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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하나님 나라 원종호 20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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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쭈어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들어가는 말

성경에는 부자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부자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 관한한 부정적입니다. 가령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1619-31)가 그러하고 젊은 부자의 기록이(1916-22) 그러하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213-21)등과 오늘 우리의 본문 역시 그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야고보는 들으라 너희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통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의 재물은 썩었고 너희의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의 금과 은은 녹이 쓸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의 살을 먹으리라 말세에 너희가 재물을 쌓았도다.”(51-3)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부자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본문을 통하여 추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부자의 천국 들어가기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놀랐으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을 때에는 한없이 놀랐기에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26)고 말하면서 제자들은 무척 의아해 하였습니다. 어느 시대 어떤 곳을 막론하고 인간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었으며 또한 그 부자들에 의해 어느 시대나 어떤 곳을 막론하고 지배되어져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부를 최고의 가치로 자리 매김 하여온 인간의 역사와 그러한 문화권이나 그러한 사회의 성향에서 살아온 제자들로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관점에서는 어떠합니까? 부자의 재산 모으는 과정에서나 현재적 삶에서의 어떤 비리나 불의를 지적 하는 일 같은 것은 없이 단순히 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부정적이라면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은 자본주의 체제하의 물질 지상주의의 영향권에서 숨 쉬는 현대인의 가치관으로도 도저히 수용 할 수 없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부자란 어느 정도 이상의 재물 소유자를 뜻하는지 그 한계도 명백히 하지 않고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타락한 인간의 일반 사를 주도해 온 가치관을 극복하는 깊은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A. 우선 이 말씀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렵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그보다 더 어렵다고 하니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까닭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것이며 이 말씀은 또한 구원에 관한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강력히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인간은 자기의 힘이나 방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B.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란 내세의 영원한 나라라기보다는 현세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까닭은 현세에서의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고는 무궁한 세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장소적인 의미이거나 건물을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란 장소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통치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 즉 자기에게 혹은 타인에게 아니면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움직이던 나와 나의 모든 것이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자기의 왕, 자기의 주권자로 모시는 삶의 결단! 그것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은 섬길 수 없다는 십계명의 제 1계명을 사수하는 삶인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부자의 의미

부자란 우선 못가진 자에 비하여 가진 자를 말합니다. 비단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명예나, 지식, 권세, 건강, 미모, 예술적 재능이나 기술 등, 이 세상의 것을 가진 자를 뜻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은

 

A. 첫째로 그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 자기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우리 자신 곧 인간들을 위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것 인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인간도 자연계의 만물도 하나님이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 하신 피조물들이기에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고(1213) 그 인간에게 사용의 대상으로서 다스리라고 하셨던(128) 자연계의 모든 것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을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하는 것임에도 오히려 자기를 위하여 즉, 자기의 사욕을 위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를 해롭게 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B. 둘째로 인간 자신이 그 가진 것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인간은 그 심령이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기만 하면 우리의 인격이나 양심뿐만 아니라 인간성 즉, 영과 혼과 육이 정상적이고 본래적 기능이 아주 강력하게 발생되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그 본체요 본원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들어간 상태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인간의 생명과 행복의 근거가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소유 즉, 이 세상 적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재물 같은 것에 있는 줄 알고 그런 것을 절대 의지하거나 아니면 그런 것에 의해 자신의 삶을 다스려 가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생명과 행복의 근거와 근원은 오직 하나님뿐이고 이 땅에는 우리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을 비롯하여 인간이 소유하고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올 때에 실오라기 하나라도 자기의 것이라고 가지고 온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체뿐만 아니라 거듭난 새 생명까지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자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전619-20)고까지 성경은 증거 하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148)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인간은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며(딤전67) 따라서 이 세상에 와서 얻어가지고 살던 모든 것은 언젠가는 이 세상에 다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왜 주셨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들의 구원을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케 하기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러한 것들이 자기의 것인 줄 알고 자기의 사욕 적 목적만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들에는 사망의 독이 들어 있어 인간들이 그런 것들을 접촉하면 할수록 인간의 영이 죽고 인격과 양심이 죽고 아니면 사망의 독이 올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일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지 않는 모든 것은 그것이 재물이든지 지식이든지 권세나 명예든지 미모나 소질과 취미와 기술 등 그 어떤 것이든지를 막론하고 다 사망의 독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 각자의 개성과 능력과 환경에 알맞게 주신 구원을 이루는 도구나 재료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이 못 가진 것을 내가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없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의 소유를 가진 부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욥에게는 양이 7천 마리와 3천 마리나 되는 낙타와 황소가 500겨리와 암나귀 500마리가 있었고(13) 열 남매의 자녀가 있었는데 실로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허락 하셨기 때문에 마귀가 장난을 친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욥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참으로 잘 섬긴 욥이었는데 그러한 일이 발생 하였으니 기가 막힐 일이고 하나님을 얼마든지 원망할만한 처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엎드려 예배하면서 자기는 모태로부터 알몸으로 왔다가 또한 알몸으로 갈 것이기에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어 가져가신 것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라(120-21)고 함으로서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122) 생각하여 보십시요! 그 많은 소유가 하늘에서 무더기로 떨어진 것이었겠습니까? 그것들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피땀을 흘렸겠습니까? 그런데도 욥은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1271-2). 그렇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이 주셨다가 가져가신 것뿐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면 찬양 하였지 결코 원망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욥이 그 모든 것 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때에도 욥은 그것들을 자기의 소유로 생각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 놓았던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주셨다가 가져가신 것도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것을 우리에게 맡겨 놓았다가 언제라도 도로 찾아 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소유를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인 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 모든 소유를 쓰기를 원하는 자는 사실상 자기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이며 그렇기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더 어려운 부자는 아닌 것입니다. 즉 자기가 가진 소유를 곧, 아무리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그러한 것에 심령이 먹히지 않는, 실제로 사욕도 없는 순수한 마음 곧 불순한 것이 전혀 섞여있지 않는 가난한 마음! 천국은 그러한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53) 동시에 아무리 적은 소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의 것 인줄 아는 자, 곧 그것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며 자긍하는 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더 어려운 부자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각기 맡아 살다가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놓고 가는 청지기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얼마만큼의 소유를 가지고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아니면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는가가 문제입니다때문에 주님께서도 부자라고 할 때에 그 재산이나 소유의 한도를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 결과

인간이 이와 같이 그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지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그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과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일을 훼방할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재료로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이라도 주와 및 복음을 따르는 일을 훼방할 때는 자신은 물론 집이나 형제, 자매, 부모, 자식까지라도 버려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완전히 이루는 일을 위하여 집도, 전토도,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소유 못했던 젊은 부자(1916절 이하)에 비해 하나님 나라라는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자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던 것처럼(1344) 모든 것을 소모하여서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부모나 형제자매 등을 버린다는 말은 아주 내어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든 것의 주권이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나와 나의 모든 것의 주권자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결과로 전토도 백배를 받고 집도 백배를 받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와 형제까지도 백배나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을 겸하여 받습니다. 이것은 지상 생애의 안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을 의미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모든 것에 관대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오는 말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은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적게 쓰여 질 수 있고 반대로 소유를 적게 가진 자가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게 쓰여 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통치아래에 완전히 들어갔습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자기에게 이 질문을 계속적으로 하시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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