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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글, 한글과 「참빛」 기준서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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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글, 한글과 「참빛」

(1964년 창간호 한글 제호)

세계 역사는 증언하기를 한 국가가 망하면 100년 안에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독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2천여 년 동안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나라를 세운다(1948년). 유대인은 나라가 망한 후에도 시나고그에 율법학교를 세우고 토라(모세오경)와 탈무드를 히브리어로 가르쳤다. 세계 각지로 디아스포라 되어서도 제일 먼저 회당을 세우고, 히브리어로 율법을 가르쳤다. 율법은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의 여호와 신앙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히브리어 모국어는 유대인의 민족 정체성과 동질성을 끈끈하고 단단하게 매듭짓는 역할을 했다. 언어의 놀라운 힘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근대에 이르러 '으뜸이 되는 큰 글', '오직 하나뿐인 큰 글', '한국인의 글자'라는 뜻으로 한글로 부르게 되었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가 편하다. 언어학자들은 한글은 과학성과 체계성에 있어 어떤 언어보다 우수하다고 높이 평가한다. 한글의 역사를 보면, 창제 때부터 숱한 수난을 겪었다. 사대부 계층의 배척과 연산군의 사용 금지는 부끄러운 역사다. 일제강점기 35년은 가장 아픈 수난 기간이었다. 한글을 사용하면 민족의 동질성과 일체감으로 민족정신이 고양됨을 간파하고 사용을 축소시켰다. 일제 말기에는 민족 말살 정책으로 한글 교육 자체를 폐지했다. 그와 같은 수난 중에도 민족 지도자들과 한글학자들은 우리글 보급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민족 정체성과 동질성을 겨레의 끈으로 묶었다.

「참빛」은 1955년 창간된 바른길 -> 그리스도의 교회 -> 「참빛」으로 이어오면서 제호(題號)도 한글로 표기했다. 바른길과 그리스도의 교회도 제호를 한글로 표기했다. 「참빛」 제호는 발행인 이철선 선교사(W. A. Richardson)가 붓글씨로 직접 썼다(위의 표지 제호). 제호만 한글로 표기한 것이 아니라 글의 내용도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했다. 초기의 대다수 필진이 미국 선교사임에도 한글로 편집, 출판했다. 영문이나 한문은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한글로 표기한 이유는 두 가지다. 미국 선교사들에게는 한글만큼 사용하기가 편하고, 표현하기에 좋은 언어가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그분들이 우리 언어로 선교하기 위해서 한글을 배우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는 한국어로 설교와 선교 활동을 하면서 「참빛」에도 한글전용 원칙을 지켰다. 당시에 발행되던 신문, 잡지는 한글과 한문을 혼용하였으며, 어떤 잡지는 한문을 더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참빛」은 창간 때부터 한글 사랑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지금도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글 반포 일을 기념하는 10월 9일 한글날에, 「참빛」은 68년 동안 나라 글 한글 전용 원칙을 지켜온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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