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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이종배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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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주님께서는 마지막 고통과 고독과 절망할 수 있는 순간에도 완벽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들을 감당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가능하시겠지?”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주님의 육신으로 감당하신 최후의 고난과 수모는 완벽하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과 거절을 당하신 상태에서 감당하셔야만 했다.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는 어찌 보면 마지막에 해당되는 말 같지만 사실에 있어서 우리 연약한 인간은 주님께서 이루어놓은 바탕에서만 시작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들이라고 하는 데서 오히려 이 선언은 새로운 시작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이 인류를 위해 하셔야 될 모든 일을 감당하시고 채우셨다.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던 에덴에서 사탄의 사주로 범죄하려 낙원에서 쫓겨난 인류를 위해 사탄을 향한 약속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하셨던 약속이 오늘 본문에서 완벽하게 채워지고 있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 속에 죽었지만 그것은 다만 발뒤꿈치를 상한 것에 불과할 뿐(사흘 후에 부활 하셨기 때문에…) 머리가 으스러져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인류를 범죄하게 하여 하나님 대신 자신이 경배를 받으려고 권모술수를 쓴 사탄이었다.

물론 창세전에 이 모든 것은 예정되어 계획된 것이고 그 계획 속에 순서에 따라 수많은 선지자들과 자신의 종들을 보내시고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하여금 모든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게 하신 것이다.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 즉, 죄에 빠진 인류 구원의 프로그램은 다 이루어졌고 이제 남은 것은 우리 교회와 각 계인의 과제만 남았다.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선언에 바울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4:7~8) 라는 나름대로의 확신과 감격으로 올해도 도전하는 …



Ⅰ. 사람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

우리 삶의 영역에 늘 하나님께서 하실 것은 완벽하게 채워놓으셨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채워야 할 여지를 남겨 두셨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영역을 감당치 못하면 하나님의 완벽한 채우심이 성취가 되지 못한다. 특히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아무리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셨어도 사람 각자의 순종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완벽함이 구원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을 인간이 무슨 업적이 있어야 한다거나 공로를 세워야 한다는 말로 오해하지 않기를 조심성 있게 당부하고 싶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놀라운 은혜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위해 명령되어진 것들을 자신의 순종으로 받아드리고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런 불순종의 사람에게는 구원의 효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명령하신 것들이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성별된 삶을 사는 모든 것들이 우리 사람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주님의 성령을 힘입어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데서 역시 은혜일 뿐이다.

“온전하라! 장성하라! 충만한데 이르라!”는 모든 당부의 교훈은 다 우리 각자의 영역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채우라시는 당부의 명령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셔야만 할 일들을 완벽하게 이루셨다.

그런데 구원의 역사를 위한 복음이 죽으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승천과 다시 오심인데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고난과 희생으로 감당해야 할 최고의 순종이 죽음까지였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다.

이제 남은 영광의 부활과 승천 다시 오심은 희생 뒤에 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희생까지만 순종하면 그 뒤는 당연히 보장이 되게 되어 있고 자연적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

이러한 원리는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다. 주님을 순종하기 위해 죽기만 한다면 부활과 영광을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자신을 죽이지 못하므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과거에 자신을 죽여왔고 오늘도 주님 때문에 죽어 살고 죽는 날까지 죽어 산다면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있어서 “다 이루었다!”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주님의 희생을 바탕 삼아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



Ⅱ. 이미와 아직…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라고 하였고 베드로 사도 역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고 증거하고 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완벽하게 주셨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주님은 많은 부분에서 “…하면 내가 하리라!” 하시는데 이것도 사실에 있어서는 역으로 생각하면 나는 “나의 할 것을 완벽하게 다 준비해 두었다. 나머지는 너의 몫이다!” 라는 말씀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16:31)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수없이 명령하시는 모든 것 뒤에 “그리하면…”은 이미 이루신 주님의 역사에 아직 우리가 채워야 할 공백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인생이 이미 끝나 있는 상태를 현재로 보시고 계시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때로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의 역사까지 부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은혜로 이루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으로 결코 우리에게 유익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입술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와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고 고백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이미 완벽하게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역사를 이루어 놓으셨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나 이 역사의 종말까지 채워나가야 할 각자와 교회의 과제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이를 잘 감당하는 것이 신안 잘 하는 교회요 성도이다.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고백한다. 이미에 아무리 충성한다고 해도 나의 순종과 희생은 아직도 멀었다고 겸손으로 고백하고 충성하는 …



Ⅲ. 주님의 다 이룸을 통한 새로운 시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구원의 일을 이미 완성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 하셨다. 그러므로 인류구원을 위한 일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각 개인에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은 그만큼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에 있어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는 것은 이미 다 이루어 놓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말로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 치기…’인 샘이다. 주님은 하나님이면서도 온 갓 수치와 고통을 다 참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셨다면 우리는 죄인으로 살다가 주님의 희생의 은혜를 바탕으로 나 자신의 구원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나 함께 복음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특권이고 은혜일 뿐이다.

이왕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이 새해에도 우리 자신을 바탕으로 한다면 모두 실패뿐이고 낳아진 것이 없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역사를 다시 정렬을 가다듬고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하고 또 하나의 후회스러운 한 해를 보내지 않기 위해서 주신 기회로 알고 주님의 완성 위에 우리 각자를 세워가고 서로를 세우는 데 협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2:28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하셨는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구원을 이루어 간다면 그것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주님의 “다 이루었다!”를 완성하는 것이며 이미 허락하심에 대한 도전이다.

하나님의 영역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게 이미 이루어 놓으셨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도 나와 우리 모두의 순종과 희생을 아직 필요로 하고 있다. 모자라는 우리를 통해 아직 남겨 두심을 감사하고 올해도 새로운 순종과 충성과 시작으로 주님의 구원의 역사를 감당하여 이루어 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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