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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 하용수 | 2020-1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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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1:1-11
1.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이며 신앙인인 파커 파머은<모든 것의 가장 자리에서>에서“나이듦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을 넘어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가 열린다.”라는 멋진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나이 듦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물리적인 시간에 주목하기보다는 마음,지혜,영적인 것들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이는 다른 게 이야기하면 삶의 크고 작은 꿈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래야 파커의 표현으로 하면,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김훈의<연필로 쓰다>라는 최근 산문집에 보면,칠곡,곡성,양양,순천 할매들의 글을 읽고라는 소회를 밝힌 글이 나옵니다.거기에는80살에 가까워서 한글을 깨친 할매들의 글을 모은 시집,일기들을 소개합니다.
아침에 이러나서 밭에 가 보면 곷치 피고 파란 잎이 팔랑팔랑 하는데 저도 나를 보고 나도 저를 보고 얼마나 사랑서럼고 감사한지 몰라요-송문자(칠곡) 이슬비가 뽀실뽀실 온다 뽀시락뽀시락 비가 온다 끄끕하니 개작지근하다 온 들에가 다 떨어진다 온 곡식이 다 맞는다 곡식이 펄펄 살아난다 시원허니 좋다-박점례(곡성)
이 분들의 글과 시는 그냥 삶이지요.자기의 삶과 동떨어진 유려한 언어를 지르지도않고 속이거나 화려한 은유로 모양을 내지도 않습니다.그러나 그 분들의 글과 시는 그냥 아름답고 희망이 있습니다.그것은 그분들의 지난했던 삶에 굴하지 않고 오늘과 내일을 열어가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 어른들이 많은 우리 춘천교회 식구들에게도 이렇게 아름답게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를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성경을 한마디로 애기하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저는<하나님의 꿈에 관한 책>이다.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성경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지요. 그러면,하나님의 꿈은 무엇일까요?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아니 세상을 구원하시고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퍼즐과 같습니다.그 하나 하나의 조각이 믿음의 사람들,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어떤 이는△이고,어떤이는○,어떤 이는☆같은 것이지요.기질도 성격도 하는 일도 다 다르지만,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퍼즐조각-구원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의 꿈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우리가 가진 은사로,우리가 가진 시간으로 우리가 가진 물질로 우리가 가진 육신으로 우리가 가진 마음과 생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인간은 그러할 때 가장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꿈에 동참할 때 기쁨이 생겨나는 것이지요.대한민국 축구가 뭐라고 지난 번에 월드컵4강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와 기쁨을 내질렀습니까?그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까?그렇습니다.공동체에 속해있다는 것,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내가 서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고 소리지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사셨습니다.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개인적으로 비전에 관한 생각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본문이 있다면 저는 항상 이 느혜미야를 봅니다.이것이야말로 꿈을 이루는 여정의 첫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4절은 내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왜냐하면,이런 아픔이 우리에게 너무 많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주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그것이 천국백성들이 가지는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애국자의 출발은,민족의 아픔이 내 것이 될 때입니다.그리고 이것이 꿈의 또 다른 시작이기도합니다.간디에게 인도의 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지요. 시작은 아픔입니다.다른 말로하면 부담감입니다. 부담감은 꿈을 이루기 위한 첫 출발입니다.부담감은 어디서옵니까?하나님에게서 옵니다.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인간으로서의 나는 한없이 편안한 것을 추구하고 살고 싶습니다.내가 싫은 것은 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어떻게 됩니까?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때로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하고,움직이지 않고 싶을 때에도 움직여야만 하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심적 부담감이 사실은 꿈을 이루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에에 보면,하만이 계략을 꾸며 왕의 칙량을 받아 이스라엘민족을 다 멸절시키려할 때,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5장13절에)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대인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 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내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말하자,에스더는 왕의 부름이 없으며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는 관습을 깨고 죽이면 죽으리라 하면서3일간 금식하고 왕에 나아가지 않습니까?자기민족에 대한 부담감이지요.그것이 에스더에게 있었던 것이지요.그리고 그 부담감이 이스라엘을 죽음의 늪에서 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부담감이 꿈을 이루는 출발입니다.그 부담감에 느혜미야에게 어떻게 나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그것이 꿈을 이루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2.본문에는 꿈을 이루는 과정이 단계별로 나와 있습니다. 첫 째로, 4절에 보니 느혜미야가 듣고 앉았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느헤미야가 고국의 슬픈 소식을 듣는 과정이 나오는 것이지요.그냥 흘러나온 것을 들은 것이 아니라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에서 온 하나니를 보게 되었는데,그를 붙잡고 고국의 소식을 물은 것입니다.그리고 그를 통해 남아있는 백성들이 환난과 능욕을 다앟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타버렸다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지요. 영어에서 듣기라는 영어단어인 히어링과 리스닝을 구분합니다.히어링은 그냥 들리는 것입니다.아무것도 안하는데 들려오는 음악소리같은 것 말입니다.그런데 리스닝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는 것입니다.앞의 히어링은 수동적 듣기이고 뒤의 리스닝은 능동적 듣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능동적 듣기를 한것입니다.충분히 들을만한 마음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지나가면서 흘려보내면 서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그것보다는 앉아 보아라 그랬을 것 같애요.하나니에게 말입니다.즉,주의 깊게 관심을 표한 것입니다.저는 이것이 꿈을 이루는 준비 자세라고 봅니다. 모든 운동에는 준비운동이 필요합니다.준비운동 없이 바로 운동 하면 반드시 햄스트링 같은 것이 옵니다.근육인대가 늘어나는 것 말입니다.특히,수영은 준비 운동 없이 들어가면 심장마비 걸릴 확률이 몇 배나 높다고 합니다.준비운동은 그래서 중요합니다.운동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이1월1일만 되면 해돋이 보러 갈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한해를 준비하기위해서입니다.한 해를 잘 보내기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겨울 산에도 갈려면 충분한 준비를 해야합니다.그렇지 않으면,울라가지도 못합니다.예전에 신년에 저도 한 해의 마음 준비를 위해 태백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이 산은 아이젠,마스크,스틱 등 이런 것이 없으면 태백산 등산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전에 준비운동을 하셨습니다.그것이 광야에서40일 금식하신 것입니다.그 시간을 통해서 마귀와의 싸움을 이겨 낼 만한 준비를 갖추신 것이지요. 세례요한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전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준비한 것이지요. 대학생들에게는4년의 시간이야말로 사회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운동기간이 아닐까합니다.이 때 준비를 잘 해야한 평생을 잘 설계해 나가는 것입니다.
느혜미야는 그 준비운동의 모습이 소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이는 정보수집과도 같은 것입니다.내가 어떤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이런 준비가 필요한 것이지요.평생 동안 내가 목표로 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준비자세가 요청되는 것이지요. 마키아밸리의<전략론>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준비를 시작하면 이미 늦다.행운이 미소짓기 전에 준비를 갖추어 놓아야한다.이것만 게을리 하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찾아오자마자 즉각 움켜잡을 수 있다.좋은 기회는 당장 붙잡지 않으면 달아나기 마련이다” 1년의 결과는 준비에 있습니다. 1월을 잘 보낸 사람들은 남은 달도 잘 보낼 수 있습니다. 1월이라는 영어단어는 야누스에서 온 것입니다. January(1월)을 고대 로마 시대에는 출입문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얼굴이 앞뒤로 달린 야누스(Janus)신으로 묘사해놓았습니다.준비를 잘해야 다음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곧 벼를 거둘 때입니다.봄에 모를 심은 자가 거둡니다.모든 자연의 이치가 그러합니다.심지않고 거두는 일이 없는 것처럼,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려는 삶을 살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오늘 느혜미야에게는 깊은 관심으로 표시된 것이지요.사람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관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예전에 어떤 드라마를 본적이 있는 데,임금의 사촌이 반역을 꾀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영의정 회갑연에 온 임금을 검무를 추다가 죽이려 하는 장면이지요.그 때 임금이 반역의 수장인 사촌 형에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당신은 군왕의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당신은 자리를 탐할 줄만 알았지,이 자리에 앉으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는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느냐고 묻지요.너무 멋진 장면이더군요.그래서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는 것이지요.우리도 욕심은 많습니다.이것저것 다하고 싶어합니다.자리도 차지하고 싶고요.그러나 정작 왜 그 일을 내가 해야 하는지,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관심은 별로 없는 것이지요.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듣게 하시고 알게 하신 이유를 깊이 고민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나아가야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무엇에 관심하고 무엇에 온 힘을 기울여야하는지도 알게 되고 말이지요. 오늘 내가 관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그것이 곧 나입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무엇에 관심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까?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두 번째로,느헤미야는 하나니에게서 앉아서 고국의 소식을 듣더니 울었다라고 말합니다.그리고 수일동안 슬퍼하였다라고 소개합니다.이러한 깊은 슬픔은 느헤미야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다르게 말하면,깊은 긍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인 모하메드 유누스가1976년 설립한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보증소액대출은행이다.대부분의 은행들은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하지만 그라민은행은 아예 가난한 사람들만 대출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지요.유누스교수는 그래서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가난한 자의 아픔을 내 것으로 삼는 깊은 긍휼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지요. 탐스 슈즈도 그런 것 아닙니까? 1+1말입니다.하나의 신발을 내가 사면,남미나 아프리카의 신발 없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신발이 기증되는 것이지요.탐스 슈즈 창시자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가 아이들이 신발 없이 뛰노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저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야 겠다라고 셍각하면서 시작된 것이지요.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사람이 지금까지 마이코스키밖에 없었겠습니까?수많은 여행자들이 그 길을 여행하였고 아이들을 보았지만,마이코스키만이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이지요.즉,그들의 아픔현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깊은 긍휼을 가진 것이지요. fair trade라고 불리우는 공정무역도 그렇게 시작된 것 아닙니까?우리가 즐겨먹는 커피를 생산해내는 브라질이나 남미의 아이들이 하루에 천원밖에 안되는 돈으로12시간씩 노동하면서 커피의 원료인 카카오를 잘라내고 일하는 것이지요.그들의 아픈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어떤 이들이 공정무역을 시작한 것이지요.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의 성이 허물어지고,성문들이 불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것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갖게 된 것이지요.그래서 수일동안 울고 슬퍼한 것이지요 슬픔이 자기를 지배한 것이지요.예루살렘에서의 소식을 지나가는 강바람으로 이해하거나 바라보지 않는 것이지요.담아둘 수밖에 없던 것이지요.보자기로 싸서 오랫동안 내 안에 가두어 놓은 것이지요.무엇을 말입니까?깊은 슬픔을 말입니다.안따가운 마음을 말입니다. 그것이 날라와 그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지요.김춘수의 꽃 이라는 시가 그냥 생각납니다.의미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깊은 긍휼이 있어야합니다.그것이 사명감입니다.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시 부상당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깊은 긍휼함을 느꼈습니다.그것이 기회가 되어,영국군 병사들의 보건과 생활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게되고,후에 간호학교를 세워 환자들을 위한 책임적 간호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성벽이 무너진 것이 느헤미야 탓입니까?그런데 그것을 자기의 탓으로 여겼습니다. 지난 달,8월9일 서울대학교의 한 청소 아주머니가 제2공학관(302동)지하 휴게실에서 사망했습니다.무더운 낮,휴게실에서 잠이 들었다가 숨을 거둔 채 동료 아주머니에게 발견된 것입니다.아주머니가 사망한8월9일은 최고기온34.6도의 폭염이 있던 날이었다고 합니다.선풍기 하나로 여러 사람이 찜통 같은 열악한 휴게실 안에서 지냈던 것이지요.계속 아주머니들이 에어컨 설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선망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일어나는 현실입니다.대학의 총장과 교수들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까요?압니다.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자신들의 공간을 일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만드는 그 분들을 사람으로 취급안하는 것이지요.눈물 나는 것이지요. 세상을 바꾸어 꿈을 이루어가는 일은 이처럼,우리안에 일어난 일들을 내 것이라 받아들이고 그것에 깊은 긍휼을 가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갈 때 새로운 역사는 한 페이지씩 쓰여져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3장에 부르십니다.그 때 그 부르심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그것이 모세가 그의 백성을 위해 나아가야만 했던 이유이지요.
3장7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그러니 이제 너는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깊은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이 모세 너도 이런 마음을 갖고 서라는 것이지요.여기서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까?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그러합니다..... 깊은 긍휼이 우리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하늘의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기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이는 다짐과 방향에 대한 확신과 확인이기 때문입니다.기도는 분명한 목표를 보게 합니다. 6절과9절의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요.하나님의 말씀(언약)안에서 자기가 나아갈 길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이지요. 바울도 그러하엿습니다.기도 가운데 그는 자기가 갈려는 길을 뒤로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마케도냐로 건너가 유럽최초의 교회 빌립보를 세우게 되는 것이지요. 꿈을 이루는 일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아 갈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라디오 주파수와 같은 것입니다.기독교FM방송을 들으려면93.7을 켜야 합니다.다른데 아무리 주파수를 돌려도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습니다.다시 말하면,천국의 주파수에 맞추려면 기도해야한다는 것이지요.그래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찾습니다.멘토를 찾습니다.필요한 일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하나님을 찾습니다.기도는 문제를 하나님에게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문제를 해결해 가시도록 하는 것이지요 스코틀렌드의 죠지 맥도널드는"하나님을 배제하고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은 반드시 비참하게 실패할것이다 성공한다고 해도 비참하게 성공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없이 쌓아놓는 일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가는 길은 작은 것이라도 큰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느혜미야의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완성은 들음에서,깊은 슬픔으로,더 나아가 기도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우리에게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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