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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실천이다 기준서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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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빈 광주리를 넘치게 하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한 아이가 가진 양식의 전부였다. 자기가 먹을 양식인데 혼자 먹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었을 때 그 결과는 엄청났다. 예수께서는 떡을 제자들에게 나누었고, 제자들은 다시 이것을 무리들에게 나누었다. 빈들에 있던 5천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차고 넘쳤다. 이는 분명 기적의 사건이다. 사건과 숫자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은 차제하고,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는 나눔을 통한 풍족함이다. 크리스천 됨의 기본을 가르치고 있다.

 

실천적인 삶을 살다

환원운동가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주창하였다. 이는 단순한 선언적 의미로 제정된 구호가 아니라 신앙으로 체화되어 응집된 삶의 고백이다. 환원운동가들은 성경 말씀을 궁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환원운동의 가치는 표어 제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바를 실천하는 삶에 있다.

 

환원운동가 발톤 스톤은 1801, 케인리지 교회에서 흑백통합예배를 드렸다. 그 때는 노예 차별이 극심하여 흑인을 단지 노동의 도구나 상품가치로 취급하던 시기이다. 그는 자유자나 노예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평등하다고 믿었으며, 이에 반하는 것은 비윤리적, 비신앙적으로 규정하였다. 집에 있던 흑인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주려고 하였으나 그가 살던 켄터키 주법()으로는 불가능하자 다른 주로 이주하여 해방시켰다. 흑인을 백인과 평등시하는 그의 실천적 행동은 백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과 교단의 파직까지 감수해야만 되는 신앙의 용기였다.

 

황금의 신탁(Golden Oracle)으로 불린 월터 스코트는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집에는 고작 젖소 두 마리 뿐인데, 젖소가 없는 이웃에게 살찌고 건실한 한 마리를 선뜻 내주었다. 마트에서 식품을 구입하여 집으로 오는 길에 배고프고 헐벗은 이웃을 만나면 모두 나누어 주고 빈 장바구니로 돌아오기가 다반사였다. 그의 지갑은 항상 비어있다. 어쩌다가 돈이 있으면 노숙인에게 몽땅 털어준다. 그의 삶은 나눔과 베풂으로 채워진 청빈한 삶의 대명사였다.

 

최수열은 1954년 한국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나왔다. 전쟁 후 한국사회는 혼돈스러웠고, 경제는 핍절한 동토의 땅이었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기독교대학을 세우면서 부족한 선교비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집을 팔아 보태었다. 가족의 희생은 컸고, 자녀들은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낯선 이국땅에서 평생을 헌신하다가 나이 들어 귀국하였으나, 그의 노년은 궁핍하였다. 가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도 고인의 고귀한 생애를 기리는 뜻으로 조위금 전액을 케이씨대학교에 장학기금으로 기탁하.

 

믿음의 선배들, 귀감 된 삶을 살다

한국에서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지키는 환원운동은 외롭고 배고픈 길이었다. 기존교회로부터 백안시당하는 수모와 이단으로 몰리는 핍박을 견뎌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은 자립의 길이 요원하여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안에서 본인과 가족의 희생은 컸다.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겠다는 열정만으로 꿋꿋하게 평생을 헌신한 선배들의 희생적인 삶이 존경스럽다. 그분들의 빛 된 희생과 헌신적인 삶은, 오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표본이 된다.

강명석 전도자는 1920년대 자원하여 한센병자 수용시설에 들어가서 그들을 보살폈다. 그 시대에 한센병은 천적(遷謫)의 병으로 인식되어 사회 공동체에 포함시키지 않고 격리수용하였다. 전염되는 질병으로 분류되는 속에 누구도 그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강명석은 몸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한센병 환자촌에 들어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보듬고 섬기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이흥식 전도자는 월남한 후로 독신생활의 길을 걸었다. 인간적으로는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면서 오직 교회를 위하여 평생토록 자신을 희생하였다.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순회사역을 하면서 자비량으로 복음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서울 홍제동에서 안산교회를 개척하고 돌볼 때에, 어느 때는 차비가 없어 청량리 집까지 그 먼 길을 걸어 다니기도 하였다. 교회를 위한 그분의 희생정신은 수많은 일화를 남겼고, 신앙의 귀감이 되고 있다.

작은 예수로 불리던 김관평 전도자는 평생을 주의 사역을 위해 헌신하면서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반평생 사역하면서 본인은 물론 가족의 희생이 무척 컸다. 그럼에도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였다.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는 믿음의 실천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활 속에서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

오늘의 자리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분들을 보살피는 여러 형제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헌신하는 형제들의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름답다.

서호그리스도의 교회 정성일 목사와 그의 가족은 지역의 어려운 노인들을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어 사랑의 집을 세우고 노인과 장애인들을 보살핀다. 단지 복지시설을 세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고 가족같이 보살핀다. 그분들의 생활의 문제만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시키는 빛 된 목양사역을 한다.

천혜경로원강은수 원장은 2대를 이어오면서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을 섬긴다. 선대이신 강순명 전도자께서 전쟁 후에, 오고갈 데 없는 노인들을 집에 데려와 함께 생활하면서 시작된 경로원은 7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같은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강 원장은 개인적인 편안함과 사회적인 출세를 뒤로하고 평생토록 어려운 노인들을 부모 섬기듯이 따뜻하게 보살핀다.

김포·강화지역 밀알선교단서석철 단장은 어릴 때 불의의 사고로 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었다. 그로인해 자신을 포기하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회심하고 돌아와 장애인 전문사역자가 되어 그들을 보살핀다. 누구보다도 장애인이 겪는 아픔과 고민을 잘 알기에,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응어리들을 잘 살펴 보듬어 준다.

KCU로뎀복지회이우영 원장은 로뎀하우스(장애인 단기 거주시설)와 로뎀나무(장애인 주간 보호시설)을 세우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사역에 젊음과 열정을 바친다. 로뎀교회를 통해서는 그분들의 영적 갈급함을 채워주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는 얼마든지 쉽게 사역할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을 위하여 헌신한다. 빛도 없이 행하는 그의 희생적인 섬김을 통하여 그분들이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갖는다.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사역이다.

 

믿음은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체화한 환원운동은 불행하게도 가치 지향적이 되지 못하고 구호만의 껍데기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끊임없이 외치지만 빈 수레로 소리만 요란하다. 그 안에는 정신이 없고 실천적 행함이 없는 겉모습뿐이다.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앎이 설익은 이해를 생산하여 구호만을 제창하는 운동으로 둔갑시켰다. 환원운동은 단순한 구호운동이 아니고, 언어유희도 아니다. 생활 속에 믿음대로 실천하는 운동이고, 삶의 고백이다. 결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표어에 머무는 운동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믿음대로 실천하는 운동이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경을 믿고 자신이 고백한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환원운동가들이나 믿음의 선배들의 삶의 자리를 복기해 보면, 믿음과 실천은 항상 동의어였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비춰보고 성찰케 한다.

믿음은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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