세기 6장1절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고 지적하며 그들이 육신이 됨을 문제 삼는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창6.3).

그들이 영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모습이다. 그 후에 의인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을 물로 쓸어버리겠다고 한다.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7.4).

많은 사람들 중에 노아와 그의 부인, 셈, 함, 야벳 아들과 그 며느리들 등 가족 여덟 만이 살고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물에 잠기는 불행이 있게 된다(창7.21-23). 물이 백 오십 일 간 땅에 넘치게 된다. 그 후 비둘기를 날려 물이 바람에 의해 마른 것을 보고 아라랏 산에서 내려온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새 언약을 맺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무지개(케쉐트) 언약 증표를 준다. 이 무지개 언약은 영원한 언약(브리트 올람)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보여준다. 무지개는 다시는 물 화살(케세트)을 내리지 않겠다는 상징으로, 화살을 거꾸로 뒤집는 모양으로 보인다. 화살(케세트)과 무지개(케쉐트)는 같은 말로서, 언어 유희(language game)로 강한 이미지를 준다.

노아를 통한 새 인류의 시작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언약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성취로 이뤄진다. 다시 말해 노아 홍수를 통해 인류의 종말, 말세 심판을 보게 된다. 하나님 심판이 가까웠다. 우리는 종말이 다가옴을 알고 있다.

물의 심판이 아닌 불의 심판이 도래할 것이고 인류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이 유황불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새 방주(테바),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도록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방주(테바)를 지어,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주의 신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4. 아브라함 언약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19)

구약 성경의 주제 중 언약은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신학적 주제이다. 아브라함, 노아, 모세, 다윗, 예레미야 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신약 성경으로 이어진다. 즉 예수의 새 언약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맥락이다. 이 구약 언약은 신약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창세기 15장, 17장에 두 번 나온다. 창세기 15장 아브라함 언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다메섹 엘리에셀이 아니라, 이삭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15:4). 그를 이끌고 나가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창15:9-10).

이 본문은 고대 세계의 계약 체결의식을 보여준다. 고대 근동 사회에는 동물 신체를 둘로 쪼개서 계약 위반시 위반 당사자가 이렇게 낭자하게 피를 흘리게 될 것처럼, 비참한 결과를 가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꼭 계약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아브라함과 여호와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은 특이하다. 과거 계약 당사자들이 동물 사체를 지나가는 풍습이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깊은 잠(타데마)에 든 다음, 타는 횃불(신神현현, Theophany)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감으로 언약을 체결한다(17절). 이 언약에서 바빌론 포로에 대한 예언을 보여준다(13-14절). 또한 구약세계에서 후손들이 살 삶의 자리, 애굽강에서 유프라데까지 후손에게 주겠다고 그 기업을 약속한다.

창세기 17장은 제사장문서(P) 언약이다. 할례 언약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는다. 아브람이 구십 구세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영원한 언약(베리트 올람)을 맺는다(창17:7).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10-11절). 이 계약의 특징은 할례와 영원한 언약,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개명, 사래에서 사라로 개명(열국의 어미), 이삭의 탄생(19절), 이삭의 후손과 영원한 언약, 이스마엘의 십이 방백, 이스마엘 할례 등이다.

할례가 언약의 표징(11)이 되는 것은 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17장은 바빌론 포로의 신학적 의미가 담겨졌다고 본다. 바빌론 포로시대 이스라엘은 혼돈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할례로 가져야 했다. 바빌론의 마르둑 신상과 바벨탑, 지구라트의 웅대한 공간의 종교 앞에서 이스라엘은 시간의 종교, 안식일 신앙을 강조한 것이다. 또 신체에 어린 자녀들이 할례(포경수술, circumcision)받아 몸에 언약의 표징을 가짐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하였다. 비록 포로지에서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정체성 없이 유랑하는 백성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영원한 언약 백성으로서 살고자 하였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포로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한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브리서11:11-12)
 

5. 야곱의 축복

꿈의 계보 : 벧엘의 꿈이 요셉의 꿈으로 이어져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8)

야곱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축복 때문에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멀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20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제 고향으로 향하는 야곱이다. 여기부터 야곱의 인생 후반전이라고 볼 수 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 40년 세월을 보내고 80세에 바로의 궁전에 가서 여호와의 백성을 보내달라고 말할 때, 그의 공생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 시기가 모세에게는 본격적인 인생 절정기라고 볼 수 있다. 꽃이 피고 마지막 지는 때, 나무가 열매를 맺고 낙엽이 되고 떨어지는 것처럼, 야곱은 그 인생 절정을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겨루는 장면이다. 야곱은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야곱은 이 이름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된다. 열 두 지파(열 두 아들)가 형성되고 나라의 골격을 이루는 조상이 되니, 그의 믿음과 축복권이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그 어른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야곱은 축복의 사람, 축복의 사모자, 열정적 축복인이다. 형 에서와 삼촌 라반 사이에 그렇게 축복을 쟁취했고, 지금 천사와도 축복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야곱은 에서와 사백 인을 맞이하여 예물을 먼저 드려 환심을 사고, 기쁜 해후를 한 후 이별을 하고 세일로 간다(창33:14). 그러나 야곱은 세겜에서 불행하게도 딸 디나의 강간 사건을 당하고 화난 야곱 아들들이 할례를 미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여서 곤경에 빠진다.

그 후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한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창35:8)와 베냐민과 요셉의 모친 라헬을 장사지내고(창35:19),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눈 감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창35:29).

야곱은 고향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더 많은 슬픔과 고난을 겪고 아버지와 아내를 장사한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여 편애한 결과, 그 아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갖는다(창37:3-4).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꿈의 연속, 꿈의 족보, 꿈의 세대는, 신앙 사대(四代)로 나타난다. 야곱의 벧엘의 꿈은 이제 꿈꾸는 아들 요셉을 통해 복의 민족 형성의 씨앗이 된다. 요셉의 꿈 이야기는 창세기 37-41장까지 나타나는데, 야곱의 축복 여행(창27-35)은 요셉을 통해 애굽까지 이르게 된다. 기근을 피해 대가족을 살리는 피신의 역사, 유랑의 역사를 보여준다.

결국 신앙 사대의 결실이 선교사 요셉을 배출하는 역사로 나타나고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신앙인물이 된다. 야곱은 그 중심에서 축복을 사모하는 자의 전형, 그 상징 인물이 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러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행7:12,15).
 

6. 요셉 비전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요셉이 다시 꿈(하롬)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37:9)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 결론이다. 요셉은 신앙 사대의 끝으로 신앙의 명문 가문을 이루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신앙 사대에 이르면 선교사를 배출 할 수 있는 가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셉은 꿈의 사람으로 어렸을 때부터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비전은 그를 평탄하게 살도록 하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했다. 꿈의 댓가를 톡톡하게 지불해야 했다(창37:1-39:23).

요셉이 꾼 꿈 이야기와 아버지 야곱의 편애는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사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려가게 된다(37.18-36).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37:19-20)

꿈꾸는 자(바알 하 할로모트 하라제). 이 꿈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꿈 이야기로 인해 시련을 겪게 된다. 하나님의 꿈인가 시험하는 형들의 도전은 결국 형제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애굽에 팔려 보디발 시위대장의 종살이 생활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형통하게 되어 가정 총무(와이사레)가 된다. 하지만 또 거기서 꿈의 시련을 받아, 보디발 주인의 아내 유혹을 받는 어려움을 당한다(39:7-23).

꿈쟁이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술 맡은자와 떡 굽는자의 꿈을 해몽해주어 한 사람은 복직되고, 한 사람은 죽게 되는 꿈을 해석해 준다(40.1-23). 그 후 바로 왕이 꿈을 꾸게 되고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 꿈을 꾸지만 애굽 전국에 아무도 그 꿈을 해몽하지 못한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 때야 자신이 복직되었던 꿈을 생각하고 왕에게 추천하여 꿈 전문가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해몽한다.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다.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41.25).

7년 풍년, 7년 흉년의 문제를 풀 사람은 그 꿈을 푼 요셉임을 분명했다. “왕이시여, 오일조(1/5)세를 풍년 때 거둬 각성에 보관하여 흉년 때 임할 재앙을 예비하시오!” 그러자 바로가 감탄하며 그 신하들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41:38)

애굽 전국의 총리가 된 삼십세 요셉은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는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갖고 흉년을 맞게 된다. 우리의 인생 경영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갖게 된다. 7년 풍년, 7년 흉년이라는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비전을 볼 수 있는 것은 믿음과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 기근은 온 세상에 퍼졌고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가게 된다(42:1-5). 요셉은 형들이 올 것을 미리 꿈을 통해 알았고 형들을 정탐꾼(메라겔림)으로 몰게 된다(42:9). 지혜로운 요셉은 형제 상봉과 가족 구원을 염두에 두고 해 달 열두 별들이 절하는 꿈, 열두 벼집단(곡식단)들이 절하는 꿈을 성취할 때임을 알았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탐이 아니요 독실한 자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창42.34)

드디어 친 형제 베냐민을 보자 눈물을 흘리는 요셉,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요셉은 자신이 동생임을, 우리들이 형제들임을 알리고 방성대곡한다. 형제들과 화해하고 아버지 야곱과의 상봉은, 하나님 꿈의 결과였다. 반드시 꿈은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45:28).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11:22)
 

7. 요셉의 완성

창세기의 완성, 족장사의 완성, 비전의 완성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인생의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 야곱의 노년과 죽음, 유언과 축복의 장면이 창46-50장에 나온다. 창세기 결론부에서 요셉 스토리는 한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신앙 사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 어떻게 선택되는지 보여준다.

신앙 족장들은 하나님의 꿈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큰 그림을 그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던 신앙인이다. 아브라함은 큰 비전을 가졌고 이삭은 그 비전을 완성하는 인격과 품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야곱은 축복을 쟁취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국부(國父) 비전을 가진 거목이다. 요셉은 세계적인 인물로 선교사의 전형이 된 족장들의 완성 인물로 구원자가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초를 이루는 토대를 제공했다.

창세기의 완성, 결론이자 신앙 사대의 걸쭉한 인물, 꿈꾸는 자 요셉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이 시작되는 신앙 아버지가 된다. 꿈의 완성자, 애굽의 국무총리, 신앙의 인물로서 야곱의 꿈과 신앙이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가 되는 차원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

야곱에게 한 약속이 요셉을 통하여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칠십 명 가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 살면서 장정만 60만 명의 큰 백성을 이뤄 출애굽하게 된다(출12.27,37,41) . 60만 명(케세쉬 메오트 엘레프, 6×100×1000). 이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야곱의 대가족이 고센 땅에 가서 본업인 목축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민족이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지혜를 보여준다(창46:28-47:26). 안전하고 평안하게 여러 세대를 생존할 수 있게 아버지 야곱의 가족들이 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정치적 바람을 타지 않도록 그는 지혜롭게 비전의 사람처럼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선구적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이어 아버지 유언과 죽음, 장례식을 치른다(창47:28-31). 이전처럼 죽기 전 축복이 에브라임에게 이어지는 자녀 축복권과 아버지 기도를 받고 야곱이 12자녀들에게 축복 예언을 함으로 그의 인생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창48:8-49:27)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49:28).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에브라임으로 이어지는 신앙 열조의 영적 가계는 창세기 족장사(창12-50장)의 큰 맥으로 표출되었고 요셉 이야기로 대단원을 맺는다. 요셉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 이야기로 결론 맺으며 형제 화해 장면으로 감동을 준다. 아버지 사망이후 형제간 갈등은 심화될 수 있는데 요셉은 가족사의 모든 문제를 구속사의 입장에서 보고 대 화해를 선포한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21)

요셉의 결론은 가족 간 화해, 평화, 화목이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요셉은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늘 꿈속에서 이상적인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과 공동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요셉은 창세기의 완성, 족장사의 완성, 비전의 완성자로서 멋있는 삶을 보여준다.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행7: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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