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힘과 자랑 | 김창인 | 2023-0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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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힘과 자랑 행 12:20-25 우리가 잘 아는 우화가 있다. 어느 연못에 오리 두 마리와 교만한 개구리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심한 가뭄에 연못의 물이 말라갔다. 가뭄이 계속되어 개구리가 더 이상 연못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살 방법을 궁리하던 개구리가 좋은 꾀를 생각해 냈다. 긴 막대기 양 끝을 두 마리의 오리가 물고 막대기 가운데를 개구리가 큰 입으로 꽉 물면 오리들이 날아서 물이 있는 다른 연못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개구리와 두 마리의 오리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다. 적당한 막대기를 하나 구해 두 마리의 오리가 막대기의 양 끝을 물었다. 개구리는 큰 입으로 막대기 가운데를 꽉 물었습니다. 두 마리의 오리가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농부가 ‘너희들 참 머리가 좋구나. 누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니?’라고 물었다. 교만한 개구리는 으쓱하는 마음에 큰 입을 벌려 ‘제가 아니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겠어요’라고 크게 소리쳤다. 소리치는 순간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제가 아니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겠어요’라고 외치는 순간 개구리는 입으로 물고 있던 막대기를 놓쳐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교만의 끝은 멸망과 죽음이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당해 멸망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때문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을 차지하려고 하는 교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쌓은 바벨탑에 임하셔서 그것을 무너뜨리고 인류를 흩으셨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잠언서 16장 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교만과 거만은 멸망하고, 망신당하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떨다 비참하게 죽은 헤롯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행전 12장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가 헤롯 왕에게 죽는 것으로 시작해서 헤롯왕의 죽음으로 끝난다. 헤롯 왕이 교회를 박해하는 사건으로 시작되어 박해하던 헤롯은 비참하게 죽고, 교회는 흥왕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사도행전 12장 안에 대단한 반전이 일어난다. 헤롯 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 교회를 박해했다.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왕은 베드로도 죽이기로 마음먹고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위기를 맞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해주셨다. 헤롯 왕이 군사들에게 베드로를 철저하게 지키라 엄명하여 16명의 군사가 철통같이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감쪽같이 감옥에서 사라졌습니다. 화가 난 헤롯왕은 16명의 군사를 심문하고 그들을 다 죽였다. 헤롯왕은 이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도리어 유대인 사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더 불안해졌다. 헤롯왕은 사건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느끼며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헤롯왕은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가이사랴로 내려갔다. 로마 제국과 로마 군대의 힘을 이용해 위엄과 안전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헤롯 왕이 가이사랴에 거할 때 정치적으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20절 말씀에는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고 한다. 주변 나라들과 문제가 생겼다. 두로와 시돈은 해안지역에 형성된 도시로 무역이 왕성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문제는 곡식이 나지 않는 지역이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 시대부터 유대 땅에서 나는 곡식을 사서 먹었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로와 시돈과 이스라엘 사이에 무역 관계로, 아니면 정치적인 관계로 오해와 마찰이 생겼습니다. 화가 잔뜩 난 헤롯왕은 두로와 시돈에 모든 곡물을 판매하지 말라고 금수조치를 내렸다. 두로와 시돈 사람은 더 이상 곡식을 유대로부터 사 올 수가 없게 되자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두로와 시돈은 헤롯 왕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헤롯왕의 내시인 블라스도를 찾아간다. 그에게 뇌물을 주고 설득해서 헤롯 왕과 화해할 수 있도록 주선을 부탁했다. 이 시기에 다른 사건 하나가 더 있었다. 로마의 황제 글라우디오가 전쟁에 나가 승리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 제국에 속한 모든 분봉 왕들에게 승전 축하 공연을 하라고 지시했다. 헤롯은 글라우디오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5000명 이상이 들어가는 가이사랴 원형 경기장에서 대대적인 승전 축하 공연을 열었다. 축제 공연 다음 날이 글라우디오 황제의 생일이었다. 헤롯왕은 금을 입힌 옷을 입고 원형 경기장 단상에 올랐다. 헤롯 왕이 단상에 올랐을 때 금으로 도금한 그의 옷이 태양 빛에 반사되어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광채가 났다. 헤롯왕은 달변가였는데 원형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정치적 치적을 자랑하며 연설을 했다. 사람들은 달변가인 헤롯의 연설을 들으며 환호했다. 특히 이스라엘과의 무역 냉전을 풀어야 하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선동하며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라고 추켜세웠습니다. 헤롯왕은 백성들의 환호에 자신이 곧 신인 것처럼 행동하며 교만을 떨었다. 그런데 헤롯왕은 축제가 끝나고 5일 만에 갑작스럽게 죽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외경에 속하는 마카비서에 의하면 연설하던 헤롯 왕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왕궁으로 돌아갔는데 배에서 벌레들이 나와 벌레가 살을 파먹고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결국 5일 만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자료는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도 나와 있는데 연설 후에 배꼽 아래부터 썩기 시작해 5일 만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는 헤롯 왕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원인을 단 한 가지로 말하고 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는 과정을 경험한 헤롯왕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헤롯왕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무시하며 교만을 떨며 자신이 곧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를 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쳐서 그의 교만을 꼬꾸라뜨리셨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서 25절에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말씀한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헤롯 왕에 의해 죽을 뻔한 베드로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나 교만한 헤롯왕의 비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고백한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다가 퇴장하는 시시한 배우라고 말했다. 조그만 것을 가지고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다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헤롯왕의 삶을 통해서 그런 인생의 허무함을 보게 된다. 사도행전 12장은 야고보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야고보를 죽인 헤롯왕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이 난다. 죽임을 당한 자도, 죽인 자도 모두가 죽는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공평한 것은 죽인 자도, 죽임을 당한 자도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는 모두가 공평하다. 인생은 생각하기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 우리는 하루를 살았다고 말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보면 하루가 죽은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날마다 하루씩 죽는 것이다. 마지막 날이 이르는 죽음의 공평함이 있다. 또 한 가지 공평한 것이 있다.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과 평가이다. 하나님 앞에서 야고보의 죽음과 헤롯왕의 죽음은 동일한 평가와 가치가 아니다. 한 사람은 겸손의 상징이 되었고 한 사람은 교만의 상징이 되었다. 거기에 걸맞은 하나님의 평가와 상급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헤롯 왕과 같은 삶이 아니라 야고보와 같은 삶이되기를 소망한다. 교만한 삶을 살다 자랑하던 힘이 허망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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